‘사랑’이라는 이름의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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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름의 ‘사기’
  • 박소담 기자
  • 승인 2024.02.07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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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감정 이용해 고액 현금 갈취…중장년층 상대 조직적 범행
수출‧수입 시 발생되는 비용 중 하나인 통관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갈취하는 로맨스 스캠의 예.
수출‧수입 시 발생되는 비용 중 하나인 통관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갈취하는 로맨스 스캠의 예.

로맨스 스캠은 SNS나 채팅앱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이성을 만난 뒤 호감과 신뢰를 쌓고 재산을 갈취하는 방식의 신종 범죄다. 로맨스 스캠이란 Romance와 Scam(기업의 이메일 정보를 해킹해 거래 대금을 가로채는 온라인 사기 수법)의 합성어로, 허위 신분으로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연애 감정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는 사기 수법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SNS에서의 소통이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과 노인층의 경우 로맨스 스캠의 대상이 되기 쉽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21년 로맨스 스캠의 피해 규모는 약 31억3000만원 수준이었지만 2022년 10월 기준 약 48억6000만원으로 55%가량 증가했다. 또한 미국 뉴욕의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가 지난해 2월 발표한 ‘2023 가상자산 범죄 보고서-스캠(Scam)편’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가상화폐 사기 피해 중 1인당 피해액이 가장 많은 유형이 로맨스 스캠이다.

신고율 낮고, 피해액 높아

로맨스 스캠의 1인당 피해액은 약 2000만원(1만6000달러)이며 피해액 2순위 유형은 ‘사칭 스캠’(약 700만원·5700달러)이다. 로맨스 스캠이 사칭 스캠에 비해 1인당 피해액이 185%나 많은 것이다. 사칭 스캠은 국세청 직원 등으로 위장해 가상화폐 송금 등을 유도하는 수법으로 흔히 ‘보이스 피싱’으로 불린다. 아울러 체이널리시스는 로맨스 스캠의 1인당 피해액이 2000만원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범죄 특성상 수치심 탓에 피해자들의 신고율이 낮다는 이유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에 거주하는 56세 정 모씨.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그녀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SNS를 통해 소통한다는 말에 앱을 설치한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운을 뗐다. 2021년 봄, 동년배로 보이는 잘생긴 외국인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반했으며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자신을 ‘미군 부대 소속의 재미교포 2세 외과 의사’라고 했다”며 “나와 대화하기 위해 열심히 한국말을 배운다는 그가 고마웠고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돼 한국이 그립다는 말에 가엽기도 했다”고 말했다.

설마 내가 속을 줄이야

그 후 약 9개월 동안 그의 사랑 고백과 일상공유는 계속됐다. 2022년 초, 그는 한국으로 갈 것이며 바로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서 모아둔 현금 80만 달러(약 10억7000만원)를 선박을 통해 한국으로 옮기려면 3000만원의 수수료가 발생한다고 했다. 달러가 가득한 사진을 보내며 자신 명의의 계좌는 모두 추적되니 수수료만 내 달라고 부탁했다.

“군인 신분이기에 외국으로 현금을 많이 반출하면 안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한화로 10억이 넘는 돈을 전부 보낼 테니 함께 살 집을 사라고 했다”며 “나를 믿고 큰돈을 보낸다는 말에 감동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잠시 의심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딸의 얼굴과 이름, 학교, 사별한 아내의 묘비까지 봤기에 그를 믿었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영상통화도 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이성적 판단이 흐려졌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3000만원을 송금한 후, 그와 다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주변에 알리지도 신고를 하지도 못했다”는 그녀는 “돈을 뺏겼다는 생각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에 힘들었다”고 흐느꼈다.

진화하는 로맨스 스캠

국정원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의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허위 가상자산 투자, 인터넷뱅킹 대리송금, 전자화폐 환전 사기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① 허위 가상자산 투자형: 홍콩 등지에 거주하는 부호 행세를 하며 암호화폐 등에 투자를 유도한다. 거래소 가격이 상승하는 허위 앱을 보여주는 수법을 쓴다. 2021년 9월, 싱가포르 재력가를 사칭한 범죄조직이 A씨에게 접근, 가상자산 투자를 유도해 수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② 가짜 인터넷뱅킹 송금형: 해양 엔지니어 등을 사칭해 친분을 형성, 인터넷뱅킹 정보를 알려주며 장비구입 자금 등의 대리송금을 요구한다. 가짜 은행사이트에서 ‘오류 화면’을 전송한 후, 납입을 요청한다. 2021년 5월, B씨는 상대가 해양 프로젝트 진행 중 문제가 생겼다며 대리송금을 해달라는 말에 속아 각종 명목으로 수억 원을 입금했다.

③ 전자화폐 대리환전형: 채팅 사이트 등에 충전해둔 포인트가 곧 소멸할 예정이라며 대리환전을 요청한 후 수수료 등 명목으로 금전을 갈취한다. 2021년 10월, C씨는 채팅 사이트에 충전된 수천만 원 상당 포인트가 곧 소멸할 예정이니 대리환전을 해달라는 말에 속아 수천만 원의 피해를 보았다.

국정원은 “지금도 범죄조직들은 새로운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의심할 경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특정 인물을 원하는 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영상통화도 한다”고 밝혔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로맨스 스캠 범죄는 피해자에게 물질적‧심리적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에 매우 악질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 서로 완전히 신뢰하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피해자의 당혹감과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다.

로맨스 스캠 사기꾼들은 주로 해외 서버에 기반을 두고 있어 용의자 특정이 어렵다. 또 추적이 힘든 가상화폐 등이 해외로 유출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 금액 환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예방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온라인 대화상대로부터 각종 명목으로 송금을 요청받은 경우, 일단 대화를 중단하고 사기 범죄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딥페이크 등 새로운 기술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음을 감안하고 음성‧영상 통화 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SNS에서 개인정보 공개를 최소화하고 상대방의 계정이나 사진 등을 검색해 봐야 한다. 상대방이 제시하는 각종 증명서가 위조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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