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계탐사>문명이 거부한 삶, 문명을 거부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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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탐사>문명이 거부한 삶, 문명을 거부한 삶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7.03.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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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씨, 전기 안 들어오는 집에서 나홀로 목축
날 새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잠드는… ‘무위자연’

   
▲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지막 민가에 살고 있는 김진영씨가 가마솥에 물을 데우고 있다. 젊은 시절 충주까지는 2시간30분, 제천까지는 1시간30분에 걸어다녔다는 그는 지금도 1시간 남짓 거리인 백운면까지는 기꺼이 도보행을 택한다./ 사진=육성준기자
손두안 마을에서 마지막 민가(백운면 방학2리 손두안 31번지)는 김진영(63)씨의 농막이었다. 시멘트 포장도 끊기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 속의 ‘섬’이 그의 집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 전통무예단체에서 김씨의 집 상단에 동호인 별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으리으리한 전원주택 14채가 들어섰다. 마을 아래에 수련도장이 있고, 주말에는 구학산에 기거하며 명산의 기운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별장을 조성한 것이다.

덕분에 산 턱밑에까지 전봇대가 들어섰고 동호인 별장 앞에는 도로 포장이 이뤄졌다. 그러나 전기의 혜택은 별장 건립에 반대한 김씨의 집을 그냥 지나쳤고, 김씨의 사유지인 집 앞 도로도 본인의 거부로 포장되지 않았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18살 때 손두안으로 온 뒤 농삿일로 45년을 살아온 김씨는 “시골에서도 돈 없는 사람은 서러울 수밖에 없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도 불편할 것은 없다”며 “날 새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잠드는 생활을 하다보니 명절도 생일도 없는 게 산골생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라디오도 잡히지 않다보니 TV라도 봤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씨의 일상은 재래종 사과나무를 가꾸고 사슴 20마리, 한우 3마리를 돌보는 것이다. 아랫마을 움실에 살림집이 있지만 오히려 부인이 가끔씩 다녀갈 뿐 농막을 비우는 일은 잦지 않다.
그래도 심심치 않은 것은 김씨의 집 앞을 거쳐 약 4시간 거리인 구학산 등산코스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이 그의 집을 들르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들을 위해 각종 열매로 술을 담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김씨는 “쓰레기 되가져가라고 20년째 약주대접을 하고 있는데, 마실 때만 ‘그러마’하고 갈 때는 ‘언제 그랬냐’는 식”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김씨는 탐사대에게도 “술은 있어도 안주는 없다”며 손수 담근 ‘오미자술’을 맛보인 뒤 “우리집을 알아놨으니 여름에도 또 놀러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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