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훈민정음 28자 → 한글 24자로 변화 이유는?
상태바
7. 훈민정음 28자 → 한글 24자로 변화 이유는?
  •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승인 2024.03.08 09:49
  • 댓글 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용적으로 쓰이지 않게 된 ‘ㆁ, ㆆ, ㅿ, •’ 풀이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반포 당시 기본자는 28자(자음 17, 모음 11)였다.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정한 한글맞춤법에서의 기본자는 24자(자음 14, 모음 10)로 줄었다. 기본자만으로 보면 모두 네 자를 쓰지 않고 있다. 그 글자는 자음 ‘ㆁ(옛이응), ㆆ(여린히읗), ㅿ(반시옷)’, 모음 ‘•(아래아/하늘아)’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여 훈민정음 나무, ‘닿홀나무’를 만들어 보았다. 현대 학교 표준 용어인 ‘자음, 모음’을 세종은 ‘초성/종성(자음), 중성(모음)’이라 했고, 주시경은 ‘닿소리(자음), 홀소리(모음)’라고 했다. 훈민정음 28자 글꼴은 훈민정음 해례본 글꼴을 그대로 가져왔다.

‘기본자’라는 말은 세종실록과 해례본에 나오지 않지만, 세종은 스스로 기본자가 28자임을 분명히 했다. 훈민정음 최초 기록인 1443년 12월 30일 세종실록에서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고 했고,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 서문에서 세종 스스로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제자해>에서는 “정음 스물여덟 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라고 28자를 묶음 단위로 밝혔다.

28자, 24자가 기본자인 이유는 실제로는 더 많기 때문이다. 현대 한글 자모는 기본자 24자 외 자음자는 5자가 더 있어 19자, 모음자는 무려 11자가 더 있어 21자 모두 40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실제 글자는 자음자(초성자)는 11자가 더 있어 28자이고, 모음자(중성자)는 8자가 더 있어 29자이다. 자음자는 그 당시 문헌에 쓰인 글자를 모두 합치면 40자나 된다.

훈민정음 '닿홀나무'?

세종이 기본자를 28자로 한 이유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 다만 해례본 설명의 맥락을 살펴보면, 과학적 의도와 철학적 의도, 인문적 의도가 함께 녹아 있다.

닿홀나무(김슬옹 글/강수현 그림)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한글이야기 28, 글누림, 42쪽.

첫째, 기본자를 28자로 한정한 것은 백성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실제 사용 글자 수를 모두 적시했다면 쉽게 익히라고 만든 문자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더군다나 많은 문자 수는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의도만으로 28자이란 숫자가 정해지지는 않았다.

둘째 의도는 당시 천문 과학의 상징적 의미를 담으려는 것이다. 동양 천문학에서 하늘의 별자리를 28수로 나누었는데 훈민정음은 하늘의 이치를 담아, 하늘의 뜻대로 만들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셋째는 훈민정음이 과학적 짜임새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제한 숫자였다. 사실 훈민정음 최소 기본자는 8자였다. 나무 그림에서 자음 5자(ㄱㄴㅁㅅㅇ), 모음 3자(ㆍㅡ ㅣ)에서 다른 글자들은 가획이나 합성으로 규칙적으로 뻗어 나간(확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28자로 한정한다 해도 나머지 글자들은 과학적 유추나 추론으로 그 글자의 음가를 짐작할 수 있고 배울 때도 기본 학습 자체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초성자(자음) 국제 음운 표시.

그렇다면 왜 기본자가 24자로 줄었는가, 또는 안 쓰이는 글자는 왜 안 쓰이는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가 또는 특정 단체가 의도적으로 없앴다는 음모론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글자마다 안 쓰이게 된 역사적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언어는 보편적으로 변화하는 속성이 있다. 물론 더 큰 이유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든 언해본이든 1910년에 조선이 패망할 때까지 공교육에서 제도 차원에서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러므로 해례본의 의도가 100% 그대로 이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음가는 해례본에서 매우 섬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데,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음가가 흔들리고 주변 음으로 흡수되어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아래아)’는 15세기에는 핵심 모음이었다. <훈몽자회>의 언문 자모에 모음의 순서 ‘ㅏㅑㅓㅕ…ㅡㅣㆍ’에서 소리는 ‘ㅏ’와 유사하지만 모음 순서의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흔히 ‘아래아’라고 부른다. 명칭 자체가 모호하므로 하늘을 본뜬 글자이므로 ‘하늘아’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매끄럽다.

‘•’ 음가는 많은 이견이 있지만, 흔히 혀 뒤쪽에서 낮게 나오는 소리로 본다. 입술을 ‘ㅓ’ 발음할 때처럼 오무리고(구축/口蹙), 혀는 ‘ㅗ’를 발음할 때처럼 안쪽으로 오그리면서(설축/舌縮) ‘•’를 발음하면 ‘ㅓ’도 아니고 ‘ㅗ’도 아닌, 영어의 /ʌ/와 비슷한, 아래아 발음을 낼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 소리가 아직도 ‘국[제주도 토속 국 명칭], [타는 말]’ 등의 낱말에서처럼 남아 있다.

15세기에는 ‘ㅡ’와 대립을 이루는 양성모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소리로는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다른 소리로 바뀌었다. ‘〉〉음〉마음’과 같이 ‘ㅏ’ 또는 ‘ㅡ’로 바뀌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매〉소매’처럼 ‘ㅗ’로 바뀐 경우도 있고, ‘〉하루’와 같이 ‘ㅜ’로 바뀐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음은 인접한 다른 모음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는 소리로서는 18세기 무렵 제주 이외 지역에서는 사라졌지만, 표기 문자는 1933년 한글 맞춤법통일안에서 폐기되었다.

옛이응은 마치 사과처럼 꼭지가 붙어 있어 ‘꼭지 이응’으로 부르기도 한다. 받침으로 쓰이는 경우는 ‘즘(짐승), ᄇᆡᆨ셔ᇰ(백성)’ 등과 같이 오늘날의 이응 받침과 소릿값이 같다. 초성으로 쓰일 경우는 ‘그긔〉그어긔〉거기’와 같이 글자는 ‘ㅇ’로 변하고 발음은 없어졌다. 역사적으로 ‘바〉올〉방울’과 같이 ‘ㆁ(옛이응)’이 앞 음절의 받침으로 고정 표기되면서 글자는 점차 ‘ㅇ(이응)’으로 바뀌었지만, 발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ㆆ(여린히읗)’[]는 ‘ㅎ’[히]와 같은 계열의 목구멍소리로 ‘ㅎ’[히]보다 약한 소리를 나타낸다고 하여 ‘여린 히읗’이라 부른다. 가획의 원리로 보면 ‘ㅇ’[이]보다 한 획이 더 많으므로 ‘센이응’으로 부르는 이도 있다. 현대 음성학자들은 두 성대가 맞닿아 성문을 완전히 막았다가 터뜨릴 때 나는 성문 폐쇄음으로 규정하지만, 실제 쓰임새는 다양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중성자(모음) 국제 음운 표시.

《동국정운》식 한자음에서는 ‘正音, 便뼌安’과 같이 쓰였다. 오늘날과 같이 ‘정음, 편안’이라고 발음할 때 ‘음’과 ‘안’을 목에 힘을 주면서 짧게 발음하면 ‘ㆆ(여린히읗)’[]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 순우리말 표기에서는 ‘ 배(할 바가), 몯 노미(못 할 놈이), 하(하늘의 뜻)’과 같이 특정 기호로 주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뜻을 구별하는 소리로 인식하지 않다 보니 꽤 이른 시기인 1465년(세조 11년) ≪원각경≫ 언해부터 쓰이지 않게 되었다.

흔히 반치음으로 부르는 ‘ㅿ’[ᅀᅵ]의 정확한 문자 명칭은 ‘반시옷’이다. ‘ㅿ(반시옷)’[ᅀᅵ]는 ‘ㅅ’[시]의 울림소리(유성음)로 ‘ㅅ’[시]보다 더 약한 소리처럼 들려 ‘반시옷’이라 부른다. ‘ㅅ’[시]처럼 발음하되 혀를 더 낮춰 ‘ㅅ’[시] 발음을 약하게 성대를 울려 발음하면 된다. ‘ᅀᅵ(사이), (가을), 니(이어)’와 같이 울림소리 사이에서만 쓰였으나 대부분 없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16세기 중반 이후에 일어났다.

기본자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폭넓게 쓰인 합용자는 순경음 비읍(ㅸ)자이다. 안울림소리 ‘ㅂ[비]’에 대응되는 울림소리다. ‘부부’의 두번 째 비읍 발음이 우리는 평소 인지하지 못하지만 순경음 비읍 발음이다.

이러한 안 쓰는 글자들을 살려쓰자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필자는 아래아, 반시옷, 순경음비읍과 같은 특정 글자는 외국어 학습용으로 제한적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한 적도 있다(≪한글혁명≫, 살림터) 곧 외국어 학습이나 사라져가는 소수 언어 표기 문자로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필자가 책임 감수한 EBS 지식채널 ‘훈민정음’편(https://youtu.be/9a34V5g8qM8)에서는 “Zebra 제브러→ᅀᅦ브러, Cotton 코튼→코ᅙᅳᆫ, Drug 드러그→드ᆞ그, 영어 알파벳 L은 'ㄹㄹ', R은 'ㄹ'로, B는 'ㅂ', V는 'ㅸ'로 적으면 헷갈리는 영어 발음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라고 방영한 바 있다.

한글을 부족 표기 문자로 받아들인 인도네시아 부톤 섬의 찌아찌아족은 순경음 ‘ㅸ’자를 활용하여 유용하게 쓰고 있기도 하다. 유엔은 현재 사라져가는 3,000여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영어 로마자를 활용하고 있지만, 훈민정음으로 표기하면 더 효율적으로 보존ㆍ활용할 수 있다.

●이 글은 2023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최초 복간본의 필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탄생과 역사≫(가온누리)를 대중용으로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심보람 2024-03-13 19:27:42
사라진 4개의 문자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창원 2024-03-13 19:24:53
사라진 4개의 문자는 한국인이 자주 사용하지 않고 또한 추후에 일제의 영향으로도 사라지게 되었지만 이제 세계화 소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사라진 4가지 발음을 부활시킬 시대적 필요요인도 증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에 흘려가 사라진 4개의 발음과 문자를 이제 복원 시켜야 할 적시가 오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최현주 2024-03-13 19:23:02
사용하지 않는 필요한 글자들을 회복시켜서
세상에 모든 소리를 담은 훈민정음을 완벽하게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김상기 2024-03-13 19:06:32
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 찌아찌아에서 한글을 받아 들여 부족의 공식 기록 문자로 쓰고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지 않은 한글 4자를 알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문자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인데, 정작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한글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민족의 혼이 담겨 있는 한글이 잊혀 지지 않고 온전히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영민 2024-03-13 17:36:30
마지막에 나오는 지식채널 내용은 제가 사용하는 국어교과서의 자료군요. 현대 한국인이 사라진 글자를 일상에서 쓰긴 어렵지만, 외국어 표기에 활용하는 것은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