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전문대]“대학·정원 대폭 늘려놓고 이제와서 자율경쟁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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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전문대]“대학·정원 대폭 늘려놓고 이제와서 자율경쟁 하라?”
  • 충청리뷰
  • 승인 2003.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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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전문대 한숨만… “학생모집 못하면 문닫으라는 얘기” 불만 고조
1차 등록 마감 했으나 학생 얼마나 빠져나갈지 두고봐야

도내 4년제 대학들이 1차 등록마감을 한 지난 10일 전문대 관계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국립대인 충북대를 비롯해 모든 대학들이 모조리 모집인원을 못 채워 추가등록이 예상되는데다 올해 미등록 사태가 유난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도미노 이론이 말해주듯 4년제 대학이 이런 상황이라면 전문대는 볼 것도 없이 고전해야 한다. 참고로 청주지역의 4년제 대학들은 70∼80%를 채워 간신히 체면유지를 했지만 극동대·영동대·세명대·충주대 등은 30∼50%에 그쳐 학생모집 전선에 비상이 걸렸음을 보여주었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2003년도 고교졸업자는 60만9831명인데 반해 4년제와 전문대를 합친 대학 정원은 73만9629명이다. 그래서 모든 졸업생들이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12만9798명이 모자란다는 계산이 나온다. 충북만 따져보면 1만9555명이 졸업하는데 대학 모집정원은 2만6775명으로 7220명을 채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대학에 안가는 학생들이 있어 결원은 더 늘어난다고 봐야 한다.

1차 등록률 의미 없어
지난 4∼7일 사이에 1차 등록을 마감한 결과 충청대는 2860명 모집에 2258명이 등록, 80.9%의 등록률을 보였다. 그리고 주성대는 2512명 모집 정원에 1450명이 등록해 57.1%, 청주과학대가 856명 모집에 601명 등록, 70.2%로 나타났다. 그리고 옥천의 도립 충북과학대는 모집 정원 540명에 389명이 등록하여 72%의 등록률을 보였다. 하지만 이 통계는 어디까지나 1차 등록률이고 여기서 몇 명이 더 빠져나갈지는 미지수다.
이들 대학들은 앞으로 추가등록을 실시해봐야 하지만, 최종 등록률이 지난해처럼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말 각 전문대가 최종 등록을 마감한 결과 국립인 청주과학대는 100% 정원을 모두 채웠고, 다른 대학의 결원도 20∼30명선에 불과했다.
학생모집의 어려움은 대학에 닥친 가장 큰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대학관계자들은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어려움의 정도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실제 충북지역 총·학장협의회에서 지난해 입시를 근거로 지역별 등록률을 조사해 본 결과 서울과 경기도, 충북 및 충남 일부는 90% 대를 넘었으나 남쪽으로 갈수록 비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낮은 전남은 50% 대에 머물렀다. 김일중 주성대 부학장도 이런 의견에 동조하며 “학생들이 무조건 서울로 가려고 해 수도권과 먼 곳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대의 위기는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에서 왔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너무 많은 대학을 양산하고 정원을 늘려준 것이 오늘날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이 서울대학이다. 대학 정원 채우기는 서울부터 내려와 남부지역은 안간힘을 써도 못채운다. 대학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학교인가를 무차별적으로 해주고 정원을 늘려주고 나서 자율경쟁을 하라는 것은 경쟁력 없으면 문 닫으라는 얘긴데, 얼마나 무책임한 처사인가. 이러다보니 학생들을 끌기 위해 학과 같지도 않은 과를 우후죽순으로 만들고, 학과 명칭을 이상하게 바꾸는 대학들도 있다.” 남기헌 충청대 교수의 비판섞인 진단이다.

“게임의 방식 같게 해달라”
주성대는 2003학년도 입시에서 전문대 최초로 지난 9월에 수시모집을 실시했다. 학생모집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예치금 50만원을 받고 접수한 결과 600여명이 응시했으나 이 것 역시 수험생이 원하면 언제든지 돌려줘야 한다는 데 대학의 고민이 있다. 김일중 부학장은 이에 대해 “4년제 대학은 수시모집에 합격하면 다른 대학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으나 전문대는 그런 규정이 없다. 그래서 한국전문대교육협의회에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이런 내용을 건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형식으로 4년제와 전문대는 ‘게임의 방식’이 다르다. 신용태 충청대 홍보처장의 말이다. “4년제는 9월부터 수시모집 등으로 학생을 붙잡아 놀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특혜가 없다. 그리고 4년제는 가·나·다 군으로 나뉘어 있어 한 학생이 3번까지 밖에 응시를 못하지만 전문대는 전국 159개 대학에 159번 지원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대 관계자들의 요구는 학생수를 어느 정도 확보하기 위해 4년제처럼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그게 안될 경우 언제까지 대학간 ‘출혈경쟁’을 일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각 대학에서는 홍보예산을 감당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학생 한 명이라도 더 오게 하기 위해 중앙 및 지방신문, 방송 등 각종 매체에 광고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등학생들에게 인기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유료광고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말하는 한 대학 관계자는 “홍보비가 끝도 없이 나간다”고 시인했다.

전문대 구조조정 시작될 듯
따라서 도내 전문대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군살빼기’를 할 것으로 감지된다. 각 대학별로 폐과를 결정할 수 있는 조항이 마련돼 있어 학생모집이 안될 경우 과를 없애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교수, 강사, 겸임교수 등의 인적자원에도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모 대학에서는 2년 계약으로 초빙되는 겸임교수 중 계약 만료된 사람에 한 해 계약을 안하는 방식으로 자연감소를 시켰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폐과하면서 교수 등을 학생들의 교양지도로 전환해 불만을 사고 있다.
대부분의 도내 전문대 관계자들은 아직 뚜렷한 구조조정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으나 대비는 해야 할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모 대학 교수도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야간대학에 대해서는 직장인 배려 차원에서 폐과를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주간은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래서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과는 얼마든지 없어질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답변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기숙사 확충, 핸드폰 1개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모바일 캠퍼스 구축, 취업대비 교육 등 여러 대책이 마련됐거나 이미 실시중에 있다. 앉아서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하기 전에 남보다 한 발 앞서 나가자는 것인데 일반인들이 대학에 주문하는 것도 이런 태도다. 노 대통령 당선자는 전문대 육성책으로 전문대 체제와 운영을 특성화·전문화, 전문대 교수의 산업체 연수학기제 도입, 산업체 현장실습의 실질적 활성화를 위해 연계된 기업체에 세제혜택 부여 등을 공약한 바 있으나 이것이 어느 정도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전문대의 위기,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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