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의 학살엔 왜 침묵하는가? 곽태영 충북민간인학살대책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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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의 학살엔 왜 침묵하는가? 곽태영 충북민간인학살대책위 상임대표
  • 충청리뷰
  • 승인 200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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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언제나 설레임보다 가슴저밈으로 다가왔다. 반가움보다 한숨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지켜본 죄책감이 53년이 지난 오늘까지 앙금으로 고여있다. 한국전쟁 발발직후 군경의 보도연맹원 집단학살로 부친을 여윈 곽태영대표(63). 그는 청주 문화동 집문을 나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되짚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 도경찰청 간부가 사랑채에 세들어 살았는데, ‘경찰서에서 오라고해서 아버지가 가셨다’고 하니까, ‘거기가면 안되는데…’하고 큰 걱정을 하셨다. 깜짝놀란 어머니가 나를 시켜서 얼른 쫓아가 모시고 오라고 해서, 뒤따라가 ‘어머니가 국수드시고 가시래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버님은 ‘별 일없을 거다. 금방 돌아올테니 너 먼저 가있어라’고 하시곤 그냥 경찰서로 가서 돌아오시지 못했다”
열살바기 어린 소년이 무슨 눈치가 있어 아버지에게 엄습한 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곽대표는 부친의 마지막 길을 막지못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 늘 괴로웠다. 39세의 나이에 이데올로기 전쟁의 희생양으로 사라진 아버지 곽한준씨는 청주고를 졸업하고 대구사범 교원양성 과정을 마친 수재였다. 전쟁당시 학교 교사(청주여자상업중학교 또는 청주사범학교)로 재직하다 변을 당했고 슬하의 4형제는 고스란히 홀어머니의 몫이 됐다.
39세 교사 부친 4형제 남기고 변사
“좌판도 하시고 집에서 하숙도 치시고 평생을 손에 물마를 새없이 살아오셨다. 올해 94세가 되셨는데, 아직도 아버님 얘기만 하면 ‘나한테 몹쓸 짓하고 간 사람’이라고 역정을 내신다. 그때 막내가 2살이었고 맏이가 14살이니 얼마나 막막하셨겠는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제사도 안지내셨는데. 우리가 성장한 뒤 집 떠나신 날을 정해 제사를 올리고 있다”
곽대표가 아버지의 부재를 뼈져리게 느낀 계기는 군복무 시절에 비롯됐다. 당시엔 사병을 대상으로 장교시험이 있었는데, 뚜렷한 이유없이 2차 면점에서 낙방한 것. 제대후 경찰시험에서도 합격후 교육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신원조회에 걸려 퇴소조치되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아버님이 전쟁통에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얘기만 어머니에게 전해들었는데, 신원조회 때문에 공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늘이 깜깜했다. 할 수없이 한전 임시직원으로 들어가서 일하다 연좌제가 느슨해지면서 뒤늦게 정식 직원으로 바뀌었다”
한전에서 30년간 재직하다 5년전 퇴직한 곽대표는 일어공부에 몰두하게 된다. “사회인이 되고나서 늘 아버님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자료접근도 안되고 진상을 알아내기 힘들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일본말을 배워서 일본에 있는 한국전쟁 자료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미망으로 육순의 나이에 어학공부를 시작했던 곽대표는 지난해 천주교청죽교구청 테니스장에서 만난 신부님의 조언으로 천주교 청주정의평화위원회 사무실을 찾아가게 된다.
연좌제로 공무원길 막혀
“테니스장에서 만난 신부님에게 내 답답한 심정을 말씀드렸더니, 정평위를 알려주셨다. 그분들한테 조언을 받아 보도연맹 관련 책도 읽어보고, 피해 유가족들도 5∼6명 만나봤다. 하지만 한결같이 쉬쉬하며 공개를 꺼리는 입장이라서 유가족 모임조차 못만들고 있다. 공무원하는 아저씨 뻘되는 친척도 부친이 희생됐는데, 그 얘기만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니, 정말 안타깝다”
곽대표가 만난 피해자 중에 학살현장의 유일한 생존자도 있었다. 올해 78세인 강영애할머니는 전쟁직후 보도연맹원으로 청주경찰서에 끌려가 남일면 쌍수리 야산에서 군인들의 총탄세례를 받았다. 남편과 함께 끌려간 수십명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숨졌고 강할머니는 총탄 8발을 맞은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인근 주민들이 강할머니를 시내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3개월간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헌데, 그 할머니도 남들한테 자기 얘기 하기를 꺼려요. 괴산 사리면에서는 유가족 모임을 만들어서 3월에는 위령탑도 건립한다는데, 청주엔 그많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아무도 나서기를 꺼리니 답답한 일이다” 충청리뷰 취재진이 현장 목격자를 통해 확인한 결과 청주경찰서에 소집된 보도연맹원들의 경우 남일면 분터골, 보은군 아곡리, 남일면 쌍수리 등지에서 최소한 1000여명 이상 총살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법 제정위해 유가족들 나서야
한편 천주교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충북민간인학살대책위원회(상임대표 정진동목사·곽동철신부·곽태영)를 결성하고 적극적인 진상규명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단양 곡계굴 미군 폭격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제를 올렸고 괴산 사리면 유가족모임의 위령탑 건립 결정은 큰 성과로 꼽히고 있다. 올해도 학살현장 답사, 유가족 증언대회, 추모 위령제 등을 통해 민간인 학살 진상을 알리고 정부를 상대로한 특별법 제정운동을 벌여나갈 방침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군이 학살한 노근리사건은 우리 신문방송에서 그렇게 엄청나게 보도하면서, 왜 우리 동족을 죽인 사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홀하게 취급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게 따지고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충북대책위 www.achim625.pe.kr/2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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