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불교방송 , 짧고도 긴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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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불교방송 , 짧고도 긴 10년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7.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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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부도 등 어려움 딛고 ‘도약 기로’
청주불교방송(FM 96.7MHz·사장 한지원)이 4월25일 개국 10주년을 맞는다. 청주불교방송은 1990년 5월1일 불교방송(본사)이 첫 전파를 발사한 이래 부산, 광주, 대구에 이어 1997년 4번째 지방사로 문을 열었다.

청주불교방송의 태동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법주사 주지 유월탄 스님이 추진위원장을 맡아 충북불교방송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추진위는 사직1동을 시작으로 가경동, 율량동, 우암동 시절을 거쳤고 1995년 설립 가인가를 받은 뒤 1996년 11월 용암동 1695번지 구 사옥에 입주해 본격적으로 개국준비에 들어간다.

   
▲ 중부권 첫 불교방송으로 1997년 문을 연 청주불교방송이 4월23일 개국 10주년을 맞는다. 사진은 스튜디오 앞에서 포즈를 취한 직원들. 사진 맨 왼쪽이 전진수 총괄국장. / 사진=육성준 기자
1996년 12월23일 기본적인 송출장비만 갖춘 채 시험방송을 시작했으나 개국까지 불과 4개월 동안에도 크나큰 시련이 잇따랐다. 사옥을 제공키로 했던 진흥건설의 참여 포기와 부도로 급히 5억원에 임대 계약을 맺었으나 결국 계약금을 떼이는 등 곤경에 처하고 만 것. 개국 이후 5년여 동안 5명의 사장이 거쳐간 것만으로도 그 내홍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사태는 결국 부도를 낸 사업주의 세금체납 등으로 건물이 공매에 처하는 등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지만 2004년 3월12일 용암동 1646번지 현재의 사옥(충북불교문화회관)에 영구 무상임대로 입주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일거에 해소했다.

유일한 중부권 불교방송
청주불교방송의 개국은 당시 청주의 도시 규모를 고려할 때 파격적인 것이었다. 1991년 본사 차원에서 전국 11개 도시에 지역방송국을 개국한다는 방침 아래 공보처에 허가추천을 의뢰했고, 인근 대전과 전주 등에서도 개국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전지역에서는 1991년 5월 대전불교방송국의 설립을 기원하는 대법회가 열리기도 했다.

불교방송의 규모를 고려할 때 대전 등에 먼저 지역방송국이 설립될 경우 청주불교방송의 설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법회와 서명운동, 위력시위까지 동원한 청주지역의 뚝심으로 인해 청주에 불교방송이 설립됐고, 지금까지도 중부권 유일의 불교방송으로 남아있다.

청주불교방송은 개국 초기부터 소수의 인력으로 30분 아침뉴스, 심야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의욕을 보였다. 2003년 노사대립과 이후 본사의 조직감량 등으로 인해 인원이 최소화되는 등 제작환경이 어려워졌지만 최근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을 아침뉴스 앵커로 기용하는 등 고정관념을 깬 파격으로 ‘자리찾기’에 나서고 있다.

청주불교방송은 개국 10주년을 앞둔 4월23일 오후 2시 청주실내체육관에서 개국 10주년 기념대법회와 ‘인도·영혼의 소리’ 특별대공연을 개최한다. 이날 대법회는 청주불교방송 10년을 돌아보는 축하영상 상영, 종단대표들의 축사, 기관단체장들의 격려사로 짜여졌다.

또 2부 공연에서는 인도 예술단 호리불의 마니뿌르춤, 전통악기 연주, 노래 등을 마련해 그동안 지역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인도문화를 향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청주불교방송 전진수 총괄국장은 “조금은 생경하더라도 부처님 나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무료. / 이재표 기자

이 시대의 화두는 ‘오직 문화’
청주불교방송 최장수 사장 한지원스님


   
▲ 청주불교방송 사장 지원스님은 “지역의 단체장들이 문화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앞으로 지역문화 창달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한결 같은 잿빛 장삼… 뒷모습만 바라보면 누군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몰개성이 출가 수행자들의 공통점이지만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한담에 들어가면 그 ‘천인천색(千人千色)’에 놀라게 된다.

청주불교방송 사장 지원스님(55)도 승복 속에 감춰진 열정이 유난스럽기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특히 대화가 ‘문화’라는 화두로 옮겨가면 으레 목소리가 커지고 가끔씩 ‘육두문자’도 섞여나온다. 이쯤되면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할(喝)’의 경지다.

문화에 대한 지원스님의 열정을 보여주는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에는 비천상을 바탕으로 월드컵 캐릭터를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때 받은 실용신안특허만 35개에 이른다. 또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을 만나기 위해 행사가 열리는 장소 인근의 여관에 초소(?)를 구축하고 길목을 지키기도 했다.

청주불교방송 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찻사발 전시’로 주목을 받았다. 2004년 5월에는 ‘500년만의 귀향’이라는 이름 아래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찻사발 56점을 전시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무장이자 승려였던 ‘다케다 신겐’이 사용했던 이도다완 등 보물급이 다수 포함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2005년 10월 청주공예비엔날레 당시에는 특별전추진위원장을 맡아 ‘땅으로 빚은 하늘’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조선 찻사발 52점을 전시했다. 두 행사에는 각각 31개국, 22개국 대사가 가족과 함께 개막식에 참가해 큰 화제가 됐다. 이들의 수송을 위해 철도청장이 지휘하는 특별수송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지원스님은 “남들은 어찌 평가할지 모르지만 ‘땅으로 빚은 하늘’이라는 전시회 주제를 결정하는데만 3개월이 걸렸고, 전시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야밤에 인사동 골목을 누비며 직접 포스터를 붙였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지원스님은 또 “굴뚝공장을 들여오기 위해서는 초법적인 행정을 자행하는 단체장들이 더욱 가치가 있는 무형의 문화적 자산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며 “이제는 행정책임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북불교방송 인가 견인차 역할도
지원스님이 청주불교방송과 인연을 맺은 것은 첫 전파를 쏜 1997년보다 5년이나 이른 1992년 1월이었다. 당시 충북불교방송 설립추진위원회 실무간사에 임명돼 방송국 설립허가와 관련한 초석을 다진 것이다. 지원스님은 청주실내체육관 대법회와 설립허가촉구 10만인 서명운동, 국회의사당 집회 등을 통해 1995년 5월18일, 마침내 충북불교방송 설립 가인가를 받아냈다.

이렇게 보면 2003년 6월 본부장 겸 사장 직무대행으로 취임한 것은 본래의 자리로 한참만에 에돌아온 것이다. 지원스님은 2004년 6월 6대 사장으로 공식 취임함으로써 내년 6월이 되면 해마다 사장교체의 내환을 겪었던 청주불교방송에서 임기 4년을 마무리하는 첫 사장이 된다. 직무대행 시절까지 더하면 5년에 달해 청주불교방송 역사의 절반을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원스님은 “지금은 문화의 힘이 정치와 경제를 뛰어넘는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며 “단순히 불법을 홍포하는 임무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문화를 이끄는 방송, 청취자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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