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산물' 유통은 농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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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산물' 유통은 농민 책임?
  • 윤상훈 기자
  • 승인 2007.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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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산물 시설사업 농업기술센터 직영 한계
제천시는 안전하고 품질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유통하기 위한 ‘친환경농산물 안전유통저장시설’을 올 연말까지 건립키로 하고 봉양읍 미당리 990㎡ 부지에 연건평 330㎡ 규모의 시설에 대한 조성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지난 3월 입찰공고를 시작으로 이달부터 설계용역과 사업 착공에 들어간 이 시설에는 기금과 시비를 합쳐 모두 4억 7250만 원의 자금이 투입되며 10월까지는 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시 농업기술센터가 직영하는 이 시설은 건물 안에 잡곡 색채 선별기 등 7종류의 기계장비가 설치돼 잡곡을 정선하고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하게 된다.

제천시는 이 시설이 가동되면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 생산이 가능해져 토질과 수질을 환경 친화적으로 보존할 수 있고 친환경 농산물의 브랜드화로 농가 소득 향상과 지역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지역의 대표적인 잡곡 작목을 친환경 브랜드로 육성함으로써 고품질 농산물 유통 체계를 확립하고, 나아가 수입 농산물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추게 돼 지역 농업에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제천시의 사업 추진 과정을 지켜보는 농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생산자 입장에서는 고품질 친환경 잡곡을 자동화 공정으로 선별하고 소포장 절차까지 원-스톱(One-stop)으로 할 수 있는 이 같은 선진 시설이 절실히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설의 관리 운영 주체가 영농조합이나 농협이 아닌 시 농업기술센터, 즉 자치단체이다 보니 유통 부문은 다시 생산자인 농업인의 몫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봉양읍에서 잡곡을 재배하는 김모 씨(63)는 “농민들은 품질 좋은 친환경 잡곡을 생산하고 시설에서는 이를 수매해서 포장, 판매까지 책임지는 분업 시스템이 갖춰져야 고품질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유통할 수 있다”며 “제천시가 사업자가 아닌 자치단체 직속 기관으로서 유통이나 판매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시 농업기술센터에 시설 운영권을 준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시비와 국도비 등 무려 12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유통 저장 시설을 건립했음에도, 운영 전권을 농협에 주어 농민이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을 농협이 모두 수매해 선별, 판매하도록 위탁한 경주시와는 대조적이다. 유통 저장 시설을 이용하는 농민들이 판로까지 걱정하게 만드는 일종의 ‘정책적 역주행’인 셈이다. 새로운 농업기술을 개발, 보급하고 병충해를 방제하는 말 그대로 ‘농업기술센터’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기관에 유통 저장 시설의 운영을 맡기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더욱이 이미 제천시 농협이 읍면 단위농협 및 농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이 같은 안전 유통 저장 시설의 건립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음에도 시가 이를 묵살한 채 독자적으로 시설 설치를 추진한 것으로 드러나 농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제천시 농협의 경우 이미 건물과 관련 설비를 갖추고 있어 장비를 보완하고 설치하는 등 추가 시설에만 자금을 투입하면 되는데다가 수매부터 판매까지의 모든 과정을 농협이 책임지기 때문에 농민 입장에서는 생산에만 전념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시의 입장에서도 시설을 위탁하면 농협의 오랜 경영 노하우와 탄탄한 판매망 등을 활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유통 저장 시설은 농협 등 전문 사업자에 위탁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농민들의 대체적인 정서다.

이에 대해 제천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시장 등 윗선에서 결정한 사안에 대해 실무급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곤혹감을 표시한 뒤 “농민들이 안전 유통 저장 시설을 이용하면 80㎏ 당 5만 원씩을 더 올려 받는 등 농산물의 값어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말로 피해갔다.
/ 윤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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