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민의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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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의 음악세계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7.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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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경희 청주대 한국음악과 교수
   
▲ 이경희 청주대 한국음악과 교수
2007년 3월 28일 청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청주시립국악단 단원 서영민이 해금개인발표회를 가졌다.

그의 형들인 영호(아쟁) 영훈(피리)이 합세하여 가족발표회의 성격도 띤 이 날의 연주회에는 국악관현악 ‘타’, ‘바람의 유희’, ‘방황’등을 작곡하여 국악계의 스타가 된 이경섭(장구)과 바로 전 날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원초적 美 ㆍ打’란 제목으로 화려한 연주를 보여줬던 청주의 타악인 김준모(모듬북)가 합세하여 연주회를 질적으로 한층 풍성하게 했다.

연주회의 큰 제목이 ‘散調이야기’인데 산조는 남도음악의 대표적인 음악이다. 남도음악이라면 전라도의 음악을 주로 일컫는데 전라도의 민요, 시나위, 판소리, 산조가 그 주류를 이룬다. 산조는 남도의 특징적인 선율을 기악독주에 담아 낸 음악이다. 산조는 남도제가 아닌 경우도 있긴 하지만 남도의 산조는 시김새에 나름의 독특한 특징이 있어 연주자들이 제 맛을 내는데 무진 애를 먹는다.

어느 지역의 음악적 독특성을 표현하기 힘든 것은 외국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령 비엔나에서 매년 신년음악회가 열리는데 그 때 꼭 연주되는 것이 왈츠이지만 지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이 왈츠를 지휘하는 것이라 한다.

왈츠는 3박자의 간단한 춤곡이지만 제대로 된 비엔나 풍의 분위기를 내는 것이 그리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소련의 어떤 지휘자는 카라얀이 독일음악을 그리 잘 만들면서도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음악에 그 나름의 특징이 있어 그것을 구사하는 것이 힘든 것은 동ㆍ서를 막론하고 동일하다.

   
▲ 시립국악단 해금주자 서영민.
서영민은 이 날의 연주회에서 남도의 시김새를 정확히 구사하여 본바탕의 제 맛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첫 곡, ‘서용석류 산조’로 연주회가 시작되었는데 해금의 몸통 위에 걸쳐진 두 줄에서 농익어 완숙의 경지에 이른 소리가 처음 뽑아져 나올 때 이미 은은한 감동을 주더니, 이어지는 첫 시김새에서 손가락을 잘게 움직여 떠는 소리로 이 날의 연주가 얼마나 진하게 다가올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서영민의 아버지는 남도음악의 대가 서용석 선생이다. 서용석 선생은 일찍이 어린나이인 8세 때부터 이모인 박초월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시대의 큰 획을 그었던 거장들인 한주환, 김광식 선생의 대금을 비롯하여 정철호 선생의 아쟁, 방태진 선생의 태평소, 서공철 선생의 가야금을 사사하는 등 많은 국악기를 섭렵하고, 가히 입신의 경지에 이른 실력으로, 20여년간 국립국악원 민속반을 이끌면서 수많은 새로운 곡들을 창작하여 남도음악의 지평을 확대하고 완성했다고 평가되는 분이다.

선생은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둘째는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였고 영호, 영훈, 영민 3형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남도음악의 진수를 이어 받았다. 대개는 하나의 악기로 평생을 다듬어도 모자람을 느끼는데 이들은 몇 개의 악기를 종횡을 누비며 그 깊은 바닥을 건드린다.

아버지가 그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영민의 해금이 아버지가 만든 산조를 완벽히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이어 받은 재능과, 국악의 대를 이은 가정 분위기에 크게 힘입었을 것이다.

둘째 곡 ‘신뱃노러와 셋째 곡 ‘시나위’는 연 이어서 연주되었다. 신뱃노래는 서용석 선생이 남도제 가락으로 새롭게 구성한 곡이고, 시나위는 역시 남도음악의 주류를 이루는 기악합주 음악이다. 서양음악의 끝이 현대음악이라면 외국의 물이 들지 않은 순수한 우리음악의 끝은 산조와 시나위이다.

   
▲ 서영민 음악세계 공연사진.
서양음악과 우리음악은 근본적으로 극명한 차이가 있다. 서양음악은 화성 중심적 음악이고 우리음악은 선율 중심적 음악이라는 차이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 서양음악은 화성을 이루기 위하여 각개의 음들이 흔들릴 수가 없게 고정되어버렸다. 반면 우리음악은 선율 중심이어서 각개의 선율이 심하게 흔들리는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음악처럼 심하게 흔들리는 예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가 없다. 남도음악은 지구상에서 그 심하게 흔들리는 극점에 우뚝서있다. 화성 중심적 서양 예술음악의 반대편에서 우리의 남도음악이 선율 중심적 예술음악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셈이다. 이 날의 시나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쪽 끝의 제대로 된 모습이었다.

네 번째 곡 ‘난장’으로 연주회는 마무리 되었다. 이 곡은 글자 그대로 동ㆍ서 음악이 섞인 모습인 피아노와 섹스폰, 그리고 모듬북, 장구, 꽹가리, 대피리에다 무용까지 곁들인 흥건한 퓨전 잔치였다. 서영민은 여기서 저해금을 들고 나와 약간은 애잔한 듯한 낮은 음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끼를 흠씬 발산하였다.

서양음악과 우리음악은 각자가 가진 화성적 특성인 고정성과 선율적 특성인 유동성의 차이로 인해 서로를 흉내 낼 수 없는 음악들이다. 서양음악은 아예 우리음악을 표현할 수 없도록 고정되어 버렸고, 우리음악은 서양음악을 흉내 내면 빈약하고 어색하다.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한쪽을 추구하다보면 한쪽은 잃어버리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 날 연주된 ‘난장’에서는 서로가 가진 특성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살린 모습이다. 섹스폰이 그 중간쯤에 서있다고 보이는데 서로의 이질적인 특성들이 흥겨운 분위기 속에 함께 녹아 이질감 없이 소화되고 있었다. 서로의 특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서로가 보완된 모습으로 더욱 풍성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

서영민이 가진 남도음악의 제 모습을 보면서, 타 문화와 섞일 때, 우리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질 때만이 보다 풍성한 모습으로 새로이 거듭날 수 있다는 문화변천의 보편성을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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