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2월, 압실 마지막 장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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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2월, 압실 마지막 장승제
  • 충북인뉴스
  • 승인 200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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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시대부터 전해진 600년 전통의 장승제
대청댐 건설로 주민 떠나자 마지막 제 올려
1979년 2월 31일 청원군 문의면(文義面) 문덕리(文德里) 압실 부락의 마지막 장승제가 슬픈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충북대 이융조 교수, 경희대 김태곤 교수, 서원대 고 정란교 교수, 일본 민속영화 감독과 취재기자, 주민 등 2백 여명이 장승제 행사를 지켜 봤다.

   
▲ 장승바꿈
마한시대부터 전해진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 암실 장승제에선 썩은 장승을 뽑고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 마을의 축제였다. 하지만 대청댐건설로 주민들이 떠나게 되면서 79년 2월에 마지막 제를 올리고 600년 역사를 접는다. / 1979년 2월
압실 장승제는 충청북도 전역에 단 한 곳 밖에 없고 전국 5곳의 장승제 중에서도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것이라 많은 취재진이 몰려 왔다. 압실 장승제는 마한시대부터 부락 입구에 석탑 또는 자연석을 쌓고 제를 올리는 탑신제에서 유래해 이어져 온 것으로 수천년 역사를 지켜 온 토속 신앙의 본보기가 돼 왔다.

마지막 장승제가 열리던 날, 아침부터 동네 아이들은 아는 듯 모르는 듯 장승 주변을 신나게 맴돌았고 어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장승제에선 준비했다. 이 날 장승제는 제관으로 뽑힌 정현섭(鄭鉉燮)씨와 축관인 안우태(安宇泰)씨가 몸 단장을 한 후 장승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왼새끼를 꼬아 늘이고 붉은 황토흙을 뿌려 잡귀를 막았는데 외지인 출입도 엄격히 제한했다.

   
▲ 축문 낭독
제관 정현섭씨와 축관 안우태씨가 암실 마지막 장승제때 축문을 읽으면서 목이 메여 몇번인가 멈추는 바람에 참가자들까지 울먹였다.
/ 1979년 2월
대청댐 건설로 37가구의 압실 마을 초가집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거행하는 장승제였기에 정성껏을 다해 안희태(安熙泰)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한복으로 갈아 입고 행사 준비에 바빴다.

아침 일찍 동산에 올라 장승으로 쓰일 굵은 소나무를 벌채해 오면 마을 사람 중 솜씨 있는 사람들이 장승을 깎고 솟대를 다듬었다. 준비하는 동안 농악 풍물패가 한바탕 잡귀를 쫓는 풍물을 치고는 해가 지기 전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으로 새로 깎은 두 장승을 길 양 옆 으로 기존 장승 한 개씩을 뽑아 버리고 바꿔 세웠다.

장승제가 열리던 날 아침부터 제관들은 제사 준비를 하고 부락의 남정네들은 부락 공동 샘물을 깨끗이 청소, 새 물로 제를 올리게 하고 농악을 앞세워 부락을 돌며 부락의 안녕과 행운을 축원했다.

   
▲ 솜씨좋은 정헌태씨
청원군과 보은지방 장승축제때마다 초빙을 받는다는 정헌태씨가 산에서 벤 통나무를 깎아 장승의 얼굴을 만들고 있다. / 1979년 2월
풍물이 있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찾아가 신명나게 춤까지 춘다는 정민혁(鄭敏赫)씨가 마지막 장승제가 열리던 날 집집이 풍물패들을 따라 다니며 덕담과 함께 춤을 덩실덩실 추어 우울했던 부락민들을 잠시나마 즐겁게 했다.

해가 지고 장승제 장소 근처에 모닥불이 타오르자 구경꾼과 주민들이 모여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 준비한 쌀 3말 3되를 방아에 찧어 시루에 앉히고 불을 때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제관과 축관이 제물을 차려 놓고 장승제를 시작했다.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제신들이시여 여기 불쌍한 압실 주민들이 댐 건설로 물이 들어와 모두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다시는 뵙지 못할 이 자리를 빌어 축원하오니 우리 주민들이 어떤 곳에 가서 살던지 항상 살펴 주시고 마지막으로 대접할 음식 부족하오나 흠향하옵소서. 제관도 울먹이고 마을 주민은 물론 참석한 사람들 모두 눈시울을 적게 했다. 장승제가 끝나고 큰 떡시루를 헐어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백설기를 나누어 준 후 6백년 전통의 압실 장승제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 얼씨구 좋다!
동네잔치때면 신명을 돋우는 민혁씨가 이번엔 농악장단에 맞춰 춤을 선보였다. 마지막 장승제가 열린 장승앞에서 보여주는 것이라 춤사위에 더욱 신명이 깃들여졌다.
/ 1979년 2월
압실 장승제 정보를 소상히 전해들은 경희대 김태곤(金泰坤) 교수는 필자와 함께 동행하여 장승제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 보며 영화 필름에 담고 이 장승제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면 처음부터 끝 장면까지 사진으로 기록하라며 한 장면 한 장면 설명도 잊지 않았다.

필자는 새벽부터 장승 깎고 떡방아 찧고 장승제가 치러지는 새벽 2시까지 1백 여장이 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자료는 아직까지 소중한 보물로 잘 간직하고 있다.

2006년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올 한 해도 우리 모두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병행하며 바쁜 한 해를 보냈을 것이다. 압실 장승제를 위해 장승을 깎던 어느 촌부가 새해에는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평안하고 건강하길 바란다는 말처럼 밝아오는 새해 정해년(丁亥年)에는 우리 도민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 前 언론인·프리랜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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