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삶에서도 이토록 꿋꿋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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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에서도 이토록 꿋꿋할 수 있다니…’
  • 임철의
  • 승인 2003.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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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효행상 대상받은 괴산 장용자 할머니 남편잃고 홀로 11년간 여든넘긴 시아버지 모셔

남에 대해 게으르고 무관심하고 심성이 메말라 진 것은 우리네 일 뿐, 그래서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고 있을 뿐. 최첨단을 내달린다는 21세기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며 가슴뭉클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음을 발견하는 기쁨은 그래서 더욱 큰 것일 지 모른다.
괴산군 소수면 소암리 587 쓰러져가는 누옥에서 살고 있는 장용자씨(61)는 혼자된 지 10년이 넘었다. 7년간 간경화로 투병하던 남편(고 이태희씨)이 1993년 세상을 뜬 데다 이웃에 살던 남편의 동생, 그러니까 장씨의 시동생도 1997년 이승을 등졌다. 지난해에는 2남3녀중 차남마저 교통사고로 잃었다.

출가한 맏딸은 같은 괴산군이라고 해도 장씨로서는 쉽게 찾아 가기엔 벅찬 거리인 문광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딸의 살림살이는 예나 이제나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다. 남편의 오랜 병치레로 자식들을 잘 가르치지 못한 탓에 자녀 모두 중학교 밖에 교육을 못 시켰다. 이 때문에 장남(38)도 청주의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남편의 사후에 장씨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자식들을 제대로 건사시키지 못했다는 자책감뿐 아니라 이웃에 살면서 한동안 형을 대신해 가정의 대소사를 챙겨주던 시동생이 세상을 뜬 사건이었다. 장씨는 그때부터 철저히 혼자였다.

그러나 장씨가 정말로 혼자였던 건 아니다. 자식 둘을 먼저 떠나 보낸 홀 시아버지 이병기 옹(81)이 그녀에게 남겨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시아버지가 단순히 고령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지난 1993년에 당신의 큰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풍(風)’을 맞아 하반신을 전혀 쓸 수 없는 장애인으로 누워서 지내는 처지가 됐다는 데 있었다.
근근이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기댈 처지가 못된 장 씨는 그때부터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시아버지의 약값을 대고 봉양하기 위해서라도 돈은 꼭 필요했다. 1986년 간경화에 걸려 7년간이나 투병하던 남편을 자식들을 키워가면서 묵묵히 홀로 간병을 해낸 강단있는 여성이었지만 장씨도 언제까지 40-50대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돈되는 일이라면 텃논도 갈고 공사장과 식당 등지를 돌며 품도 파느라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지친 몸으로 귀가해선 축축해진 시아버지의 요를 새로 깔고 대소변을 일일이 갈아드려야 하는 게 그녀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당뇨에 협심증, 동맥경화, 거기에다가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예리하게 파고드는 관절의 통증은 그녀에게 찾아온 피할 수 없는 불청객이었다. 자신도 아프지만 푼 돈이라도 생기면 병든 시아버지 치료비에 먼저 충당해야 직성이 풀리고, 지난 10여년간 한 끼니도 직접 챙겨드리지 않으면 편치 않은 그녀의 타고난 성품이 키운 병이었다.
이제 반백을 넘어 할머니가 돼 버린 장 씨는 관절염이 심해져 일을 나가지 못할 때가 가장 속상하다. 당장 끼니 때울 일도 걱정이지만 시아버지의 약값을 대야 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인 때문이다. 남편을 간병하느나 전재산을 소모한 바람에 장씨는 지난 10여년간 한 번도 수리한 적이 없는 퇴락한 집에서 시아버지와 거처하고 있다. 장 씨는 겨울이면 땔감으로 한기를 가까스로 물린다.

농협중앙회는 올해로 8회째를 맞는 ‘농협 효행상’ 전국대상 수상자로 장 할머니를 선정, 지난 5일 중앙회 본부에서 상패를 수여하고 상금 300만원을 부상으로 전달했다. 장 할머니를 중앙회에 효행상 수상 후보자로 추천한 괴산농협 남산지소 곽효순씨(42)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며 시아버님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오래전부터 지켜봐 왔지만 지금도 할머니를 뵐 때면 늘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며 “무려 18년간 남편과 시아버지의 병치레를 하며 단 한 번도 불평이나 불만을 나타내지 않아 괴산지역에서는 할머니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소암리 효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곽효순씨는 “할머니께선 시아버지와 남편이 남긴 논 1000평 가량을 소유하고 있는 데다 아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국가로부터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최소한의 지원을 받는 길마저 봉쇄당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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