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만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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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
  • 충청리뷰
  • 승인 2003.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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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일 상명대 만화학부 교수, 만화를 학문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중
서원대 미술과 졸업하고 일본 유학, 대학시절부터 신문에 만화 연재

만화가 고경일(36·상명대 만화학부 출판만화 전공 교수)씨의 작품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거기에는 시대의 아픔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서민들이 품고 있는 희망도 빠지지 않고 들어있다. 권력자의 비리나 말 실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렇게 그의 만화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를 짧은 언어와 그림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을 코미디 대상자로 삼아도 좋다던 노태우 전 대통령 시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정치풍자 만화 한 컷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는가. 아마 시사만화의 매력은 긴말 필요없이 촌철살인하는 데 있을 것이다. 80년대 중반∼90년대 중반까지 만화가 박재동(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의 만평이 그 날 그 날 화제거리가 됐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고교수 역시 박재동 교수의 만화를 보고 자랐고 그를 정신적 지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러 시사지에 만평 연재
고교수는 지난 93년 청주 서원대 미술과를 졸업했다. 이후 곧바로 일본 교토 세이카대학교 만화학과 및 동 대학원 카툰만화 전공 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교토 세이카대학교 만화학과 스토리만화전공 교수로 부임한다. 물론 교수로 부임하기 전·후로 그의 이력서를 채울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한겨레신문·한겨레 21·뉴스피플 등에 시사만평을 연재하고 일본 오호츠크국제만화전 심사위원 특별상, 국민일보 만화대상전 이야기만화 부문 대상, 서울 창작만화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공모전 당선 등 굵직굵직한 상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그래서 그는 대학 동기 중 몇 안되는 ‘성공한 사람’으로 꼽힌다.
지난 1월에는 제30회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한국특별전 초대작가로 참여하고 돌아왔다. 2003년을 기분좋게 시작한 고교수는 “앙굴렘은 우리나라 천안시보다도 작은 도시인데 국제만화페스티벌을 연다.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세계 몇 십개 국에서 구경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한국 작가들의 만화가 인기를 많이 끌었다고 전했다. 그 끝에 “청주에서 만화페스티벌을 열고 싶다. 이런 축제를 상업적으로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이지 적은 돈으로도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또 언제 이런 행사를 뚝 딱 만들어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일본으로 유학, 박재동씨는 정신적 지주
그의 만화 인생은 대학시절 구체화됐다. 그는 아버지가 동양화를 하셨고, 4남매의 형제 중 3명이 모두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했거나 하고 있는 중이라 선천적인 ‘피’도 일찌감치 그를 이 분야로 이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보사에서 만화를 그리던 그는 대학 3학년 때 국내 최초의 지역신문인 ‘주간 홍성’ 만화작가로 데뷔한다. 이미 박재동, 김한영씨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거쳐갔던 그 곳에서 고교수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야 할 장래를 구체적으로 고민했다는 것.
“서원대신문 기자를 할 때 실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다. 졸업 뒤 적당히 미술교사를 하거나 그림 ‘팔아먹는’ 작가가 됐을 수도 있었는데 기자를 한 덕에 당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녔던 그는 나름대로 시대의 고민에 동참했고, 그것이 지금 시사만화가로 성장한 토양이 됐다는 것이다. 이 때 의식있는 만화가들의 모임인 ‘서울 바른만화연구회(현 우리만화연대)’에 들락거리며 선배들에게 만화를 배우기도 했다. 일본 대학에 만화과가 있다는 정보를 들은 것도 여기서였다. 이후 일본의 좌파 지식인들이 세운 교토 세이카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석사학위를 소지한 국내 만화가 1호를 기록한다. 첫 개인전은 97년 일본에서 열었다.
“일본에서는 풍자만화를 그리더라도 천황·우익집단·종교, 이 세가지를 터치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을 모르고 우익집단을 풍자하는 만화를 그려 전시장에 건 적이 있다. 덕분에 이들로부터 협박전화를 엄청나게 받았고, 일본의 전 매스컴에서는 내 작품을 다뤘다. 그런데 일반 만화는 근대화가 일찍 돼 자리가 잡혔고 20대, 30대, 40대 등으로 세대별 만화가 나와 성인들도 많이 읽는 편이다.”

대학 만화교육의 현주소
이에 비해 우리나라 만화분야는 얼마전까지 전근대성을 면치 못했다. 만화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나 연구가 전무했고,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구조도 도제식 문하생 제도를 넘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대학에 만화과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후반 들어서였다. 이런 문제점을 고교수는 이렇게 진단한다. “정부가 90년대 후반부터 만화콘텐츠를 문화콘텐츠산업의 한 분야로 인정하면서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래서 현재는 출판만화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및 만화관련 학과가 대학원까지 합해 전국 64개 대학에 개설돼 있다. 그러나 많은 대학에서 서로 성격이 다른 만화와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디자인 등을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구성하고 명칭도 이들을 혼합해 놓아 문제다. 열악한 교육환경 개선과 전문교수요원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국내 만화학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상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만화교육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듯 했다. 오는 3월 그는 일본에서 네 번째 개인전을 연다. ‘예쁜 그림 그려서 팔아먹을 수 없는’ 성격인 그는 이번 전시에서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이 만화들을 가지고 미국 U.N에 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미국의 호전성을 비난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주완수 우리만화연대 회장은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작품 팸플릿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한국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 예술가로 살려면 아마 유럽의 동시대인들이 알 수 없는 지독한 슬픔을 오랜기간 몸으로 길러내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고경일은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둔중한 힘의 희극을 택한 것 같다. 시의적인 정치만평을 그릴 때도 그의 작품은 둔중하다. 그는 이 묵직한 힘으로 한국만화의 허리 한 부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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