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대책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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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대책세워라”
  • 충청리뷰
  • 승인 2003.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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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협의회, ‘인문학에서 본 노무현 정권의 과제’ 심포지움
염무웅·주진오·강내희 교수 발표… 내로라하는 논객들 토론에 참여

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협의회(회장 유초하 충북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달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서 ‘인문학에서 본 노무현 정권의 과제’ 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을 열었다. 영남대 염무웅 교수가 ‘20세기의 극복을 위하여’에 대해 기조발표를 한 데 이어 상명대 주진오 교수가 ‘한국 근대 국민국가의 마무리와 넘어서기’, 김창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노무현의 등장으로 무엇을 알 수 있나’, 중앙대 강내희 교수가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인문학 위기의 극복’에 대해 분과발표를 하였다. 각자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들은 역사·철학·문학 파트에서 노무현 정권의 출범을 해석하고 앞으로의 과제가 무엇인지 진단,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토론자로 나선 사람들도 김인걸 서울대·김정란 상지대·설헌영 조선대·성경륭 한림대 교수, 유기홍 개혁국민정당 정책위원장,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등 내로라하는 논객들이어서 흥미를 더했다는 후문이다. ‘충청리뷰’는 이 날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20세기의 극복을 위하여’ 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한 염무웅 교수(영남대 독어독문학과)는 “2002년은 우리 역사에서 1960년이나 1987년과 비견될 수 있는 정치적 앙양의 한 해였다. 60년 4월 민중세력의 봉기는 이승만 독재정권을 쓰러뜨렸고, 87년 6월 항쟁은 군사파시즘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2002년에는 광장의 축제와 인터넷을 통한 대중적 참여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결정력을 발휘했다. 월드컵 경기에 대한 국민들의 응원열기와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추모시위는 대선과 구별되는 독자적 행사이면서 동시에 대선과 깊숙히 연관된 하나의 통합적 과정이었다”며 이를 통해 우리사회의 국가영역 내지 정치영역의 절대적 우위가 쇠퇴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보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노무현 개혁노선의 승리는 매우 힘겨운 것이었다며 김대중 정부가 그러했듯이 앞으로 5년 동안 노무현 정부 또한 수구세력의 일대 반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외에도 그는 인문학의 학문적 정체성과 사회적 위상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제하고 “대학개혁의 미명하에 시장논리가 대학을 황폐화하고 있기 때문에만 인문학이 위기에 몰린 것은 아니다. 가까이는 IMF 구제금융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좀 더 멀리는 박정희 시대에 수출주도형 의존적 산업화를 추진할 때부터 경제적 효율성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배척되고 추방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지금 우리사회는 적대적인 두 세력으로 양분되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대치상태에 있다. 인문적 가치가 끼여들 여지도 없는 이 각박한 현실 자체가 인문학의 분발을 촉구한다고 보는데,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 의연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노무현씨의 새 정부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방향수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인가 예의 주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류가 교체됐다”
이어 주진오 교수(상명대 사학과)는 ‘한국근대국민국가의 마무리와 뛰어넘기’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19세기 말 이후 한국의 국가적 목표는 근대민족국가의 수립이었다. 그러나 분단현실과 식민지 과정에서 청산되지 못한 봉건적, 국가지상주의 유산들이 중첩되어 근대국가의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우리사회에는 근대의 마무리라는 민족적 과제와 근대의 뛰어넘기라는 세계사적 과제가 혼재되어 왔던 것”이라고 밝히고 노무현 정권이 지향해 나갈 목표는 한국사회 주류의 교체와 제도화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주류는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기득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사회운동을 억압하면서 권위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중앙집권적 불균등개발과 재벌중심 경제를 옹호해 왔다는 것. 이들은 역사적 정통성 상실과 아래로부터의 시민적 리더십 결여, 그리고 합리적 경쟁 밖에서 특혜를 추구함으로서 사회적 책무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주교수는 꼬집었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특징은 끈질긴 저항과 모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신하는 새로운 주류가 등장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고, 노정권의 과제 역시 이들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교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족적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발상도 노대통령이 언급했듯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무엇이 한국의 정체성인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마저 분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의 존립을 위해 해야 할 일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인문학 위기의 극복’에 대해 발표한 강내희 교수(중앙대 영어영문학과)는 “지금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순수예술 형태의 문화를 옹호해온 인문학의 이상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국립극장이나 미술관, 박물관 등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라는 압박을 받고, 문화예술이 문화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인문학의 위기는 이 문화상품화와 정확하게 궤를 같이 한다”며 “상품으로 전환한 문화는 경쟁력을 상실할 때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 역시 자신이 지지해온 문화예술의 상품적 가치가 줄어듦에 따라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들과 함께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생대중, 대학당국, 국가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라고 명쾌하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교수는 인문학 존립을 위해 노무현 정부가 해야 할 두 가지 ‘긴급조치’를 언급했다. 첫째는 대학에서 인문학이 죽어가는 가장 큰 이유가 인문학 전공 학생들의 사회진출 기회가 없기 때문이므로 이들 전공자들이 일반 기업체 등 시장으로 나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각종 학교와 대학, 전문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미디어센터 등 공공문화기반 시설의 수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것. 그리고 둘째는 대학의 학제를 개편하라는 것이다.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학과나 대학은 대학원과정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으로 강교수는 여기서 사서를 배출하는 도서관학과의 경우 학부과정에 두는 것은 향후 도서관에서 근무할 때 필요한 전문지식 함양이라는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제기했다.
/ 홍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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