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도시 순천에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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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도시 순천에 가보시라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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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송 현 화제신문 대표이사
   
며칠 전 순천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순천이 도서관의 도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곳곳에 작은도서관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도서관학교가 열리는 강당은 도서관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순천 기적의도서관에는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부손님이 연일 이어졌다. 내가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도 대구에서 한 무리의 여성들이 몰려들어왔고, 다른 지자체의 의원들이 곧바로 방문한다는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외지인의 방문에 이골이 난듯했다. 직원들끼리는 “그냥 보고 가라고 그런라는 말이 쉽게 오고갈 정도였다.

새로 선출된 시장은 전임시장의 치적임을 탓하지 않고, 더 많은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 순천을 도서관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고 한다. 안내를 해주는 직원의 얼굴에는 ‘도서관도시 순천’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순천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했고, 순천 사람들의 문화수준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주에서 자동차로 4~5 시간은 달려야 갈 수 있는 남해안의 궁벽한 도시 순천. 이렇다할 내세울 것도 없는 인구 27만의 소도시 순천이 꿈을 품더니 기적의도서관을 세우고 불과 3년 만에 전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청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서관의 도시, 책의 도시가 되어야 할 곳은 정작 청주가 아닌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어떻게 되짚어 봐도 청주는 ‘책의 도시’가 되기에 부족한 것이 없다.

청주에는 직지가 있다. 직지가 무엇인가? 책이다. ‘현존하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래도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속활자라는 것보다 책이라는 것이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책을 만들었는데, 그 책을 더 손쉽게 만들기 위해 활자를 만들었고, 한번 만든 활자를 오래도록 써서 책을 더욱 손쉽게 만들기 위해 ‘금속’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금속활자로 인해 다양한 책을 더욱 빠르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금속활자를 인류의 위대한 발견으로 손꼽는 이유는 바로 ‘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데 있는 것이다. 청주기적의도서관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직지의 존재에서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런데, 우리 청주에서는 이 ‘직지’가 거의 공예품 수준으로 전락되어 있다. ‘직지’를 기념하는 고인쇄박물관 앞에는 공예관이 우뚝 서 있고, 세계 각지에서 학자들을 초청해놓고는 공예비엔날레를 연다.

책을 빨리 만들어 널리 사람들에게 보급하여 문화중흥을 꾀했던 선조들의 거룩한 뜻은 가려지고, 금속을 다루는 솜씨만이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인쇄박물관에서는 방문객들이 직지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직지시연을 한다. 하지만 방문객들이 경험하는 것은 목판인쇄에 다름없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낸 선조들의 참뜻을 이해시킬 수가 없다.

직지를 ‘책’으로 살리려는 노력도 있다. 청주시도 앞으로 여러 곳에 도서관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One City One Book’’도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도,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어떤 민족, 어떤 고장보다도 먼저 금속활자를 만들어낼 만큼 책을 중요하게 여겼고, 우리는 그 후손임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인데, 정작 그 손에 책은 없고 공예품이 들려 있는 것이다. 책이 상품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책을 소재로 해서는 이벤트가 안 되고, 흥행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순천에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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