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의 당대성과 진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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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의 당대성과 진보성
  • 충북인뉴스
  • 승인 200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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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경 민 연출가
무용은 따분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다르다.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역동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것이 무용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 ‘당대성’과 ‘진보성’이다.

예술이 처한 현실에 철저히 뿌리를 두되, 끊임없이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것이다. 연극이냐 무용이냐 하는 근대적 장르 개념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다. 그냥 ‘공연예술’이면 족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연극과 무용 등 장르 사이의 장벽은 물론이고, 무용 안에서도 발레·한국무용·현대무용 등으로 전공을 나눠 편가르기에 열중하고 있다. 또한 무용계의 현실만은 아니지만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한 지원금 수혜라든지, 무용제 및 콩쿠르에서 수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국무용제, 서울무용제 최우수연기상, 동아 및 신인 콩쿠르 부문별 금상을 받으면 남자 무용수에 한해서 군대 면제 혜택을 받는다.
이런 폐쇄적 구조로는 21세기의 예술을 이끌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원로 예술인 박용구(92)선생은 대중문화에 갇혀 있는 ‘한류’를 공연예술로 확장해 한류 르네상스를 꽃피우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럽의 공연예술을 잘 살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성 싶다. 세계적 안무가 혹은 단체를 꼽으면 재미있게도 대부분이 유럽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람이거나 단체다. 작년에 방한한 빔 반데키부스(벨기에),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모나코), 피나 바우쉬(독일), 제롬 벨(프랑스), 마기 마랭(프랑스), 매튜본(영국) 등도 모두 유럽인 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상당히 오래된 것이어서, 유럽무용가들의 독주가 세계 무용계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현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1990년대 초까지 만하더라도 현대무용하면 미국이 메카였으며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유럽인들조차 현대무용을 공부하거나 활동하려면 미국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어느새 초라한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왜 현대무용의 메카였던 미국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재정지원 축소로 대표되는 정치적 신보수주의(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다. 실험성이 강하고 기존 예술의 형식과 전통을 거부하는 성향이 강한 현대무용은 진보적 지식인과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대표적 장르다.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는 현대무용이 꽃필 수 있는 훌륭한 토양이 된다. 이는 미국 현대무용의 중흥기였던 1960~70년대가 반전운동, 히피문화와 같이 젊고 저항정신이 강한 문화와 정서로 대변 되는 시대였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나날이 보수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오늘날 왜 현대무용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안무가들의 실험정신을 독려하고 그들의 전위적인 작품을 적극 옹호하는 유럽의 문화적 풍토가 민족과 국적을 초월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을 끌어 모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작품을 감상하고 화두를 생산하며 논쟁의 한복판으로 무용을 끌어들이는 사람들도 역시나 그들이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무용이 그립다면, 먼저 우리나라의 무용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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