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밀렵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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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밀렵의 계절
  • 박소담 기자
  • 승인 2024.02.21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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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밀렵 최고조, 멸종위기종도 예외 아냐
지난해 7월, 밀렵꾼이 설치한 덫에 걸려 폐사된멸종위기종 2급 담비의 모습. /충북야생동물센터
밀렵꾼이 설치한 덫에 걸려 폐사된멸종위기종 2급 담비의 모습. /충북야생동물센터

초목이 모습을 감추고 농한기를 맞은 겨울. 산천이 눈으로 뒤덮이는 2월이 되면 밀렵은 최고조에 이른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야생동물들에게 밀렵꾼들까지 활개 치는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최근 고라니나 멧돼지는 물론이고 독수리, 삵, 수달, 담비 등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야생동물들에게도 무차별 밀렵이 행해지고 있어 충격이다.

총기와 사냥개, 올무와 독극물

2022년 발표된 ‘충청북도 야생생물 보호 및 야생동물 질병 관리 세부계획서(이하 충북 야생동물 세부계획서)’에 따르면 의하면 밀렵에 사용되는 도구는 다양하다. 도주나 운반이 비교적 쉬운 총기 밀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증거가 남지 않는 사냥개를 이용한 밀렵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냥개는 법적 구분이 없어 처벌하기가 어렵다는 맹점을 악용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밀렵꾼은 “키우는 개가 뒷산에서 짐승을 물어왔다는데 어쩔 것이냐”라고 말했다. 올무와 덫, 그물망이나 독약 등의 불법 사냥 도구를 이용하는 밀렵도 여전하다. 저렴한 제작비로 대중화된 올무는 특정 도구 없이 해체할 수 없다. 발버둥 칠수록 발목이나 목을 더욱 조이는 형태로, 야생동물이 탈진하거나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최근에는 보기 드문 스프링 형태를 한 올무도 발견됐다. 야생동물을 죽이지는 않고 고통만 준 후 산 채로 잡아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용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다이메크론 등의 독극물을 이용한 밀렵도 심각한 수준이다. 새들과 설치류들이 주로 먹는 망개나무 열매 등에 독극물을 묻혀놓고 이들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밀렵꾼들의 이러한 극악무도한 불법 사냥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곰 덫’이라는 창애

지난해 10월, 충남 부여군에서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삵의 구조 신고가 들어왔다. 사건 당일 삵은 작은 개울가에서 창애에 의해 앞발이 구속되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창애는 지면에 숨겨놓는 형태로 야생동물들의 발목을 노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설치 장소에 고정하며 강한 힘으로 발목을 물어 뼈 또는 근육을 부숴버린다. 덫에 걸린 동물은 즉사하지 않고 고통과 함께 서서히 죽어간다. 구조를 위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두 개의 창애가 양발을 하나씩 물고 있었다. 삵은 창애에 걸린 지 오래된 듯 이미 힘이 빠져있었고, 왼쪽 눈은 새빨갛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진료결과 왼쪽 앞다리는 개방골절 형태로 괴사가 진행 중이었다. 오른쪽 앞다리의 근육은 모든 방향에서 절단돼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창애가 아닌 다른 충격 때문에 부풀어 오른 왼쪽 눈은 피가 가득했고, 눈의 형태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손상이 심했다. 시력 상실로 판단, 결국 삵은 안락사됐다. 부검결과 좌측 두부 근육에서 선명한 출혈의 흔적이 발견됐다. 당시 다른 외상이 없었기에 둔탁한 도구를 사용해 머리를 내리친 것이 틀림없다. 그동안 많은 밀렵사고에서 야생동물들을 구조해 왔지만, 이번 사건에서 처음 확인된 ‘외력을 사용한 두부 손상’에서 인간의 명백한 악의를 느껴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출처: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사건번호 23-2078<야생동물 불법엽구>, 이기민 재활관리사의 글에서 일부 발췌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수거한 불법엽구들 자료제공=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수거한 불법엽구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잘못된 보양 상식 
수렵 통제가 원인

이토록 잔인한 방법으로 밀렵을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야생 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의 감염 우려로 식용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지난해 11월, 야생 멧돼지 고기를 SNS를 통해 거래하려던 엽사 A씨와 외국인 B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2020년 8월부터 지난해까지 야생 멧돼지 4마리를 엽사 A씨에게 받아 마리당 3~40만 원을 받고 팔았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포획한 유해 야생동물은 소각·매몰하거나 고온 멸균 처리해야 한다. 코로나 19,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조류인플루엔자(AI),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결핵병, 광견병, 구제역 등 야생동물을 매개로 한 각종 감염병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멧돼지 쓸개나 꿩고기 등에 대한 잘못된 보양 상식이 퍼지며 SNS 등을 통한 불법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는 밀렵의 원인을 크게 보신 문화와 억제력 상실, 두 가지로 꼽는다. 또한 ASF 확산 등으로 인한 수렵 통제로 수렵장이 감소하며 밀렵억제력이 상실됐다고 분석했다.

단속 미비, 처벌강화 해야

한 환경보호단체 관계자는 “밀렵 단속 인원이 지역별로 4~5명 정도라 효과적인 단속이 어려워 불법 엽구를 수거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3월 10일까지 공원 내 야생동물 밀렵·밀거래와 불법 엽구 수거 특별 단속을 벌이고 있다. 19일 공원사무소 관계자는 “올무 등 엽구 수거는 몇 건 있었으나 실제 단속은 한 명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불법 밀렵과 밀거래는 야생생물법 제8조와 제10조, 제14조에 의해 엄격하게 규제돼 있다. 밀렵 적발 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5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상습 밀렵꾼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충북 야생동물 세부계획서에 따르면 충북 야생동물센터의 야생동물 구조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도 내 지자체 중 가장 많은 야생동물이 구조되는 곳은 청주시로, 2021년도 구조 건수 1238마리 중에서 999마리로 81%를 차지했다. 충북 야생동물센터의 김지은 재활관리사는 “매년 센터로 들어오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발견되지 못한 더 많은 야생동물이 밀렵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야생동물 밀렵 행위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밀렵 도구에 대한 관리, 처벌에 대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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