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한국의 경계인, 두겹의 아픔을 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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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한국의 경계인, 두겹의 아픔을 겪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8.09.0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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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임관순씨(82) 병마·임대분쟁에 ‘우울한 황혼’

17세때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50여년만에 고향 청주로 돌아와 살던 팔순의 재일동포가 지병과 개인사업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다.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임관순씨(82)는 일제말기인 지난 43년 징용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

   
▲ 중국 길림성에 있는 윤동주 시비앞에서 선 임관순씨
2년뒤 해방이 됐으나 형편이 여의치않아 귀국선을 타지 못했고 온갖 고초속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30대에 오사카에서 시작한 불고기 음식점이 인기를 끌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한 임씨는 60년대말 재일 조총련측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때까지는 먹고 사는데 급급해 한국말조차 잊고 지낸 시절이었다. 그런데 남의 손에 이끌려 간 조총련 행사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고국땅에서 가져온 물이라며 한잔씩 따라주고 민족혼에 대한 얘길하는데 가슴이 벅차올랐다”

임씨는 열성적으로 조총련 활동에 참여했으나 내부의 분파주의에 휘말려 부부지간에 이혼까지 겪는 상처를 받게 됐다. 결국 조총련을 떠난 임씨는 민단 출신의 새 여성과 재혼했고 90년대초 귀국해 청주 문화동에 거처를 마련했다. 하지만 '꽃파는 처녀' 등 북한의 3대 가극 녹음테이프를 소장보관하는등 남북간 경계인의 삶을 지울 수 없었다.

“조총련 출신의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안기부 직원들이 새벽에 문화동 집으로 찾아와 나를 연행한 적도 있다. 그때 사직동으로 끌려가서 꼬박 2주일 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었다. 그 뒤로 친인척들도 괜히 나를 피하는 것 같고‥나라도 두 쪽이고 가족도 두 쪽이고, 내 속이 어떻겠는가”

지난 99년 영구 귀국한 임씨는 일본에서의 경험을 살려 청주 성안길에 레스토랑을 개업했으나 건물주와 임대 분쟁을 겪게 된다. 임씨는 한국의 이면계약 편법관행을 이해할 수 없었고 건물주는 2년만에 50% 인상된 임대료를 요구했다는 것.

결국 법정다툼으로 번졌고 3년간의 소송끝에 패소했으나 임대료를 공탁하며 영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건물주는 보증금 4천만원까지 민사재판에서 판결한 임대료로 소진됐다며 가게를 비워주도록 통보했다.

2억원의 시설비를 투자했던 레스토랑에서 빈손으로 쫓겨난 임씨는 올초 고관절 부위에 악성종양이 발견돼 항암치료를 받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임씨는 지난해 베트남과 중국 길림성을 방문하면서 통일한국의 꿈을 다시금 되새겼다. 스스로 '민족주의자'임을 자부하는 임씨는 여전히 남과 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경계에서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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