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훈민정음≫ 해례본, 책으로서 짜임새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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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훈민정음≫ 해례본, 책으로서 짜임새와 가치
  •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승인 2024.03.21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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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훈민정음), 나무와 함께 종이책으로 세상에 등장

훈민정음은 ≪훈민정음≫(1446) 해례본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다. 해례본은 붓으로 쓴 글자를 나무에 새겨 찍어 낸 목판본으로 제작되었다. 훈민정음이라는 새로운 문자가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전파됐는지는 훈민정음 창제ㆍ반포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한국의 국어교육에서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훈민정음 탄생을 정확히 간파하고 큰 의미를 부여한 이는 일본의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교수였다. 2010년에 출판한 ≪ハングルの誕生-音から文字を創る≫(平凡社, 번역: 노마 히데키/김진아ㆍ김기연ㆍ박수진 옮김(2011). 한글의 탄생:≪문자≫라는 기적. 돌베개.)에서 그 의미와 감동을 이렇게 밝혔다.

"≪훈민정음≫이라는 책, 유사 이래 문자라는 것은 돌에 새겨져 또는 뼈나 동물 등딱지(갑각)에 새겨져 역사 속에 나타나는 존재였다. 그에 비해 〈훈민정음〉은 목판에 새겨지고 종이에 인쇄되고 제본된 책의 형태로 세계사에 등장하였다. 그 책에는 무엇이 쓰여 있었는가? ‘<정음〉이 누구를 위하여 어떠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정음〉은 이러저러한 시스템이다. <정음〉은 이와같이 쓴다. 바라건대 〈정음〉을 보는 자여!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칠 수 있기를’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_(노마 히데키, 원서 298쪽, 번역판 355쪽)

책의 형태로 나왔다는 것은 문자사에서 가장 후기에 나온 인공문자답게 학술적이고도 체계적인 설명과 이론적 근거와 더불어 나왔다는 것이다. 문자도 과학적이지만 그 문자를 소개하고 해설한 맥락도 매우 과학적 짜임새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책으로서의 내부 짜임새

더욱 중요한 것은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도구요 문헌이라는 점이다. 물론 15세기에는 양반들조차 책을 소유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책은 소유를 통해서만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책이기에 다양한 방식의 강력한 지식 전파력을 갖는다. 해례본에서 세종이 스승이 없이도 배울 수 있는 문자임을 천명한 것은 문자 자체가 쉬운 것도 있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책의 형태이기 때문에 그런 자부심을 맘껏 뽐낼 수 있었다.

기록을 중요시 한 세종

세종 이도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 그 역량을 인정 받아 졸지에, 준비 없이 임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독서광이었고 독서대왕이었다. 그래서 임금이 돼서도 책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싶었고 양반들조차 어려운 한자, 한문으로는 그 꿈을 이루기가 불가능함을 알았던 것이다.

필기체와 목판본체, 금속활자체 비교( 박병천, 2021, ≪훈민정음 서체 연구≫, 역락)

한자가 목숨이고 권력이었던 사대부 나라 조선에서 훈민정음이 살아남았던 것은 책의 형태로 세상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금속활자든 목활자든 목판 인쇄든 인쇄 출판의 선진국이었고 독서 강국이었다. 해례본을 몇 권 찍었는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용비어천가》를 550질이나 찍어 펴냈고, 목판본이 활자본에 비해 빠르게 많은 책을 찍어 낼 수 있다는 점으로 보아 적지 않은 분량을 인쇄해서 널리 알렸을 것이다. 또한 세종이 훈민정음을 과거 시험 과목으로까지 도입한 사실을 더한다면 발간한 책의 양에 관한 추론이 가능하다.

얼마 전에 종영된 <고려거란전쟁>에서 필자가 눈여겨본 감동 장면이 있었다. 강감찬이 문관으로서 늘 여진족과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최전방 장수로 임명되어 현지에 부임하여 훈련과 전투 일지 기록을 독려하는 장면이었다. 기록에 남겨야 제대로 훈련하고 성찰해 다음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장면일지 모르나 충분히 있을 법한 장면이었다.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방대한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 기록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기록 강국이었는지를 보여준다. 1966년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우리나라에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책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6.7cm X 622.8cm, 국보 126호,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세종의 천재성은 그런 전통이 만들어 낸 것이고 세종은 그런 전통을 미래지향적인 문자 창제로 이어갔다.

≪훈민정음≫ 간송본 2차 복간본(2023, 가온누리)과 15세기 원래 크기대로 복각한 복각본(박영덕, 2018)

조선은 종이 강국이기도 했다. 문자를 새길 수 있는 도구 가운데 수명이 가장 짧은 종이임에도 500년 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닥나무로 만든 종이 기술 때문이다. 한지는 이러한 천연 재료로 만들어 곱고 질기고 차갑고 맑은 물로 만들어 섬유질을 탄탄하게 해 종이가 매끄러우면서도 빳빳한 감촉과 힘을 준다고 한다. 더군다나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이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어 오래 보존되는 것이다.

금속활자 선진국이었던 조선이 가장 정교한 금속활자 갑인자를 세상에 선보인 것은 해례본 간행 12년 전인 1434년이었다. 그런데도 세종이 정교한 활자본이 아닌 목판본으로 찍어 낸 뚜렷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른 시간에 많은 책을 펴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목판본은 금속활자본보다 돈이 적게 들고 금속활자보다 대량 인쇄가 가능했다. 세종은 새 글자를 좀 더 빨리 백성들의 문자로 만들고 싶어 했을 것이다.

박병천(2021)에서의 비교처럼 목판본 글꼴과 금속활자 글꼴은 다르지만, 목판본 한글 글꼴은 세밀한 판각 효과로 손 붓글씨 꼴과 다른, 금속활자 못지않은 정교한 글꼴을 보여준다.

책 내부 짜임새와 크기

옛 책의 짜임새를 알면 책 읽기의 즐거움은 더 커질 것이다. 옛 책 인쇄본은 대개 모든 쪽마다 테두리가 있었다. 책을 펼쳐 놓았을 때 큰 테두리를 광곽(匡郭) 또는 ‘판식(版式), 판광(版匡)’이라고도 한다. 굵은 선과 얇은 선, 두 선으로 되어 있어 ‘쌍변’이라 부르는데, 접으면 오늘날 한쪽에 해당하는 부분이 반곽이 된다. 반곽의 길이는 안쪽 얇은 선인 ‘내선’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광곽과 반곽은 세로 길이가 같고 가로 길이가 다른데 보통 반곽의 길이를 표준으로 삼는다.

《훈민정음》 해례본 반곽 크기

해례본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든 책이기 때문에 모든 광곽, 반곽의 길이가 장마다 일정하지 않고 조금씩 다르다.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 중 일부 반곽의 크기를 측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책의 구조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판심에서 마치 물고기 꼬리와 같은 모습을 한 곳이 있다. 이를 ‘어미’라 부른다. 어미는 시대마다 또는 임금마다 모양을 달리하기도 했다. 해례본은 위아래 검은색 어미로 되어있어 ‘상하 흑어미’ 구조라고 부른다. 어미가 상하 모두 아래쪽을 향하고 있으므로 ‘상하 하향 흑어미’라고도 한다. 판심의 어미 위아래 굵은 검은 선을 흑구라고 부른다.

책의 크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보통 책 전체 물리적인 크기와 내부의 인쇄 부분 크기가 있다. 책의 표지 포함, 전체 크기가 온전하게 보존된 초간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맨 앞 사진은 간송본 복간본과 박영덕 각자장이 원래 크기를 추정하여 만든 복간본이다. 간송본은 김주원(2010)의 “훈민정음 해례본의 책 크기, ≪문헌과 해석≫ 52호”에서 밝혔듯이 위아래 여백 일부가 잘려져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래 크기 추정도

인쇄 부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므로 내용 파악에 문제를 주지는 않는다. 박영덕 복각본은 추정이긴 하지만 대략적인 원본 크기를 보여준다. 간송본의 2023년 2차 복간본은 ‘가로 19.9cm*세로 28.9cm’이고 박영덕 복각본은 ‘가로 21.3cm*세로 32cm’이다. 2008년에 발견된 상주본은 위아래 여백이 남아 있어 이를 기준으로 책 크기를 추정하면 ‘약 가로 21.52cm*세로 33.46cm’이다. 이건 추정 수치일 뿐 정확한 진실은 표지가 남아 있는 또 다른 원본이 발견돼야 온전히 증명될 것이다.

책 오른쪽의 책 제본용 구멍 수(침안針眼)도 현재 간송본은 4침안인데 원래는 5침안인가 아닌가 논란이 되고 있고 전문가들 의견도 맞서 있다. 15세기 우리나라 책들이 대부분 5침안이라고 하나 예외도 있고 현재 간송본이나 상주본으로는 원본 자체가 5침안이라고 온전한 증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책으로 온 훈민정음 향기를 더 많이 더 오래 맡기 위해 2015년(교보문고), 2023년(가온누리) 두 차례 복간본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학교마다 비치해 학생들이 두루 그 향기를 누렸으면 한다. 울산외고 이재근 교장 선생님과 고시영 국어 선생님은 이 책을 도서관에 두고 해례본을 학생들이 두루 살펴볼 수 있게 한다고 하니 살아 있는 국어교육이 될 것이다. <다음호에 이어 집니다>

●이 글은 2023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최초 복간본의 필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탄생과 역사≫(가온누리)를 대중용으로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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