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싸움에 경쟁력 떨어질라
상태바
집안 싸움에 경쟁력 떨어질라
  • 김진오
  • 승인 2008.11.11 2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삼·고추·포도 등 특산물 인접 시군 ‘우리 것’ 경쟁
‘어떤 게 진짜?’ 외지인 어리둥절, 브랜드 통합 필요

고추 특산지는 음성일까 괴산일까. 인삼은 증평일까 음성일까. 포도는 옥천 특산품인가 영동 특산품인가.

자치단체 마다 지역 특산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의 도내 시군들 주요 산업이 농업인 만큼 농가소득 증대와 지역 홍보에 특산물이 한 몫 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 시행으로 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뽑으면서 이 같은 노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과거 지역 특산물은 자연발생적으로 생산, 유통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충주 사과나 충남 금산의 인삼과 같이 토양과 기후에 맞는 작물이 재배되고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유명해 지곤 했던 것이다.

   
▲ 같은 특산물을 두고 지자체끼리 벌이는 명품화 마케팅 경쟁이 예산낭비는 물론 대외 신인도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괴산(오른쪽)과 음성군의 청결고추축제 장면.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가 자치단체 마다 대명제로 부각되면서 특산물이 지역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생산은 물론 가공, 유통까지 자치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브랜드화 되고 있는 것이다.

청원과 진천의 ‘청원생명’ ‘생거진천’ 쌀이나 음성의 ‘햇사레’ 복숭아와 수박 등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오르는 등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치단체의 지나친 의욕으로 인근 지역과 품목이나 브랜드가 겹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고추와 인삼, 포도 등이 대표적인 겹치는 품목으로 해당 자치단체는 저마다 적잖은 예산을 브랜드 특화와 홍보에 쏟아 붓고 있다.
심지어 음성과 괴산은 ‘청결고추’라는 똑같은 품목에 따로 예산을 배정하고 축제도 여는 등경쟁이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괴산도 음성도 ‘청결고추’

괴산과 음성의 고추사랑은 경쟁이라 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대단하다.
양 자치단체 모두 청결고추 명품화 또는 브래드 사업에 적잖은 예산을 쏟아 붓는가 하면 매년 ‘청결고추축제’를 열고 있다.

청결고추축제의 경우 예산도 비슷하고 프로그램도 고추와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지는 등 경쟁적으로 진행되다 시피 하고 있다.

괴산은 4억1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8월 4일간의 일정으로 ‘2008괴산문화청결고추축제’를 열었다. 고추와 관련된 전시, 체험 행사와 괴강과 연계한 물고기 잡기 대회, 가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으며 해가 거듭 될수록 행사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음성도 지난 9월 닷새 일정으로 설성문화제 및 청결고추축제를 열었다. 여기에 들어간 예산은 4억5000만원. 괴산과 달리 음성의 청결고추축제는 설성문화제와 함께 열리는데 순수하게 고추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1억7000만원에 이른다.

괴산 청결고추축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채워졌으며 미스터고추왕과 고추요정선발대회 등도 열어 프로그램을 차별화 했다.

청결고추 명품화 또는 브랜드화 사업에도 음성이 1억5000만원을 배정하고 있으며 진천·증평과 함께 통합브랜드화 사업을 추진중인 괴산은 무려 올해 18억8700만원을 투입하고 있다.

괴산과 음성군이 밝히는 고추산업 현황은 서로 협의라도 한 듯이 비슷하다. 괴산이 3626 농가가 1497㏊ 면적에 고추를 재배, 연간 4455톤을 생산해 419억원의 소득을 올린다고 밝히고 있다.

음성도 3900여 농가가 1520㏊에 고추를 재배해 350억원의 소득을 올린다고 밝히고 있다.
매년 재배면적이 변하고 작황이나 시장상황에 따라 소득도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자치단체의 고추 산업 규모가 똑같은 셈이다.

청결고추 브랜드 통합 실패

괴산과 음성이 축제를 따로 열고 브랜드화 사업도 따로 추진하면서 수억원의 예산이 겹치기 지출되고 있는 셈이다.

한 관계자는 “생산 농가를 지원하는 예산은 농가수에 비례해 지자체 별로 따로 예산을 세워야겠지만 청결고추라는 똑같은 주제의 브랜드화 사업이나 축제는 엄밀히 말해 낭비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는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가 원예브랜드 육성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겹치는 브랜드의 통합에 나섰는데 청결고추가 중부권 지원 대상 브랜드로 선정된 것.

하지만 음성군이 이에 반대해 독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고 괴산을 중심으로 진천군과 증평군이 공동브랜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고추 브랜드 육성 지원사업을 위해 공동 법인을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까지 194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 법인은 참여농가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고 참여농가 매뉴얼도 제작, 이 매뉴얼에 따라 올 해 750톤의 물량을 계약 재배했다. 또한 67억원을 들여 고추종합처리장을 건립, ‘고추잠자리’라는 브랜드로 대형매장과 학교급식, 김치공장 등에 납품하고 있다.

하지만 음성군이 통합 브랜드에 참여하지 않음에 따라 이 사업은 빛이 바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고추잠자리’라는 다른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괴산과 음성이 각기 청결고추 고장임을 내세우고 있어 시너지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고추잠자리와 음성청결고추라는 두개의 브랜드가 존재하게 됐다. 괴산과 음성이 청결고추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할 때 보다 오히려 하나의 브랜드가 늘어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접한 두 지자체가 같은 청결고추로 마케팅을 따로 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음성에 도전장 낸 증평 인삼

연작이 불가능한 인삼 재배의 특성으로 인해 인삼 주산지가 충남 금산에서 충북으로 옮겨 왔다.

도내 인삼 재배면적은 3928㏊로 전국 1만7831㏊의 22%를 차지해 전국 1위 규모다. 이미 금산이나 강화 등 타 집산지에서 유통되는 인삼의 상당부분이 도내에서 재배된 것들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도내에서는 음성이 1400㏊ 면적에 1000여 농가가 인삼을 재배하고 있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음성은 2010년 농가당 1억원의 수익을 목표로 인삼 명품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재배시설은 물론 나노 세척, 저장, 연장장애 예방 기술 개발, 명품화 사업조직과 재원조달 계획을 수립하는 등 이미 치밀하게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인삼약초연구소와 KT&G 인삼가공공장 유치 등 R&D와 가공 인프라를 구축해 인삼산업 성장동력을 마련했다.

음성이 1960년대부터 자연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인삼산업을 전략화 해 특화시키고 있다면 증평은 군의 시책으로 명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증평에서는 150 농가가 156㏊ 면적에 인삼을 재배해 도내 재배면적의 4%에 지나지 않지만 인삼 관련 대형 시설을 유치하고 관광과 연계해 새로운 특화 작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인삼유통센터와 충북인삼농협, 한삼인 가공공장이 들어서는 등 인삼산업의 메카로 성장할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동·옥천, 한달 간격 포도축제

여름철 중부권에서 괴산과 음성이 한달 간격으로 청결고추축제를 열었다면 남부권에서는 영동과 옥천이 포도축제 경쟁을 벌였다.

7월 3일간의 일정으로 제2회 옥천 포도축제가 열린데 이어 8월에는 5일 일정으로 제4회 영동 포도축제가 열렸다.
영동과 옥천도 포도라는 같은 특산물로 ‘따로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포도산업은 영동이 옥천에 비해 규모가 크다. 영동이 진국에서 가장 많은 재배면적의 13%를 차지하고 있고 농정과에 ‘포도담당’을 별도로 둬 포도산업 육성과 ‘메이빌 영동포도’ 브랜드의 명품화 사업을 전담케 하고 있다. 샤토마니도 꽤 널리 알려진 영동의 와인 브랜드다.

옥천도 영동에 이어 전국 두 번째의 포도재배 면적을 갖고 있는 포도 주산지다.

지난해부터 포도축제를 여는 등 옥천 또한 포도를 지역 브랜드화 해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FTA협정 이후 포도 농가의 타격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영농의 규모화와 명품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시너지효과 못 누리는 ‘따로 마케팅’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 예산낭비도 지적

고추와 포도를 주제로 한 4개 자치단체의 축제만 통합해도 최소 몇 억원의 예산을 줄일 수 있다.

더욱이 같은 작물에 대해 명품화 또는 브랜드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군별로 따로 지출되는 예산의 규모는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따로 포장디자인을 하고 각자 따로 유통망을 확보해야 하며 가공시설 같은 고액의 시설도 다로 설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투입되는 인건비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치단체가 경쟁하다시피 같은 작물에 대해 ‘따로 마케팅’에 나서는 데에는 실적 내지는 전시효과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단체장 직선제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본다. 산업구조가 비슷한 도내 지자체들이 특산물 명품화 사업을 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적기 때문에 이웃 시군과 경쟁하더라도 독자 추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예산 낭비 뿐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의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연구가 진행된 것이 없어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같은 작물을 인접한 지자체가 서로 명품화 한다고 나서는 것이 외지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같은 고추를 두고 괴산과 음성이 각기 자신들의 것이 좋다고 홍보할 것인데 이를 바라보는 타지인들은 어리둥절하지 않겠는가. 마케팅 차원에서 볼 때 이는 효율을 따질 필요도 없이 문제가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통합 등 지자체 끼리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공동 브랜드를 사용할 경우 해당 지자체간 예산 배분 등 나타나는 문제도 많다. 하지만 효율을 높이고 브랜드의 명품화를 위해서는 독자사업을 고집하는 자세를 버리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