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자와 함께하는 황순예할머니의 설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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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자와 함께하는 황순예할머니의 설 보내기
  • 오옥균 기자
  • 승인 2007.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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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며 손자들 키워
생활고로 자식 등 돌린 아들, “못 가르친 내 탓”
   
▲ 할머니와 두 손자는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오손도손 화목하게 살고 있다. 그래도 명절 때면 황순예 할머니는 아들 생각에 가슴이 저린다. / 사진=육성준기자
대우재단이 운영하는 대우꿈동산아파트(봉명동)에는 결손가정 51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부모없이 소년소녀가장이 가정을 꾸려가고 있거나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손가정들이다. 설을 사흘 앞둔 대우꿈동산아파트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센터 사무실에는 명절을 즈음해 후원인들이 놓고 간 생필품 박스들로 명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의 가정들이 명절에는 이 곳을 떠나 친척집에서 명절을 보낸다.

할머니, 형과 함께 살고 있는 상현(13·봉덕초 6년)이도 이번 설에는 인천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간다. “큰 아빠 집에 가서 형, 누나들도 만나고 오락실도 갈 거예요”라며 상구는 오랜만에 찾아올 친척들과의 만남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설을 앞둔 황순예 할머니(81)의 마음은 무겁다. 인천에 사는 큰아들 또한 넉넉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데다 요즘 들어 부쩍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들이 장성할 때까지는 아프지 말고 돌봐야 할텐데”입버릇처럼 황 할머니는 연신 이 말을 되풀이 한다.

할머니가 손자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상구(14·송절중 입학 예정)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 아버지 이 씨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들을 어머니 댁에 맡기고 집을 나갔다. 인천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오던 이 씨는 아내가 집을 나가고 결국 아이들을 뒤로한 채 소식을 끊었다.

명절이면 황 할머니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것이 생사조차 알 길 없는 아들 때문이다. ‘올 설에는 형네 집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며 기약없는 아들과의 끈을 놓지 않는다. 큰 집을 다녀오면 어김없이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그칠 줄 모르고 우는 상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아이들 두고 떠난 놈 심정은 오죽하겠어, 어려운 살림살이 핑계로 학교도 제대로 못 보낸 내 탓이야. 살아있긴 할 테니 내가 어떡하든 아이들을 키워놓으면 좋은 날이 있지 않겠어”라며 할머니는 아픈 가슴을 쓸어내린다.

팔십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괴산에서 살던 황 할머니는 면사무소의 도움으로 3년전 이 곳으로 이사 오게 됐다. 정부보조금과 약간의 후원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황 할머니와 아이들은 꿈동산아파트로 들어오면서 예전보다는 많이 여유를 찾게 됐다.

어릴적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던 상구도 이 곳에 와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시골 노인네가 아는 게 있어야지, 나라에서 치료비를 다 내줄지는 생각도 못 했어”라고 말했다. 상구는 네 살이 되던 해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후로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왼쪽 다리가 펴지지 않아 절름발이로 살고 있었다.

한 때는 신경이 살아나지 않아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몰랐던 상구의 다리는 4개월간의 입원, 세 차례의 수술끝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 나았어요”라며 상구는 덤덤히 말했다. 하지만 상구는 아직도 몸 상태가 완전하지는 않다. 사고당시 생긴 외상으로 피부가 튀어나와 보기 흉하게 일어나는 켈로이드란 병을 앓고 있다. 할머니는 부모없이 생활하는 손자가 몸까지 성치 않은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밝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내심 고맙다. 가족이 세 명 뿐이지만 아픈 것은 상구만이 아니다. 할머니도 다리가 아프지만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한다. 아이들은 치료비 전액이 지원되지만 할머니는 큰아들 앞으로 의료보험이 가입돼 있어 치료비의 일정부분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앞으로 나온 국가보조금으로 병원을 다니는 것이 아이들에게 죄짓는 것 같다는 것이 할머니의 말이다.

기자가 찾아간 14일 상구는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15일 졸업식을 앞둔 상구에게 할머니는 졸업식 날 자장면을 사주겠다고 인심을 썼지만 상구는 고기를 먹겠다고 떼를 썼다.
할머니와 두 손자는 어렵게 생활했지만 여느 가정과 다르지 않은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 오옥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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