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나는 ‘슈퍼마켓 포스 시스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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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나는 ‘슈퍼마켓 포스 시스템’ 사업
  • 윤상훈 기자
  • 승인 2007.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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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모델보다 비싼값에 한물 간 제품 설치해 물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통산업 지원사업의 ‘예산 낭비’와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어 위험수위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1996년 유통시장의 완전개방 여파로 국내 중소형 유통체인과 소매점포의 몰락 위기가 고조되자, 이듬해 ‘유통산업발전법’을 제정하고 토종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등 총력 지원체제를 가동해 왔다.

유통체인별로 회사 이미지 통합(CI)을 비롯해 소매 거래점포 간판 교환, 표준 거래 매뉴얼 개발, 상품 안내 책자 제작 등 유통 산업 현대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권역별로 ‘유통사업협동조합’ 체제 구축을 유도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유통체인과 조합들이 사업비를 사실과 다르게 부풀리는 방식으로 국비와 지방비 지원금을 과잉 청구한 의혹이 노출되는 등 유통산업 구조개선 지원 사업은 말 그대로 복마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지난해 단양 Y유통사업협동조합이 회원 슈퍼마켓을 대상으로 실시한 ‘슈퍼마켓 포스 시스템(POS System) 구축 사업’이 대표적 사례. 지난 2003년 10월 설립된 이 조합은 현재 약 30개 슈퍼마켓 회원사에 각종 생필품과 식료품, 과자류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조합이 군비를 지원받아 회원 슈퍼마켓에 설칟공급 중인 ‘포스 시스템’은 상품 판매 시점에 실시간으로 매출을 등록, 집계, 관리해 매출 동향 파악, 적정 재고 유지, 상품 관리 및 업무 자동화를 가능하게 하는 종합적인 판매관리 시스템이이다. 총 사업비 1억 5000만 원 중 군비 1억 원이 투입되고 설치를 희망하는 슈퍼마켓이 자비 5000만 원을 투자하는 이른바 매칭 펀드 방식의 포스 시스템은 현재까지 27개 슈퍼마켓이 도입, 운영 중이다.

문제는 포스 시스템 한 대를 구축하는 데 터무니없이 비싼 돈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단양군과 Y유통조합에 따르면 포스 시스템 한 대의 구입, 설치비는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도 480만 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 포스 사업에 선정된 ‘E’ 모델은 설치 시점 기준으로도 3년여가 지난 2003년에 생산된 제품으로 성능이나 기능이 최신형보다 크게 떨어지는데다가 고장도 잦아 일부 슈퍼마켓들은 설치한 지 반 년도 안 돼 포스 운용을 중단한 상태다. 더욱이 최근 들어 신용카드 사용의 보편화로 포스 시장이 커지고 공급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포스 가격이 급락해 200~400만 원 가량이면 다양하고 우수한 성능의 최신형 포스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단체 구매로 구입한 구형 제품의 가격이 개별적으로 구매하는 최신형 제품보다 최대 두 배에 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Y유통조합의 권유로 포스 시스템을 구매한 조합원 A씨는 “새로 구매한 포스가 설치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나기 시작하더니 최대 성수기인 올 설날까지도 작동이 되지 않는 등 온통 하자 투성이였다. 참다 못해 사적으로 포스 설치 기사를 불러 문의한 결과 해당 포스 제품은 2003년 4월에 제작된 구형 모델로서 약 50평 규모 매장을 기준으로 시중에서 200만 원 정도면 설치가 가능하고 24시간 편의점 등에 판매되는 최고급 포스도 400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Y유통조합이 점포마다 지원되는 군비 321만 원으로도 모자라 슈퍼마다 자부담금 159만 원씩을 거둬들인 데 대해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더욱 이상한 점은 문제의 포스 소유권이 자비를 들여 구매한 회원 마켓들이 아닌 Y유통조합에 귀속돼 있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Y유통조합이 경영난 등으로 사업장을 폐쇄하거나 압류 등의 법적 처분을 받을 경우 159만 원을 주고 포스 시스템을 설치한 27개 마켓과, 약 70%에 이르는 자금을 지원한 단양군은 값비싼 포스 장비를 채권자에게 고스란히 빼앗길 수밖에 없게 된다. 슈퍼마켓 입장에서는 조합 말만 믿고 한물 간 제품을 두 배 이상 비싼 값에 바가지 쓴 것도 억울한데, 그나마 159만 원씩이나 투자해 매장에 설치한 포스의 소유권조차 돈 한 푼 투자하지 않은 조합의 몫으로 빼앗기게 됐단 얘기다.

또한 포스 장비는 매장 면적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생기게 마련인데, 소형 슈퍼들까지도 매장 크기와는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480만 원씩에 포스를 설치한 것으로 나타나 설치 업체 등이 챙긴 부당 이득은 상당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포스 시스템은 슈퍼마다 똑같은 단말기를 설치하더라도 최신형 고급 모델을 기준으로 15평은 약 170~180만 원, 20평은 190~200만 원 선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어떻게 1억 원의 군비가 지원되는 사업에 이처럼 낡은 기종이 첨단 모델보다 비싼 가격에 공급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고 매장 면적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같은 가격대에서 포스 비용이 결정된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 뒤 “해마다 수십 종의 포스 장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3년이 훨씬 지난 낡은 단말기가 포스 시스템의 장비로 최종 선정된 것 자체가 미스테리”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단양군은 이 같은 문제는 파악조차 못한 채 사업 추진을 지속하고 있어 마켓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미 포스 시스템 구축 사업은 지난해 조합원 설명회와 포스 업체 설명회를 거친 후 Y유통조합이 입찰을 주관해 H사의 ‘E’ 모델을 포스 제품으로 최종 결정한 것”이라며 “예산을 고려하되 수요가 많을 경우 사업을 연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에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단말기값에 프로그램 설치비용 등이 더해져 포스 시스템 구축비가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업체 및 장비 선정에 하자가 발견되지는 않았다”면서도 “당초 Y유통조합은 I사의 ‘K’ 모델을 포스 시스템으로 공급키로 하고 먼저 4대를 회원 슈퍼에 설치하기도 했지만, 이후 ‘E’ 모델이 더 우수하다며 제품을 변경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통상 포스 시스템 구축 비용에는 프로그램 개발과 설치비도 포함된다. 프로그램까지 공급했기 때문에 설치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해명은 궁색하다.

Y유통조합이 한물 간 구형 모델을 최신형보다 비싼 가격으로 마트에 설치했다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조합의 이득은 무엇일까? 적어도 피 같은 군민의 혈세를 허투루 낭비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윤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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