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고개라 부르리까 반고개라 부르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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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고개라 부르리까 반고개라 부르리까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8.06.04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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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씨 이의 신청…'밤고개 유래비 무효 주장'
지명확인서 놓고 조항범 최명옥 교수 의견 엇갈려

밤고개, 반고개(半峴), 방고개, 율현(栗峴)으로 불리는 곳. 이곳의 1차적 지명은 과연 무엇일까. 최근 ‘밤고개, 반고개’ 논쟁이 다시 한번 수면위에 떠올랐다. 김근태 씨가 청주시에 ‘반고개(半峴)’의 타탕성을 주장하는 이의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지금 청주시 내덕동 안덕벌 입구에는 밤고개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유래비에는 이곳이 밤고개로 불리게 된 전설과 1914년 안덕벌과 합병해 지금의 내덕동이 됐다는 간략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95년 유래비를 세울 때 김근태 씨가 “아랫방 고개에서는 ‘반고개’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 명칭이 맞다”며 이의 제기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공청회를 거치며 ‘밤고개 유래비’를 세웠다고 한다. 주민들이 알음알음 돈을 모아 세운 이 유래비를 통해 지명논쟁은 일단락 됐다.

   
▲ 95년 주민들이 세운 ‘밤고개 유래비’에는 이곳이 밤고개로 불리게 된 전설과 1914년 안덕벌과 합병해 지금의 내덕동이 됐다는 간략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김근태 씨는 지난 4월 25일 서울대 국어교육과 최명옥 교수가 찾아가, 그날 한 장의 자문확인서를 작성했다. 이 자문확인서에서 최명옥 교수는 “김근태 씨에 의하면 그 고개는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아서 예부터 ‘반고개(半峴)’라고 불려왔다. 일제시대에 제작된 지도에는 율현(栗峴)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시에서 ‘밤고개’라고 한 것은 사실과 맞지 않고, 잘못된 진실이 후손들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더욱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며 “객관적인 위치에서 한반도 지도 작성 과정과 언어학적인 근거를 들어 시 당국에서 김 씨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기술했다. 이에 자문을 맡았던 충북대 조항범 교수가 자문확인서에 대한 해명서를 제출하는 등 서로의 상반된 주장이 가열되고 있다. 이미 두 차례의 자문확인서가 오갔다.

서울대 최명옥 교수 ‘반고개’주장

먼저 최명옥 교수가 제시한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일제 시대 작성된 지도는 1870년대 초부터 첩보활동을 개시하여 1960년에 측량을 완료한 것이다. 이 지도에 기록된 지명은 첩보활동이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직접 주민들로부터 듣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근 주민으로부터 듣고 기록한 것이니 ‘지명’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 마을의 지명유래는 마을주민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주민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ㅁ>이 <ㄴ>으로 변하는 예는 많으나 <ㄴ>이 <ㅁ>으로 변하는 것은 매우 희귀한 경우로서 ‘밤고개’로 사용함이 더 타당하다는 충북대 국문과 조항범 교수의 자문 내용은 타당하지 않다. <ㄴ>이 <ㅁ>으로 변화는 예는 많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 주민들은 ‘반고개’는 ‘방:고개’ 또는 ‘반:꼬개’라고 말하지만, ‘밤고개’는 절대로 ‘방:고개’라고 말하지 않고, ‘밤:꼬개’또는 ‘방:꼬개’라고 말한다. 따라서 문제의 지명 유래비에 기록된 지명이 ‘밤고개’라면 마을 주민들은 그 고개를 ‘밤:꼬개’또는 ‘방:꼬개’라고 할 것이지만, ‘밤:고개’또는 ‘방:고개’라고 하기 때문에 그것은 ‘반고개’를 뜻한다. 주민들의 이의 신청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충북대 조항범 교수, '밤고개' 주장

조항범 교수는 4월 28일 이와 같은 내용의 자문확인서를 건네받고, 5월 8일 자문확인서에 대한 해명서를 최명옥 교수와 시에 보냈다. 이후 5월 9일 조항범 교수의 자문확인서 해명서에 대한 해명을 최명옥 교수가 작성했다. 그리고 5월 28일 조항범 교수는 최명옥 교수의 해명서에 대한 해명을 다시 작성했다.

조항범 교수가 최명옥 교수의 세 가지 사항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지도의 문제점을 들어 ‘율현(栗峴)’명칭에 대한 정당성을 묻는다면 일단 그것을 버릴지라도 지명 자료집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나와 있는 ‘밤고개 주막’의 명칭은 존중돼야 한다. 조선지지자료는 1914년 일제강점 이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주민들에 의해 은밀히 작성됐다는 논리를 들 수 없다. 또 이 자료집에는 당시 표준지명 ‘내덕리(內德里)’에 언문지명 ‘안덕벌’과 ‘밤고개’가 한문으로 기록돼있다. ‘안덕벌’과 ‘밤고개’ 지역을 아울러 ‘내덕리’라고 했다는 점과 한자화해 썼다는 것은 명백한 증거가 된다.

   
▲ 1912년 조선총독부가 낸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서는 밤고개를 율치촌(栗峙村)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 ‘밤고개 주막’은 청주 13개 주막중의 하나로 조선지지자료에서 별도로 정리돼 있다. 밤고개 주막은 공공의 장소이자 길목이었는데 주막 이름을 잘못 표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또 1912년 조선총독부가 낸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서도 밤고개는 율치촌(栗峙村)으로, 1917년 신구대조조선전도(新舊對照朝鮮全道)에서는 율현리(栗峴里)로 기록됐다. 모두 밤고개를 한자화한 표현이다.

둘째, <ㅁ>이 <ㄴ>으로 변화는 일반 언어가 아닌 지명언어에서의 예를 든 것이다. 전국각지에서 이러한 예를 13개정도 찾았으며 밤고개, 반고개, 율현, 방고개 등을 쓰는 지역도 1차 지명은 ‘밤고개’였다. 반고개가 1차 지명이라면 ‘반현(半峴)’의 한자지명은 왜 없는가. 또 고개이름의 명명원리로 봐서도 고개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다는 인식은 어색하다.

셋째, 밤고개가 된소리로 발음돼 ‘밤:꼬개’또는 ‘방:꼬개’라고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역주민들은 된소리로 발음하지 않는다. 전국 소재 4곳의 이장에게 확인해본 결과 ‘밤고개’는 통상 ‘밤:고개’라고 발음했다.

지명논란 이번엔 끝나나
최명옥 교수는 조항범 교수의 해명서에 대해 “첫번째와 두 번째 반박은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는 논리는 아니다”며 “시 당국은 그 어떤 문헌적 증거보다도 현지에 가서 본토박이 노년층이 문제의 고개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가를 확인해 결론지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조항범 교수는 “지역의 학자로서 지역현안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해 99년엔 ‘청주시지명유래’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오래전 김근태 씨가 찾아와 ‘밤고개’문제를 상의했고, 조사를 해본결과 ‘밤고개’가 맞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2006년 12월에 이에 대한 논문 한편을 써서 전달하기도 했다”며 “유래비가 세워진 이후로도 김근태 씨의 문제제기가 계속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지문확인서 내용에 나와 관련한 부분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에 해명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지역의 문제가 서울로 올라간 것이 불미스럽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주시청 관계자는 “이의 신청에 대해 답을 내려주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라며 “밤고개 논쟁이 이번 기회로 결론 지어지길 바랄 뿐”이라고 답했다. 문화관련단체 한 관계자는 “김근태 씨가 이번 문제에 오랫동안 매달려 왔고, 언론과 관련단체를 쫓아다닌 적도 많다. 이번에 해명서가 서로 오가면서 명확한 답이 내려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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