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절반은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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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 절반은 성공했습니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7.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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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원어민강사된 결혼이민자 크리스피나·유내사
필리핀 여성으로 결혼을 위해 한국행을 택한 크리스피나 미카발로 비(43)와 유내사 앤 발데스(33). 두 사람은 결혼이민자의 모델이다. 두 명 모두 지난 2000년 한국으로 건너와 7년 동안 ‘적응기’를 거쳤고, 현재는 영어 원어민강사라는 어엿한 직업까지 가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은 결혼이민자들이 부러워하는 미래다. 집안일과 농사, 아이 양육, 거기에 강사생활까지 척척 해내는 이들은 이미 한국인이었다. 이들 스스로도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현재 크리스피나는 우암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영어 원어민강사로 일하고 있고, 유내사는 남부교회에서 운영하는 남부지역아동센터와 청원군 외천초·갈원초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경력은 짧지만,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 정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듯 당당했다. 이들이 원어민강사를 해서 받는 돈은 한 달에 70~80만원 선이나 앞으로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지향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고은영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그동안 초기 정착을 위한 교육을 해왔는데 이제 이주여성들의 자립을 위한 직업교육과 사회교육에 치중할 계획이다. 그래서 원어민강사와 통역사, 다문화강사를 길러 내기 위한 교육을 3월부터 시작한다.

이민 초기에는 우리말교육과 문화교육·가족상담 등을 하고, 3~5년까지는 국적취득과 법률지원, 이후에는 직업교육을 한다. 결혼이민자들을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보지 말고 우리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은 크리스피나와 유내사가 원어민강사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발품을 팔아가며 일자리를 알아보고 이들 뒤에서 후견인 역할을 한 덕분이었다.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마라”
청원군 현도면 죽전리에서 논농사를 짓는 남편, 7세된 아들과 함께 사는 크리스피나는 통일교회에서 남편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통일교 신자는 아니다. 사진만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언어가 안 통하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다. 이제는 한국음식도 제법 하고 한국말도 알아들을 정도가 됐다. 집안 형님들이 한국말을 가르쳐 줘 배웠는데 한국말이 어렵다”는 그는 필리핀에서 4년제 정규대학을 나오고 교사로 일했다.

또 유내사는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에 산다. 역시 통일교회에서 남편을 소개받았다. 명랑한 유내사는 우리말을 곧잘 했다. 그는 “나 역시 언어와 음식 때문에 힘들었으나 지금은 한국음식 만드는데 자신이 있다. 김치, 된장찌개, 매운탕을 잘 만들고 필리핀 사람들이 먹지 않는 회도 좋아한다.

이번 설에는 맏며느리인 내가 전적으로 상을 차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내사도 4년제 대학 졸업자다. 무역학을 전공한 그는 한국에 오기 전에 전화국에서 근무했다.
여느 가정처럼 설 명절을 쇠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하는 이들은 “명절에 가족들이 만나는 것은 좋지만, 일하는 게 힘들다. 필리핀에는 이처럼 큰 명절이 없다”며 웃었다.

크리스피나와 유내사는 “아직도 외국인이라고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불편하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며 빤히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우리 둘이 이야기 하자 ‘시끄럽다’고 야단치는 어른도 있는데 어떤 지원보다 우리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한국인인 기자도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외국인에 대한 배타의식이 누구보다 강한 우리는 덮어놓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결혼이민자나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왕따’ 당해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강사활동해서 번 돈 중 일부를 친정 필리핀에 보내고, 나머지는 가정생활에 보태는 건강한 사람들 이었다. 자녀들도 열심히 키워 크리스피나는 아들을 유치원에, 유내사는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특히 유내사는 없는 시간을 쪼개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나가 원어민강사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 홍강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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