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학습,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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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학습, 촛불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8.07.0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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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문화부 기자

‘소통(疏通)’이란 주제어가 소위 뜬 것은 내 기억엔 오래전 일이다. 예술가들은 일찌감치 거대담론에서 소소한 일상과 소통의 문제를 화두로 삼았고, 대형문화 행사마다 소통은 단골 주제였다. 문화계에서 ‘찾아가는’, ‘시민 대중화’ 등의 유행어가 지나간 자리에 ‘소통’이 남은 셈이다.

또한 최근 이명박 정권이 ‘소통’이란 말을 선포한 순간, 네티즌들과 시민들은 이명박 정권의 불합리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더 끈끈하게 소통하기 시작했다.
소통이란 단어의 사전식 풀이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막혀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셈이다.

한 신문사에 벌인 촛불집회에 참여한 적 있는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아이들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 때문에 거리로 나왔다”고 답했다. 거리에 나온 이유는 총체적이겠지만, ‘유희’와 ‘놀이’가 아닌 ‘분노’였다는 대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때 죽어버린 20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10대를 비교분석하는 글이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다.

왜 10대는 거리로 나왔을까. 우선 10대에게 찾아온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술교육이 강화됐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학습을 통해 습관화된 세대다. 또 NIE 교육 등을 통해 ‘말하기가 거침없어진’세대다. 이들의 말하기는 ‘촛불’을 넘어서 이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새롭게 퍼져나갈 것이다.

여기서 소통이란 주제를 다시 한번 꺼내지 안할 수 없다. 최근 2008 청주문화의 달 행사의 가장 큰 주제는 ‘소통’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예상컨대 많은 행사들이 ‘소통’을 주제로 잡을 것이다. 그런데 10대들의 촛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소통도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위 지역의 문화 권력자들이 행사를 벌이면서 또한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을 담고 있지 않은가.

한 해에도 지역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을 벌인다. 그러나 정작 ‘소통하고 있습니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 할지 난감할 것이다. 전시나 공연 등 행사에 사람들이 온 숫자를 봐야 할지, 아니면 만족도를 봐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문화충격을 봐야할지 말이다.

안타깝게도 문화예술단체들이 무미건조한, 예전 행사들을 반복하고 있다면 소통은 먼 얘기로밖에 볼 수 없다. 소통이 됐다면, 그렇게 조용조용 행사가 치러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적극적인 안티도, 적극적인 찬성도 나와 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광우병 문제는 건강권이라는 대치될 수 없는 중차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문화선진도를 선포한 마당에 과감하게 문화예술단체와 도에 소통에 관한 질문을 던져본다. 문화예술단체들이 확보한 고정관람객은 몇 명입니까? 그 가운데 일반 시민 비율은 얼마입니까? 시민과 얼마만큼 뜨거워지는 공연과 전시회를 벌였습니까? 그리고 충북도는 지금 이번에 입안한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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