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 성역인가 카르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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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 성역인가 카르텔인가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7.0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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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처 관계자에게 ‘특정사, 간담회 초청 말아라’ 요구
기자실, 브리핑룸 전환 등 개혁에도 불구 ‘구태 여전'
사전에서 기자단(記者團)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같은 지방이나 부처에서 취재를 담당하는 기자들로 이루어진 단체’라는 뜻풀이가 달려있다.

각기 다른 매체의 기자들이 모여서 굳이 기자단을 구성하는 이유에 대한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선 취재의 편익을 꾀하고, 취재원과 언론사 사이에 정보의 창구를 공식화함으로써 정보의 오·남용을 막고자 한다’는 것이 일선기자들이 말하는 기자단이 필요한 ‘존재의 이유’다.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사이비 언론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어수단으로, 기자단이 존재하는 구실을 설명하기도 한다.
 
   
▲ 경제담당 출입기자들이 기업체 홍보담당자에게 간담회 등에 특정회사 기자들을 베제시켜줄 것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 사진=육성준 기자
이에 반해 기자단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취지와 달리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거나 변화하는 시대의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자단의 대표적인 역기능을 예로 들자면 기자단이 출입처를 상대로 압력단체화하는데 따른 폐해다. 기자 한 사람의 주장도 귓등으로 흘리기 어려운데, 전체 기자집단이 한 목소리를 낼 경우 엄청난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공개 가능한 대부분의 행정정보 등에 대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보 유통의 창구를 특정 언론사들의 몫으로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관의 홈페이지 등을 검색하면 각종 공고는 물론 보도자료 등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으며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행정정보 공개청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

결국 경향 각지의 기관들이 기자단의 본거지인 기자실을 아예 폐쇄하거나 브리핑룸으로 전환한 것도, 변화하는 추세에 발맞춰 기자단의 역기능을 방지하려는 언론인 스스로의 노력 때문이거나 혹은 전국공무원노조와 같은 기관 내부조직의 압력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청주에서 다시 기자단의 그릇된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2월 초 경제(기업) 담당 일간지 기자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기업체가 주최하는 간담회에 특정 언론사(충청투데이, 주간지 등)는 초청하지 말도록 권고(?)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날 도내 A일간지의 M기자는 간담회를 주최한 업체 홍보담당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사가 간담회에 참석할 경우 우리가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결국 거론된 언론사들이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M기자는 ‘후배기자들의 여론’이라며 이같은 의사를 홍보담당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는 단순히 밥을 사는 자리가 아니라 자사의 신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였다는 점에서, 배제된 언론사들은 결국 동종 언론이 쳐놓은 진입장벽에 취재마저도 가로막힌 꼴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가장 난처한 위치에 처한 사람은 기업의 홍보담당자였다. 거론된 언론사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홍보담당 C씨는 “우리야 속된 말로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데, 기자들끼리 서로 편가를기를 하는 것 같아 못내 관계가 불편했다”고 말했다.

충투, 기자협회 가입이 도화선?
그렇다면 기업체 홍보담당자에게까지 연락해 특정사의 참여를 배제토록 한 사태는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전에 본사를 두고 청주에 별도의 법인을 설립한 충청투데이가 12월5일 충북기자협회에 가입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충북기자협회(회장 MBC 이태문 기자)는 12월5일 회장과 사무국장, 9개 회원사 지회장 등 운영위원 11명 가운데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운영위원회를 갖고 표결을 통해 그동안 비회원사로 있던 동양일보, 새충청일보, 충청투데이(청주), 청주불교방송 등 4개 회사를 회원사로 가입시키기로 의결했다.

이날 표결은 가입을 신청한 5개 회사에 대해 각각 찬반 여부를 묻는 기표란이 표시된 투표용지에 기표를 한 뒤 과반수 가결 원칙을 적용해 이루어졌는데, 투표 결과 회사에 따라 5대 4, 7대 2 등으로 가입이 결정됐으나 HCN은 3대 6으로 가입이 부결됐다.

문제는 이날 투표에서 방송사와 신문사의 입장이 교묘하게 엇갈렸다는 것이다. 방송은 방송, 신문은 신문대로 동종의 신입사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이미 형성돼 있는 가운데, 운영위원이 방송사 7명, 신문사 3명, 통신사 1명으로 구성돼 있어 표결에 부칠 경우 신문사의 가입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지역 일간지들이 타 지역 언론이라며 경계해 온 충청투데이가 충북기자협회에 가입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날 투표에는 운영위원 11명 가운데 9명이 참여(충북일보 지회장, 연합뉴스 지회장 불참)했는데, 충청투데이는 찬성 5표, 반대 4표를 얻어 가까스로 가입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사들의 몰표를 가정할 경우 충북일보만 운영위에 참석했더라도 부결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따라 회의에 불참한 K지회장이 곤경에 처했다는 뒷얘기도 들려온다.

결국 광고 둘러싼 다툼인가
이날 충북기협의 운영위 결과는 충청리뷰 458호(12월9일자)에 ‘충북기협, 닫혔던 문 활짝’이라는 제목 아래 보도되기도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충청투데이도 가입 이튿날 자체 사고(社告)를 통해 자사의 충북기협 가입 사실을 알렸으나 오히려 이 사고가 화근이 된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행정기관 광고에서 철저하게 배제돼온 상황에서 이 사고가 ‘우리에게도 광고를 나눠달라’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행정기관에 ‘우리도 기협에 가입했으니 광고를 내놓으라’는 노골적인 요구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충청투데이 일선 기자들은 이같은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충청투데이 지역주재 D기자는 “충북기협에 가입된 이후로 오히려 견제가 심해졌다. 자치단체도 엄연한 광고주이고 자유의사에 따라 광고할 수 있음에도 기자단이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분명한 횡포다. 심지어는 ‘1개 신문사에게 맞을래, 아니면 5개 신문사에게 맞을래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주장했다.

D기자는 또 “우리 회사가 대전에서 창간한 것은 분명하지만 청주에 별도 법인을 두고 편집권이 독립된 상태에서 차별화된 신문을 만들고 있는데, 대전 신문의 충북 주재 정도로 홀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의 한 언론단체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기자실이 브리핑룸으로 전환되는 등 몇 년 사이 큰 변화가 있었지만, 지방에서는 이번 경우와 유사한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자협회만 보더라도 기존 가입사들끼리 담합해 특정사를 배제하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회사가 가입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광고를 둘러싼 힘겨루기도 문제지만 기자단이 기자회견 등 취재에 필요한 정보를 독점하는 문제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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