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당신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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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당신이 옳은가?
  • 충북인뉴스
  • 승인 2008.02.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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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배(청주흥사단 부설 풍경소리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일란성 쌍생아는 ‘정말’ 똑같은가.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인가. 정의는 언젠가 ‘정말’ 승리하는가?”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러한 질문들도 ‘정말’이라는 단어로 인해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된다.

관점이 이동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의 이동은 단지 내 욕구와 내 감정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평소 필자는 심리 상담을 하는 관계로 관계기관에서는 원활한 의사소통에 대한 강의 또는 대화기법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고 자주 부탁을 하곤 한다.

또한 상담내용을 보더라도 가족 간에 대화가 안 된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대인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대화 방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대화 기술을 바꾼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대체로 여러 해를 같이 살아온 부부라면 서로 대화가 안 된다는 불만을 가져본 일이 있을 것이다. 과거 연애시절에는 그토록 대화가 잘 되었는데 말이다. 이것은 대화기술의 문제가 아님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감정과 욕구가 달라서 발생한다. 단지 다른 건데 틀리다고 보는 주장 때문에 문제가 커진다. 나의 판단이 정말 맞는 것일까? 필자는 여기에서 나의 판단은 그렇게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보이는 사람의 외모조차 사람들은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단지 다른 판단인데 틀린 판단이라고 주장하면 여기에서 의사소통은 장애를 갖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학문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신문의 전면을 차지해도 부족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 모두는 사물이나 사건을 인식하는 감각과 지각과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얽매여 지나친 욕구를 갖게 되고 예민해진 감정이 더 이상 상처받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으면 종교나 정치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신념은 너무 강해 다른 사람의 다른 견해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나 정치는 과거의 상처와 별개의 문제 일 수 있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화가 원활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판단하고 주장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래서 귀는 크게, 입은 작게 열어 상대방의 견해와 세계에 뛰어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여기에서 용기란 단어를 썼다. 진정한 용기는 나의 견해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고수 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나의 견해를 버릴 줄도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버릴 줄 안다는 것은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심리적인 문제의 상당수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서 오는 적응의 문제가 많은 것도 그 이유이다. 그렇다고 자기주장 없이 살라는 말은 아니다. 필자 또한 이 글에서 자기주장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판단하고 주장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이러한 필자의 주장도 옳지 않을 수 있음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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