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 확대하는 ‘권태응문학상’
상태바
기림 확대하는 ‘권태응문학상’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4.05.08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이와 농촌 빼닮은 詩세계…‘동요집 감자꽃’서 확인

권태응 시인을 기림

오월하면 어린이날이 떠오른다. 적어도 충북에선 오월이 오면 권태응 시인이 생각나야 한다. 권 시인은 1948년 생존 유일의 시집으로 ‘동요집 감자꽃’을 남겼다. 시집이 아닌 ‘동요집’으로 명명한 것은 그의 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악보가 없이도 저절로 동요로 흥얼댈 수 있다. 시골에 살지 않았더라도 고향 농촌과 어린이가 함께 상상되는 아름답고 순수한 시세계다. 2018년 탄생 100주년에 즈음해 시작한 주요 기림사업을 짚으며 33세에 요절한 그를 기린다.

충주가 고향인 동천(洞泉) 권태응 시인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지역의 관심이 이어지다가 2018년 충주시가 권태응문학상을 신설하고 생가터 복원과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문학관 건립과 생가터 복원은 무기한 중단됐지만 제정된 문학상 시상은 지속 발전하고 있다.

최근 충주시는 ‘권태응문학상 운영 조례’ 전부개정을 통해 문학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운영위원 구성을 마쳤다. 2020년 제정된 조례에는 심사위원회 조항만 있고 운영위 규정은 없었다. 7일 시 관계자는 “조례가 개정돼 권태응문학상 운영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만간 운영위원회를 열어 문학상 시상식과 아울러 다양한 행사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례에 따르면 사업비가 총 5000만원으로 확대됐다. 수상작 시상금 2000만원 외에 운영비를 확대해 관련 행사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다음달에는 먼저 감자꽃 시 백일장이 개최될 예정이다.

충주 탄금대에 있는 권태응의 '감자꽃' 노래비.

이런 가운데 본보는 권태응 시인이 1948년에 유일하게 발표한 첫 시집인 ‘동요집 감자꽃’ 실물을 확인했다. 지난 3일 충주우리한글박물관은 충청리뷰에 <글벗집>이 출판한 이 시집을 공개했다. 이 시집은 현재까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과 이곳 박물관만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문학상, 운영위 구성

그의 시세계에 대한 문학평론가들의 높은 평가처럼 ‘감자꽃’ 동요집에 담겨 있는 30편을 감상하면 그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너무나도 친근하고 쉬운 우리말의 짧은 운율에서 그의 진심어린 육성이 들린다. 폐병을 앓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결하면서도 곱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권태응 선생 모습. 충주시 칠금동에 그의 문학관 건립이 추진된다.
권태응 선생 모습.   /충청리뷰 DB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은 제목까지 합쳐 서른아홉글자(39자)에 지나지 않지만 자꾸만 되 뇌이게 한다. 창씨 개명을 강요하는 일제에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마음이기도 하다. 감자는 소중한 하나의 생명체로 사람이 아닌가.

<산샘물>

바위 틈새 속에서

쉬지 않고 송송송

맑은 물이 고여선

넘쳐 흘러 졸졸졸

푸고 푸고 다 퍼도

끊이 없이 송송송

푸다 말고 놔 두면

다시 고여 졸졸졸

‘산샘물’ 또한 곡조가 없어도 자체가 동요다. 시 마다 곁들여진 그림 또한 정겹게 어울린다. 이 동요집 겉 그림은 조병덕. 속 그림은 정현웅 화백이 그렸다. 정 화백은 당대에 유명한 만화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신문에 그에 대한 소개도 찾아볼 수 있고, 감자꽃 동요집을 홍보하는 기사에도 등장한다.

1948년 권태응이 출간한 <동요집 감자꽃> 에 실려 있는 '산샘물' 시와 정현웅 화백의 삽화.    /충주우리박물관 소장.

 

<땅감나무>
 

키가 너무 높으면

까마귀 떼 날아 와 따 먹을까봐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봐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

 

이 시는 이 동요집에 가장 먼저 실려 있다. ‘땅감나무’는 토마토를 이르는 것으로 키가 큰 감나무와 비교하면서 어린이와 같은 친근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땅과 가까이 있어 언제나 다가가 따 먹을 수 있는 감처럼 생긴 어린이의 친구다. 권 시인은 이 밖에도 앵두, 도토리들, 율무, 송아지 낮잠, 오곤 자근, 또랑물, 책자랑, 서울구경 등 어릴적 늘 접하고 살던 소재를 매우 쉽고 친근하게 노래처럼 시를 지어 놓았다. 눈으로 활자를 보는 순간 아득했던 고향을 금방 눈앞에 불러 온다.

권태응이 출간한 <동요집 감자꽃> 책 가장 앞쪽에 실려 있는 '땅감나무' 시와 정현웅 화백의 삽화.    /충주우리박물관 소장.

자연고향 충주에 영면

충주 탄금대에 오르면 감자꽃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윤석중 선생이 주축이던 새싹회 후원으로 ‘노래비 충주건립위원회’가 구성돼 1968년 제86회 어린이날에 건립됐다. 이 시비에 ‘감자꽃’ 시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옆면에는 아픈 내용이 있다. 당초 시는 동판에 새겨졌지만 누군가에 의해 사라져 1974년 5월 다시 돌로 만들어졌다.

고 권태응 선생은 1918년 4월 20일 충주시 칠금동에서 출생했다. 1932년 3월 25일 충주공립보통학교(현 교현초) 졸업하고 1937년 3월 4일 경성제일고등공립보통학교(현 경기고)를 다녔다. 1937년 4월 1일 일본 와세다대학을 입학하고, 1938년 재일유학생 모임을 조직했다. 이를 이유로 1935년 5월 일본 관헌에 의해 투옥되고, 1940년 6월 병세악화로 풀려나 귀국했다. 이후 시를 지으면서 요양하다가 충주에서 1951년 3월 28일 병세악화로 작고했다. 정부는 2005년 8월 15일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해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권태응의 '동요집 감자꽃' 차례 쪽.   /충주우리한글박물관 소장.

〈동시마중〉 편집위원인 이 안 시인은 본보에 2018년 권태응문학상의 탄생에 대한 기고를 실었다. 이 시인은 “독립운동가이자 탁월한 동시인(童詩人)인 동천 권태응 선생의 삶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한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선생의 고향인 충북 충주시에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동시분야 국내 최고 상금 2000만원의 권태응문학상을 제정했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 시인은 “권태응은 폐결핵 3기 중환자의 몸임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동시 창작에 쏟아 부었다. 필생의 업으로 매진한 것은 오로지 동시 그 하나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하는 <권태응 전집>을 소개했다. 그는 “권태응이 시조와 단시 창작을 거쳐 동시 ‘땅감나무’에 도착한 것은 1945년 5월 25일이었다. 1년에 100쪽 분량의 원고를 남긴 것이니, 건강한 사람의 몸으로도 이루기 어려운 문학적 성과가 분명하다”고 했다. 그는 권태응을 “흠결 없는 삶의 자취와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70년 가깝도록 미발굴 상태의 보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다”고 만시지탄을 나타냈다. 그 이후 권태응문학상 시상은 매년 이어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