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사건’12년만에 美법정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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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자 사건’12년만에 美법정 단죄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7.06.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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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큰손 ‘한전아줌마’ 94년 200억대 부도 미국도피
청주 S씨, 공범 황모씨 LA법원에 16억원 배상판결 승소

13년전인 94년 1월, 두 명의 ‘비열한 영자씨’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82년 국내 최대의 어음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10년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장영자씨가 94년 1월 24일 다시 사기혐의로 검찰에 전격 구속됐다. 바로 그날, ‘한전 아줌마’로 불리던 청주 박영자씨(67)는 김포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역 경제를 피멍들게한 200억원대의 대형 부도를 예비한 채 해외 도피길에 올랐던 것.

당시 박씨와 거래했던 흥업상호신용금고, 충북투자금융을 비롯해 지역 제2금융권 5개사가 연쇄적으로 금융사고를 일으켰다. 개인 채권인 사채피해 규모도 100억원대로 추정됐으나 장씨의 해외도피로 별다른 대응조차 하지 못한채 한을 삭여야 했다. 박씨가 발행한 부도어음은 본인 이외에 동업자인 황정웅씨(73), 자금담당 강중렬씨(51) 명의로 분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황씨는 박씨의 부도이전에 가족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고, 강씨 또한 미국으로 잠적해 채권자들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 박영자 부도사건은 당시 충청일보가 2주간에 걸쳐 연속보도할 정도로 지역경제 미치는 파장이 컸다. 중견 기업인부터 영세 전세입자까지 숱한 피해자를 양산했지만 박씨는 13년째 미국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법원 판결, 미법정서 인정

하지만 장씨의 어음사기와 해외도피를 끝까지 추적해 미국 법정에서 채권을 확보한 주인공이 화제가 되고 있다. 청주의 중견 건설업체 S회장은 황정웅씨 명의로 받은 어음 16억원을 근거로 추적작업에 나서 지난해 9월 미국 법정에서 원금 160만불(16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여기에 승소때까지 법정이자 연 18%가 적용돼 실제 배상액은 3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당시 S회장의 미법정 승소판결은 미국 LA한인신문에도 대서특필됐다.

국내 고의부도후 미국도피가 다반사였던 상황에서 채무자를 미국 현지에서 고소해 승소한 첫사례로 꼽혔기 때문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주 중앙일보의 관련 기사 제목은 “한국서 16억원 떼먹고 미국 도주, 12년 추적끝에 받아냈다” “미 법원 `원금에 이자까지 배상하라` 경제 사범 도피처 악용 사례에 제동”으로 뽑혔다.

청주 S회장의 12년 집념이 만들어낸 한미간 법정드라마를 간추려 본다. 94년 박영자씨의 부도와 미국도피 행각에 대해 S회장은 고의부도로 판단했지만 어음 발행인인 황씨와 사돈지간이라는 특수관계라서 사태를 관망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얼마후 미국으로 도피한 두 사람간에 불화가 생겨 상당액의 재산을 황씨가 차지했다는 소문이 청주에 나돌기 시작했다.

S회장 또한 사돈지간인 박씨가 채무변제에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않자 법적대응을 준비하게 됐다. 우선 황씨를 사기죄로 검찰에 고소해 체포영장을 발부하도록 하는 한편 법원에 투자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청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은 피고소인의 궐석으로 순탄하게 진행돼 승소했다. 한국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S회장은 미국에 거주하는 황씨의 소재지를 추적했다. 사립탐정을 고용해 찾아나선 결과 LA 오렌지카운티에 살고 있는 사실을 파악했다.

황씨는 도미직후 시민권을 가진 여성과 위장결혼을 통해 시민권을 받은뒤 본 부인과 함께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경제사범 도피처 인식 ‘쐐기’

S회장은 즉시 미국에서 고용한 대리 변호사를 통해 2005년 황씨를 상대로 오렌지카운티 수피리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미법원 재판부는 "S회장이 제출한 한국 법원의 판결과 한국 검찰이 황씨 이름으로 발부한 체포영장을 인정한다"며 "황씨는 한국법원의 판결대로 로부터 받은 원금을 이자와 함께 갚으라"고 판결했다.

원금 16억원(159만5000달러)과 함께 빌린 기간부터 승소판결까지의 이자를 연 18% 계산해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송씨는 조만간 케이스를 맡은 변호사를 통해 황씨의 재산을 압류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특히 한국 법원에 외국으로 잠적한 채무자를 상대로 제소된 케이스가 3만여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S회장의 미법정 승소사건은 더 이상 미국이 경제사범의 도피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이번 소송과 관련 한국로펌 LA지사인 비전인터내셔널의 이세중 변호사는 "피해자가 한국의 법적 절차에 따라 승소판결을 받아냈기 때문에 미국 법원이 한국 법원의 판결을 인정한 것"이라며 "한국에서 먼저 형.민사 소송을 제기해 증거를 남기고 승소판결을 받는다면 미국 법원에서도 소송을 진행하는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박영자 200억 부도사건의 내막은

청주지역의 부동산 및 사채업자로 불리는 ‘한전아줌마’ 박영자씨는 94년 1월 27일 1억7400만원의 1차부도를 냈고 이미 3일전 미국으로 도피한 상황이었다. 박씨의 부채는 전주 50여명으로부터 빌린 사채 80여억원과 충북투자금융의 대출금 76억원등 6개 상호신용금고와 시중은행의 대출금 1백억원, 세입자 전세금및 사업물품 대금등 최소 2백억원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2백억원대 부도에도 불구하고 박씨와 황씨 등이 발행한 어음과 당좌수표 273장 가운데 은행에 제시된 것은 34장 51억원에 불과했다. 채권자대책위가 접수하는 채권자 명단에도 소액 채권자나 전세금 피해자 외에는 신고자가 없어 거액의 어음과 수표를 소지한 사채업자나 부도와 연루된 지역 유력인사들이 신분노출을 꺼려 어음과 수표의 추심을 포기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지방의회 의원 부인이나 병원장 등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확인을 거부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30억원대 채무를 떠안은 것으로 알려진 중견기업인 K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아무런 채권근거도 남기지 않은채 수년전 숨을 거뒀다.

K씨의 가족 모씨는 취재진에게 “아버님이 창피스럽다고 생각하셨는지, 되찾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박영자씨 채권에 대해 일체 말씀을 안하셨다. 하지만 우리 집도 10억원에 청솔금융에 담보잡혔고 개인적 돈거래까지 감안하면 가장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언젠가는 박씨가 장사도 안되는 주유소를 싸게 넘긴다며 아버님께 매도했는데, 나중에 내가 찾아가서 따지니까, ‘내가 아버님께 선물로 드린건데, 조만간 돈이 되는대로 곧장 회수하겠다’고 잘라말했다.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배포가 보통이 넘는 여자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당시 박씨측이 발행한 어음 가운데 상당수가 견질어음(담보성)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견 경제인 Q씨는 “당시 박씨와 거래과정에서 부동산 설정을 하고 2중3중 안전장치로 견질어음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또 어음시효가 끝나면 회수하고 새 어음을 내줘야 하는데 박씨가 돈에 몰려 도피를 결심할 때는 이런저런 것 따지지 않고 어음을 마구 발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실제 돈거래가 없이 오고간 견질어음은 부동산 경매를 통해 채권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은행에 제시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평범한 주부, ‘한전 아줌마’로 변신

박씨는 70년대초까지 평범한 월급장이 남편을 기다리는 가정주부였다. 남편 한재덕씨(사망)는 한국전력 마라톤선수 출신으로 은퇴후 청주한전으로 발령받았다. 70년대 중반 자신이 살던 수곡동 집을 개조해 매각하면서 재미를 본 박씨는 남편 명의로 50만원을 대출받아 집장사로 나섰다는 것. 박씨는 80년대들어 부동산 붐이 일면서 일취월장 재산을 불려나갔고 남편 또한 직장을 사퇴하고 하이샤시 대리점을 운영하게 됐다.

당시 박씨와 가깝게 지냈던 L씨(51)는 “내가 고등학교때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데 대학가니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졸업할때쯤엔 고급승용차를 끌고 다녔다. 부동산 경기 좋을때는 꼬박꼬박 3부~5부이자를 쳐주니까, 모두들 박씨를 떠받들다시피 했고, 돈을 빌려주지 못해서 안달을 할 정도였다. 잘나갈 때는 하루 현금 동원능력이 1백억원이라고 소문날 정도로 큰손이었다”

심지어 제도권 금융회사인 충북상호신용금고의 경우 사주 민병일씨의 처남 최모씨가 직원으로 일하면서 고객의 예금을 박영자씨에게 불법사채로 빌려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해당 예금고객에게 매달 이자를 지급하고 원금은 투자금융에 입금도 시키지않은채 높은 이자를 주는 박씨에게 넘겨주는 개인 사채업을 한 셈이다. 박씨가 혼자 힘으로 대규모 부동산 사업을 벌인데는 사돈지간인 황정웅씨의 역할이 컸다. 청주에서 오토바이 대리점을 운영하던 황씨는 타고난 수완으로 박씨의 동업자 역할을 했다는 것. 88년 6공화국 출범이후 부동산투기근절 대책이 발표되자 박씨는 이티봉 주유소, 이티음료 등 투자처를 다양화했지만 오히려 손실 발생이 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93년 8월 김영삼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하면서 박씨는 결정타를 맞게 된다. 돈에 꼬리표가 붙게되자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고 돈맥경화에 시달린 박씨는 종말을 준비하게 됐다. 해외도피를 결심하고 1할 이자까지 내세우며 돈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홀로된 박, 창살없는 감옥 13년

동업자 황씨는 이미 1년전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간 상황이었고 박씨의 송금창구역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94년 1월 박씨는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도피했고 남편과 출가한 두 딸은 청주에 남게 됐다. 애초 박씨는 시카고에 자리를 잡았고 청주의 몇몇 채권자들은 수소문끝에 박씨의 거처를 찾아내기도 했다.

96년 시카고 박씨 집을 찾아갔다는 W씨는 “당시 박씨의 채무 때문에 집안이 거덜이 날 상황이었다. 평소 집안어른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받든 못받든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미국까지 갔다. 사립탐정에게 의뢰해 1달 가량 찾았는데, 박영자씨가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면서 남긴 주소가 발견돼 시카고 집을 찾게 됐다. 한인 거주지역을 벗어난 동네였는데 일하는 아주머니가 박씨가 집에 없다고 해 밖에서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다. 연락을 받고 집에 돌아오질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박씨의 미국생활은 불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업자 황씨와 불화를 겪어 재산도 잃었고 뒤늦게 미국에서 합류한 남편 한씨는 사망했다. 현재 뉴욕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나 생활형편이 곤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법상 박씨의 형사소추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채권도 소멸시효가 끝난 상황이지만 자진입국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가족들과 집단이주한 상황에서 이미 미국 생활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에 핵폭탄을 터뜨린 ‘청주 여걸 5인방’의 대표주자 박영자씨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채 미국이란 ‘큰 감방’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박영자 사기부도, 지역경제 2년간 ‘흔들흔들’

박영자 부도사건으로 거액이 물린 금융기관은 충북투금과 충북금고, 충북은행에 인수된 흥업금고 등이었다. 흥업금고를 제외한 충북투금, 충북금고, 동양금고 등 5건의 금융기관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고 지역의 어음부도율이 1.32%로 전국 평균인 0.79%를 크게 웃도는 등 충북경제 전반에 휴유증을 겪게 됐다. 박씨가 도피한 94년 11월 두산개발, 12월 국제산업공사, 이듬해 1월 광림기계, 3월 동인석재 등 지역의 유망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로 쓰러졌다. 이어 3월 충북투금이 덕산 부도에 휘말리면서 업무정지조처를 받자 자금난이 심화돼 지난 6월 도내 어음부도율은 2.48%까지 올라갔다.

이는 같은 달 서울의 0.11%와 지방평균 0.75%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였다. 충북투금이 충주 합동탄좌 계열사의 어음을 부실여신으로 정리해버린 같은 해 6월 충주지역의 어음부도율은 5월에 비해 무려 12.5%포인트나 높은 14.22%였다. 이어 7월에는 충북상호신용금고 민병일 회장이 콜론계수조작 등의 방법으로 6백10억원대의 금융사고를 일으킨 뒤 미국으로 달아나자 이 사건에 연루된 민권식 전 청주상공회의소 회장이 운영하던 대성연탄과 충북선재가 잇따라 부도로 쓰러졌고, 8월에는 흥업백화점까지 부도를 냈다.

제조업체에서부터 유통업체와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성한’ 곳이 없는 상태이다. 금융사고와 부도로 지역경제가 휘청대자 청주상공회의소는 원인과 대책을 현상공모했으나 뾰족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2%경제’라는 말처럼 도내 경제기반이 몹시 취약하다는 것과 상당수 지역금융기관이 몇몇 인사의 사금고화됐다는 문제점만 확인됐다.

당시 한국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번에 삼익이 또 부도를 내 충북경제권 전체가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정부 차원의 지원 없이 자체적인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청주같은 중소규모의 지역경제에서 (박영자의) 2백억원대 부도는 치명적인 것이다. 거액부실을 입은 금융기관들의 보수적 자금운용으로 영세업체들은 대출이 막혀 청주를 비롯한 지역경제 전체가 돈이 말랐고 기업연쇄도산이 속출했다”며 지역경제 위기를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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