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반성 촉구한 나훈아 기자회견 신문보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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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반성 촉구한 나훈아 기자회견 신문보도는?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8.01.30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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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선정성-사회의 관음증 ‘네 탓이요’
조선, 나씨 탄탄한 몸매 강조한 보도는 ‘눈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언론 보도로 스스로가 죽었다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한 가수 나훈아씨가 던져준 메시지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질타의 대상이 된 언론의 자성과 반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네티즌이나 한국인의 성향 등을 문제삼는 분석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또 뭉뚱거려 미디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에서도, 그 미디어를 자신과 거리가 있는듯 3자화하면서 중립적이고 안전한 위치에서 남 이야기하듯 비판하는 자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괴소문의 주인공으로 화제가 되어온 가수 나훈아씨는, 25일 오전 11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취재진과 팬 등 7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해명할 게 없기 때문에 해명 기자회견이 아니다. 실제에 근거하지 않고 오보를 한 기자나 언론에서 해명해야 할 것”이라며 언론의 선정성을 질타했다.

26일자 1면 머리기사 <소문 공화국>을 통해 관련 내용을 대대적으로 전달하고 분석한 중앙일보는 관련 보도인 6면 <"인터넷 타고 소문 재생산 언론의 단순 중계도 문제"> 기사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나훈아 괴담’ 파문은 연말 이후 언론과 인터넷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일파만파로 커져 갔다”며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디어들이 이를 단순 중계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나씨 ‘언론이 네티즌 부추겼다’
나씨는 이날 회견에서 “쓸데없이 인신공격하는 네티즌들도 나쁘지만 그걸 부추기는 게 바로 언론”이라며 “‘아니면 말고’, ‘맞으면 한탕’ 식으로 보도를 하는 언론은 펜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기사를 다룰 때는 신중했어야 한다. 더 알아보고 더 챙겨보고 진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함에도 진실은 어디로 가 있고 엉뚱한 이야기들만 하나부터 열까지 난무했다”면서 언론에 대해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6면에 실린 위 기사에서 김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말을 빌려 “괴소문의 등장과 확산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신뢰 있게 검증하는 제도권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이 검증의 책무를 저버리고 단순히 ‘소문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나훈아 괴담'을 키우고 부풀려 온 사회>에서 “나씨의 기자회견으로 소문은 잠잠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나씨와 두 여배우의 상처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 상처의 책임은 확실하지 않은 얘기를 실제에 근거하지 않고 오도한 기자와 언론이 해명하고 소문을 키운 일부 황색 저널리즘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역시 8면 <“선정적 언론, 펜으로 사람 죽여”> 기사에서 “이번 사건은 언론매체들의 선정적인 루머 보도가 매우 큰 사회적 파장을 낳은 사례”라며 문화평론가 남재일씨의 말을 인용해 “선정적인 사안을 다룰 때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 언론은 전반적으로 선정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선일보 11면 <허리띠 푼 나훈아…"이러면 믿으시겠습니까"> 기사는 다른 신문들과 달리 리드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이 원하는 걸 시작하겠습니다." 나훈아가 갑자기 양복 윗옷을 벗어 던지고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허리띠와 바지 단추를 풀고 지퍼를 반쯤 내렸다. 좌중에서 "어머, 어머"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오른손을 좍 펴 보였다. "제가 (바지를)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

한국사회 ‘뒷담화 문화’ 부작용
전문가의 말을 빌려 '나훈아 괴담'이 우리 사회 병리의 일단을 드러냈다고 지적한 조선일보는 "이번 사건을 연예저널리즘과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집단 관음증의 단면"이라고 보도했다. 하단에는 <넘치는 카리스마 탄탄한 몸매 여전>이란 제목으로 나씨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재킷을 벗었을 때 많은 여성 팬들이 그의 상체를 보고 감탄”했을 만큼 몸 관리를 철저히 한다며 그의 소식습관과 운동 등 지엽적 사생활 보도에 지면을 할애했다. 연예저널리즘을 대량생산하고 있는 매체를 두고 있는 자사의 처지를 '선반 위에 올려둔듯' 스리슬쩍 넘어간 지적이다.

서울신문은 문화부 이은주 기자의 칼럼 <나훈아의 분노>를 통해 나씨가 "'진실은 딴 데 가 있고, 엉뚱한 이야기만 난무한다. 만일 이런 식이라면 뭐하러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전쟁에 나가 죽기까지 하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보도하면서 "정작 나씨가 분노해야 할 것은 우리사회의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뒷담화 문화’로 대변되는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일 것”이며 “애초에 흥미위주의 시각으로 접근한 언론도 문제겠지만, 현대사회의 잘못된 ‘끼리끼리’문화는 온·오프라인에서 소문의 불필요한 확대재생산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선정성과 사회의 관음증,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잘못됐는가 가리는 일은 닭이 먼저인지 아니면 이 먼저인지 따지는 일만큼 부질없을지 모른다. / 미디어오늘

아나운서 백모씨 사건과 손해배상

‘나훈아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있다. 소문이 사실로 발전하는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으로 대법원 판례까지 나왔다. 인기아나운서출신 백모씨는 결혼후 각종 루머에 시달렸다. 그중 가장 저급하면서도 질이 나빴던 것은 ‘자신이 낳은 아이가 친자가 아니다’라는 보도였다.

한 인터넷 매체에서 보도한 내용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 스포츠 매체에서 ‘본지에 최초고백’식으로 ‘해명을 한다’고 해서 보도했다. 본인은 안면이 있는 기자의 전화요청에 응대했고 ‘기사화 하지말아 달라’ ‘해명이 오히려 호기심을 더욱 부추긴다’며 극구반대했다. 그러나 그 신문은 사진까지 게재하여 기사화했다. 결국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친자확인 소동 때문에 어린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다니며 피를 뽑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냈고 결국 ‘친자가 맞다’는 확인을 받게됐다. 한국같은 사회에서 여성의 정조권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4-5년의 세월을 보냈고 재판에서도 이겼지만 민사상 피해보상금으로 1억 원을 받았을 뿐이다. 이 액수도 국내 명예훼손사상 실제로 지급된 액수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 중 하나로 기록됐다. 그러나 정신적 피해와 가족들의 고통 등을 감안하면 이런 액수는 터무니없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같은 곳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제도를 만들어놓고 보도의 성격이 사악하다고 배심원들이 판단할 경우 일반 배상액에 100배까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백모씨의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그 언론사는 최대 101억 원을 지불해야했고 그렇게되면 아마 신문영업정지 상태로 파산을 맞았을 것이다. 그만큼 자유를 주지만 그 책임에 대한 중요성 또한 법적으로 강력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 김창룡의 미디어 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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