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부터 개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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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부터 개혁돼야 한다."
  • 임철의
  • 승인 200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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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한농 등 농민단체 압박수위 높여 " 개혁대상이 남을 개혁하나"

올들어 농협의 ‘농협개혁’ 구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3월 3일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였다. 정 회장은 이날 자체 농협개혁안이라며 “중앙회 회장직을 비상근 명예직으로 전환하고 인사권과 예산집행권 등 경영권을 농업경제, 축산경제, 신용사업을 담당하는 3명의 사업전담 대표이사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논란이 되고 있는 중앙회 시·군지부를 폐지하는 안과 지역조합의 책임경영체제 강화 및 경제사업 활성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의 이 발언은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시·군지부 철폐방침은 집중적인 스폿라이트를 받았다. 일견 파격적인 개혁안으로 해석된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내용은 농협개혁의 최대쟁점 사안인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 사안을 빼 놓은 데다 시·군지부 폐지방안 역시 곧바로 농민단체의 요구수준과 동떨어진 것으로 판명되면서 거센 비판을 불렀다.

“중앙회 입맛대로 개혁몰이 말라”
전국농민회와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등 농민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농협노조(전농노)와 지역농협들은 “정 회장의 농협개혁안은 알맹이가 빠진 방안으로 안팎에서 점증하는 농협개혁의 압박수위를 낮추거나 면해 보기 위해 급히 내놓은 면피용 개혁안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더구나 농협중앙회 시·군지부 폐지방안 역시 내용을 살펴보면 농민단체나 전농노 등의 개혁방안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군사정권 시절인 1981년 농협은 2단계 조직개편후 시·군지부의 경제사업 기능을 지역조합으로 이관한 뒤 지금껏 신용사업(은행업) 위주로 영위해 오고 있다. 도내 경우 시·군지부는 10개로 지역조합이 총 87개인 만큼 1개 시·군지부당 평균 8∼9개 지역조합을 ‘거느리고’ 있는 상황.
그러나 시·군지부가 ‘돈장사’에만 몰두하면서 지역내 조합들과 신용사업 및 농정대표권 등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전개되며 내부갈등의 주요인이 돼 왔다. 지역조합과 지역조합들이 출자해 만든 농협중앙회가 같은 지역에서 돈벌이 경쟁에 나서는 웃지못할 상황이 빚어져 온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조합에서는 노른자위를 독식하는 시·군지부의 존재가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시·군지부의 철폐와 신용사업부문의 이관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것.

같은 농협끼리 ‘돈장사’에만 몰두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중앙회가 내 놓은 개혁방안은 ▼시·군지부를 지점화하고 신용사업만 수행토록 하거나 ▼시·군단위로 농협을 통합해 시·군지부의 은행업과 상호금융업을 겸영(兼營)하는 방안 ▼모든 시·군 지부를 폐쇄하고 그 기능을 지역조합에 이관하는 방안 등 세 개의 안을 두루 검토하겠다는 것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중앙회측은 “제1금융업과 제2금융업 통합은 현 제도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시·군지부를 철폐할 경우 기존에 담당하던 신용사업 기반을 시중은행에 빼앗길 수 있다”는 논리로 완전철폐에 반대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농노 충북지역본부와 전농 및 한농연 충북지회 등 농민단체는 “지역조합을 피폐하게 하면서 자신만 돈벌이에 나서는 중앙회 시·군지부는 완전 철폐돼야 마땅하다”며 “이러고도 중앙회가 지역조합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통폐합을 시키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중앙회가 겸영하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 ‘농민의,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환골탈태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배부른 농협 배곯는 농민’
전농 등 농민단체는 “중앙회와 지역조합을 불문하고 그동안 농협이 비농민적 반농업적 운영으로 농민 위에 군림해 왔다”며 “중앙회 경우 협동조합 통합원년인 2000년 2332억원, 2001년 3804억원, 지난해 5000억원대 이상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 지역농협 역시 당기순이익 2755억원(전국누계)을 올리는 등 배를 불리고 있을 때 농가소득은 2001년에 2390만원의 수입에 호당농가부채 2037만원을 빼고 300여만원밖에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농협만 돈을 벌어 임직원들의 배를 불리고 정작 농민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농협 충북지역본부는 지난 한햇동안 얼마나 흑자를 냈는지 공개를 기피했다. “지역본부별로 관련 경영지표를 발표하지 않고 중앙회 본부에서만 전체 계수를 발표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전국 시·도지역본부가 마찬가지라는 설명도 따랐다.

돈 안되는 경제사업은 외면
하지만 진짜 배경은 농협이 경제사업, 즉 농산물 판매사업과 영농자재 구매사업 등 농민의 생계와 직결된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농민들의 비판이 근거있는 것으로 드러날 까 우려하는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전농 관계자는 “농협이 설립취지를 망각한 채 돈벌이가 되는 신용사업에만 몰두할 뿐 정작 중요한 기능인 경제사업에는 등한히 한다는 비판은 두려워 하는 모양”이라고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지난해 농협중앙회는 전국적으로 5000억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했고 중앙회 노조와 임단협을 통해 임금인상은 물론 복지혜택을 크게 늘리는 등 자기 식구 챙기기에 열심인 반면 농민 조합원에 대한 배당이나 영농지원에는 인색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충북만 해도 도내 예수금 규모가 7조 3000억원대에 달하지만 경제사업규모는 6300억원(중앙회 사업분)에 불과, 이런 비판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충북지역본부는 충북도금고를 비롯해 교육금고와 시·군 금고를 독과점하면서 수지맞는 돈장사를 하고 있다.

농민·농업위한 농협돼야
농협 충북지역본부는 “정부가 경제사업에 따른 손실보전 등 대책을 마련, 농협이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한 농민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경제사업을 펼치는 건 곤란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또 농협중앙회는 그동안 신용 및 경제사업 분리를 요구하는 농민단체들의 목소리가 불거질 때면 “적자가 불가피한 경제사업을 하기 위해선 신용사업을 유지해야 여기에서 발생하는 흑자를 여력으로 관련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보호막을 쳐 왔다.그러나 앞서 밝혀진 대로 실제 농협은 매년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과실금을 경제사업 역량 증대에 쏟아붓지 않아온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결국 중앙회와 지역조합을 불문하고 농협이 그동안 농민을 위한 농민의 농협이 아닌 농협만을 위한 농협으로 안존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만큼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농협개혁의 요체는 농민을 설득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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