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만큼은 책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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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큼은 책임지고?
  • 충북인뉴스
  • 승인 2008.01.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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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청주대학교 대외협력팀
   
 
   
 
21세기를 10여년 앞두고 국제화, 세계화를 주창하며 준비되지 않은 시장을 데꺽, 개방해서 국가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던 장본인들은 지금 어디쯤 있는가. 정치를 하셨던 분들이라 그런지, 들리는 소문에는 다들 잘 살고 계시는 모양이다.

원치 않았던 개방이긴 하지만, 얻은 것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잃은 것을 차근히 따져보자면 IMF 이후 우리 사회는 꽤나 손실 나는, 뼈아픈 장사를 했다. 이제 그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고는 있는 모양이지만, 사회양극화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흐름이, 개인의 경쟁을 부추기고, 자원을 낭비하며, 미래의 가치까지 선물거래하도록 부채질한 탓에 IMF 구제금융 사태의 책임을 어느 개인에게 특정지울 수도 없는 형편이라 더욱 참 안타깝다.

꽤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것은, 당시 낭만적이기만 했던 세계화나 국제화 논의가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의 교육정책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영어 공용화론’과 ‘영어만은 책임지는 공교육’을 주창하는 현재 교육입안자들의 사고는 매우 닮았다.

기축통화마냥 ‘유통’되는 영어를 우리나라의 언어로 공용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비록 일부이긴 했지만, IMF 구제금융이라는 위기 때문에, 개인의 경쟁력을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기능주의적인 논리에 사로잡힌, 애교섞인 발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어 만큼은 책임지고 교육시키겠다’고 주창하는 정책입안자들은 다르다. 공교육이라고 포장만 했을 뿐, 영어를 잘 하도록 가르쳐서 ‘잘 살 수’ 있게끔 한다는, 어찌보면 ‘영어’만 있고 ‘교육’은 포기한 것 같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 잘하는 한민족, 미국인처럼 말하는 대한민국’을 아주 오랜 시간,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건설한다고 치자. 국가경쟁력이 세계 5위권으로 뛰어오르고, 영어 잘한다는 만족감에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급등하기라도 하는가......

암시장 같은 사교육을 어떻게든 제어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방안이라고 하기엔 수가 너무 얕다. 공교육의 위신이 말이 아니게 된 것은, 대학입시정책의 실패 때문이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별 수 없더라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냉소에서 빚어진 문제이다.

학생들 인생에 지침을 주치 못하고, 오직 대학입시를 위한 일회용 교육이었기 때문에 공교육의 위신이 추락한 것이다. 이런 판국에 영어 만큼은 책임지고 교육시키겠다며, 영어를 전가의 보도인양 휘두르려 하는 것,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모르겠다.

우리말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생활하는 한민족이다. 국어는 모국어이고 영어는 외국어이다. 외국어는 외국어로 가르쳐야 한다. 공교육이라는 포장지를 씌워서 모국어 이상으로 가르쳐서는 안된다. ‘영어 공용화론’과 다를 바가 없다.

논어 위령공편에 ‘어찌할꼬, 어찌할꼬 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나도 어찌할 수 없다’(不曰如之何如之何者는 吾末如之何也已矣)고 했다. 백년 앞을 내다보지는 못해도, 그리 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노력하는데 우리 교육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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