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큰놈은 실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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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큰놈은 실속이 없다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3.06.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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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뉴스를 듣다보면 아나운서의 절규조 멘트에 실소가 날 정도다.   쥐어 짜는 듯한 이런 방송뉴스가 북한의 경직성을 불필요하게 확대, 각인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 비밀이 최근 밝혀졌다.  일본의 아시아방송연구회가 북한의 방송 교본인 '방송원 화술' 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말에서 기백을 잃지 말라"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문제의 교본은 "어떤 경우에도 방송원(아나운서)들은 말에서 기백을 잃어서는 안 된다. 방송은 위대한 김일성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예리한 사상적 무기이며 대중을 혁명과 건설투쟁으로 일깨우는 돌격나팔이다. 아나운서의 말에 기백이 없으면 인민의 투쟁의식을  고취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서해교전이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때 들었던 북한 아나운서의 자지러지는 뉴스는 김정일이 생존하는 한 계속될 것같다.

 우리나라의 많은 직업중에서 목소리가 크기로는 단연 정치인이 꼽힌다.  내용이야  어떻든 일단 목소리부터 높여서 기선을 잡는다.  국회발언이나 각종 선거에서도 목소리 큰 놈이 장 땡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국회의원이나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중엔 웅변가 출신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들은 어딜 가도 말은 청산유수다.  사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웅변과 정치의 속성은 엇비슷하다.  때문에 목소리가 작고 기백이 없으면 일단 '쪼다'로 취급되는게 정치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웅변가들은 논리에 약하다는 사실이다.  간혹 방송 토론회 등에서도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별것도 아닌 것을 큰 목소리로 거창하게 포장하는데는 능숙하지만 깊이를 만들어 내는데엔 옹색하다.

 매체발달이 안 된 과거에는 사실 이런 큰 목소리가 상대의 주목을 받았고,  그 흡인력을 인정받았다.  간혹 TV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연설가들의 말을 듣다보면 지금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그만큼 강한 톤의 말이 가져다 주는 메시지는 대단하다. 김정일이 착안한 것도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이젠 쌍방향의 매체가 언론의 주류로 등장했고, 사람들의 의식도 목소리보다는 논리와 분위기를 선호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북한의 방송뉴스가 우리에겐 군더더기로 느껴지는 이유를 한번 떠 올려 보면 알 수 있다.

 한나라당의 대표경선이 막을 내렸다.  모든 후보들이 목소리 크게 열변을 토했던 말의 성찬이었지만 어쩐지 남는게 없다.  유수 언론들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과도 분위기가 달랐다.  국민축제를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를 한나라당은 곰곰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치는 명분과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이젠 절대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한다. 누가 당대표가 되든 시정잡배나 입에 올리는 막무가내식 비판보다는 국민들에게 공감과 흥미를 안기는 발전적 비판으로 야당을 무장시킬 것을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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