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안에 우리 식문화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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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안에 우리 식문화를 담는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8.11.12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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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요 그룹, 도자산업에서 외식산업까지 확장
전통 재창조 마케팅으로 연 매출 100억대 기업

광주요는 그릇 안에 문화를 담았다. 이른바 식문화(食文化)다. 그래서 그릇 위에 담을 우리음식이 중요했고, 음식과 곁들일 술도 따로 만들었다. 광주요가 만든 한식당에는 벽지부터 소품 하나까지 모두 ‘광주요’의 것으로만 채워져있다. 광주요는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기업이다.

이러한 광주요의 역사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호(廣湖) 조소수(趙小守)선생이 장인들을 모아 조선 왕실의 관요가 있던 경기도 이천에 전통 도자기 재현을 꿈꾸며 ‘광주요’간판을 처음 내건다. 이후 광주요는 조소수 선생의 타계로 아들인 조태권 현 회장이 1988년 취임하면서 새 날개를 단다. 바로 전통도예에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 생활가운데 도자문화를 심은 것이다.

명품화 대중화 동시에 추진

   
▲ 올해 초 서울에서 열린 리빙페어에서 광주요의 브랜드 ‘화요’를 전시하고 있는 모습.

현재 광주요의 매출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간 100억원이다. 한때 광주요는 30~50대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공략한 마케팅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하지만 광주요는 이제 명품화 전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소위 계층별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광주요’가 수작업 위주로 고가 제품을 만든다면, ‘아올다’는 대량생산을 기초로 한 중저가 브랜드다.

또한 지난 2003년부터 국내 도자기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식문화 전반을 아우르기 위한 외식산업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한 이유로 이즈음 고급 한식당 가온이 탄생했다. 또한 그보다 가격대가 저렴한 ‘낙낙’과 프렌차이즈 ‘녹녹’등을 잇따라 만들어내면서 외식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가온의 메뉴는 저녁식사기준 코스요리가 10만원대, 낙낙은 4만원대, 녹녹은 6000원으로 다양한 소비자층을 겨낭한다. 이밖에 한국 전통 증류식 소주인 ‘화요’, 전통 민화를 모티브로 벽지와 소품을 만드는 ‘자비야’등을 개발하면서 광주요는 식문화의 A부터 Z까지를 만들어냈다.

이기형 디자인개발 실장은 “광주요에서 한식당은 작은 한국이라고 본다. 도자기만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닌 우리 문화로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도자기는 콘텐츠를 담는 그릇일 뿐, 중요한 것은 콘텐츠 그 자체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광주요는 한식의 코스화를 주장한다.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코스요리가 보편화돼있는 그들의 식습관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식문화 브랜드만 7가지

   

광주요는 97년 ‘아름다운 우리 식탁전’으로 획기적인 발전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88년 조태권 회장 취임 이후 시작된 도예의 시장성에 대한 해답을 줬기 때문이다. 공민애 홍보팀 대리는 “광주요 테이블 세트로만 전시를 선보였는데 인기가 좋았다. 여러 잡지에 소개됐고, 방송과 굵직한 행사에서 도자기 연출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도예의 시장성과 부가가치 창출에 대해 반신반의했었는데 확신을 줬던 전시였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도자를 생활식기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광주요 1세대들이 일본 시장에 의존했던 것에서 광주요 2세대들은 국내시장에 파고들었다. 이는 조 회장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회장은 “일본의 스시문화가 세계화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도자가 문화산업이 될 수 있는 데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 광주요는 식문화형성을 위해 20년 동안 달렸다. 이제야 국가가 나서 한식의 세계화를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인 지원과 관심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 지난 10월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한식세계화 선포식에서 광주요는 현대적인 한식의 모델로 초청받았다.사진은 광주요 상차림.

광주요는 그룹 운영에 있어 대기업 시스템을 적용한다. 대부분의 공방이 자체생산하고, 작가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에 반해 광주요는 위에서부터 디자인을 개발해 밑으로 내려 보내는 방식이다. 경기도 광주와 이천에 공장을 두고 있고, 디자인 개발은 서울지점에서 맡는다. 광주요의 50여명 직원 가운데 공예가는 30여명이지만 이들은 ‘광주요’표 작품을 만들 뿐이다. 상품을 개발하고 샘플이 나오면 품평회를 거쳐 시장성을 따져 최종 선발하는데 때로는 여러 작가와 공동 작업을 벌이기도 하고,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해 작품을 일부 직영점에서 팔기도 한다.

광주요 그룹은 인터넷 판매 사이트만 해도 5개나 구축하고 있다. 이기형 실장은 “소비자들의 취향변화가 어느 시대보다 빠르다. 광주요가 도자를 기반으로 외식사업까지 뻗어 나간 데는 어찌 보면 소비자들의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세계로 나가려면 전통에 기초한 재창조 선행돼야"

   
▲ 광주요 그룹 조태권 회장.
조태권 회장(61 사진)은 88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은 후 도자의 상품화 가능성을 인식하고 일찌감치 큰 그림을 그렸다. 광주요는 작가들의 공방으로 출발했지만 20년 만에 도자를 기반으로 한 대기업이 됐다. 식문화(食文化) 전도사로 불리는 그는 도자에 마케팅을 도입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미국 미주리대에서 공업경영학과를 전공한 그는 대우에서 일하다 독립해 중동 등에서 무기·중장비 거래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는 지금껏 20여 년 동안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한식 사업에 쏟아 부었다. 투자한 돈만 400억원이 넘는다.
조 회장은 “우리의 뿌리를 잃지 않고 세계로 나아가려면 전통을 기반으로 한 재창조가 선행돼야 한다. 의식주 가운데 식문화가 그나마 점령당하지 않는 영역이라고 판단했다. 한식이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문화를 보여줘야 한다. 개별 소재(음식)만 보여준다고 승부를 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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