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로들의 놀라운 기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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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로들의 놀라운 기억력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7.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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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 표 정치부 차장
   
‘삶결 따라 이천오백리’는 충청리뷰와 (사)대한산악연맹 충청연맹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개년 계획으로 실시하고 있는 충북도계탐사의 ‘목적 구호’다. 지난해 산악종주가 시작된데 이어 올해부터는 도계마을을 돌며 그야말로 ‘삶결’을 기록하기 위한 마을탐사가 이뤄지고 있다.

온천지가 난리풍파를 겪더라도 세상의 소음이 미치지 않을 것만 같은 오지마을에서 만나는 촌로들이지만 그들의 인생 소사(小史)는 대개가 굴곡진 우리의 근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몽고난도 피해갔다’는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면화골(미락골)에서 만난 남상진씨는 일제 징용을 시작으로, 인민의용군 입대, 반공포로 석방, 국군 입대 등 일제강점기에서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벼랑끝 현장을 처절하게 누빈 경우다.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 큰골에 사는 조경행, 연옥란씨 부부도 한 동네에서 70평생을 살며, 마을의 변천사와 삶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조씨에 따르면 1959년 군에 입대할 당시 동네어귀에서 마을사람들이 ‘무운장구(武運長久)’라고 수놓은 복대(腹帶)를 채워주며 대대적인 환송식을 가졌다고 한다. 이는 ‘처녀들이 한땀 한땀 수놓은 무운장구 복대를 허리에 두르면 화살이나 총알이 피해간다’는 일본의 민간신앙에 따른 것으로, 일제 잔재로 볼 수 있다.

놀라운 것들은 촌로들의 놀라운 기억력이다. 이들은 대부분 징용이나 입대, 제대 등 인생사의 사건들과 관련해 ‘연월일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군복무 시절에 외웠던 ‘내무사열의 목적 72가지’를 비롯해 자유당 시절 암송케 했던 ‘우리의 맹세’ 등 각종 암기사항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사실 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변변히 외워서 부르는 노래가 없고,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게 되면서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것이 세태이다 보니, 더욱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삶의 굴곡이 잊혀지지 않을 만큼 뚜렷하게 각인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잊으려야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많았던 세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일제 강점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담론보다는 ‘흑백’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강요당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택되어진 가치관을 암송하며 살아야 했던 일종의 집단 최면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의 다양성보다는 사상의 일체성을 강요했던 집권논리의 영향이라는 얘기다.

지금의 ‘3040세대’ 역시 1968년에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자랐지만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시작되는 한 두 구절 외에 전문을 기억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만큼 사상의 일체성이 옅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창의성은 본래 인간의 본성이다. 현재는 답습되는 경험보다 창의력이 대접을 받는 시대다. 또 숙련공보다는 신지식인이 크게 성공하는 사회다. 사실 과거에 묻혀사는 사람들에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는 것이 요즘의 사회풍토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 경이로움보다 아련한 슬픔이 먼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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