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땅속, 자동차는 땅위로 ‘주객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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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땅속, 자동차는 땅위로 ‘주객전도’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9.02.18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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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동 사거리·성안길 입구 횡단보도 시민운동으로 ‘부활’
충북고 앞, 사직초 후문 앞 육교 불편, 대각선 건널목 필요

   
▲ 2005년 5월 부활된 성안길 입구 횡단보도. 시민들의 운동으로 만들어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지난 2005년 5월 8일 성안길 입구와 나도약국 앞에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그러나 저절로 된 게 아니다. 무수한 사람들의 요구와 주장, 운동 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87년 8월대현지하상가가 생기면서 횡단보도가 사라지자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편을 호소했다. 신한은행충북본부 앞 횡단보도에서 상당공원 사거리까지 460m 구간엔 이 횡단보도 한 개뿐이었기 때문이다.

최효승 도시·건축·에코뮤지엄연구소장(청주대 건축학과 명예교수)의‘도시의 주인은 차가 아니라 사람, 지하상가 위 횡단보도 부활하라’(충청일보87.9.7)는 글을 필두로 많은 하소연들이 줄을 이었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와 중앙시장상가번영회는 청주 상당경찰서에 ‘성안길 입구 횡단보도 설치요구서’를 제출했고 교통규제심의위원회는 이를 가결했다. 가결된지 2년여만에 성안길 입구에는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한편 중앙시장까지 차없는 거리로 연결됐다. 나도약국 앞에도 횡단보도가 만들어졌다. 지하도가 생긴지 18년에 돼서야 시민들의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시민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타 도시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사람, 자동차 중 뭐가 중요한가?

   
▲ 시민들의 요구로 지하도 위에 설치된 횡단보도. 용암동 농협사거리.
이뿐 아니라 청주시내에는 그동안 몇 가지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다. 세 곳만 그어졌던 방아다리 사거리에 나머지 한 곳까지 횡단보도가 생겼고, 농협충북지역본부 앞에도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2001년 용암동 사거리 농협 앞 지하도 위에는 횡단보도가 설치됐고 이듬해엔 중앙시장 입구 육교가 철거되고 횡단보도가 생겼다. 2004년에는 또 남사로입구 육교가 철거됐다.

최효승 소장은 “사람의 가치보다 자동차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로교통법시행규칙 ‘횡단보도는 육교·지하도 및 다른 횡단보도로부터 200m 이내에 설치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의 백치성은 세계 최고의 우리나라 보행자 사망수와 무관하지 않다. 몇 년전 시민단체들의 보행환경 개선 운동의 영향으로 이 규정에 ‘보행자의 안전이나 통행을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지 아니한다’는 단서조항이 첨가되면서 두 곳도 횡단보도가 설치됐다”며 “법조항 자체가 없어지지 않았지만 이 단서조항은 노약자와 장애인, 자전거가 하늘을 보면서 길을 건널 수 있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육교나 지하도는 사실 걷기에 매우 불편하다. 노약자, 장애인은 안간힘을 써서 건너가야 하고, 유모차·휠체어·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건널 수 조차 없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대로변을 무단횡단하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용암동 사거리와 성안길 입구 횡단보도 설치에 관여했던 최 소장은 이미 80년대부터 지하도와 육교설치는 자동차 중심 정책에서 나온 것이라며 줄곧 비판해 왔다. 그는 용암동 사거리 때는 ‘생태교육연구소 터’, 성안길 입구 때는 ‘충북참여연대’ 자문을 맡아 횡단보도 설치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 분평동 충북고와 남성초 사이 육교. 학생들은 등교할 때 이 육교를 건너야 한다. 그리고 노약자, 장애인, 자전거 탄 사람들은 안간힘을 써서 건너거나 아예 건널 수 조차 없다.
대현지하상가 오히려 활성화
그 중 성안길 입구 횡단보도 설치 때는 중앙시장번영회에서 강력하게 찬성한 반면 대현상가 상인들은 상권 위축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했다. 이효윤 충북참여연대 국장은 “우리 단체내에 ‘보행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여기서 실태조사를 한 뒤 시민 4904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후 대현지하상가 상인들이 많은 반대를 했으나 끈질긴 노력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횡단보도가 생기면 시민들이 지하상가로 내려오지 않아 대현상가 상권이 위축될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활성화됐다. 화장실과 상가를 깨끗하게 수리하고 에스컬레이터도 설치하는 등 이미지를 개선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토요일 저녁에 가보면 상가가 활성화됐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횡단보도는 시민의 보행권이지 상권위축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 곳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어도 유모차를 접어 가지고 다니도록 돼있어 불편하다. 이를 위해 별도의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청주시 분평동 충북고와 남성초 사이에는 육교가 있다. 그래서 두 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은 불편한 육교를 건너야 한다. 인근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내려 시내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이 육교를 이용해야 한다. 또 사직2동 사직초 후문을 이용하려면 육교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간 불편하지 않다.

   
▲ 서문동 서문교 앞에 설치한 대각선 건널목. 보행인들이 두 번 건널 것을 한 번에 건널 수 있어 편리하다.

최 소장은 이에 대해 “횡단보도를 만들어도 차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사람은 땅 속으로 다니고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정책이다. 이를 바꿔야 한다. 사거리 횡단보도도 대각선으로 다닐 수 있게 스크램블드 크로싱 시스템(Scrambled Crossing System)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하면 두 번 건널 것을 한 번에 건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주시내에서 유일하게 이 대각선 건널목을 설치해 놓은 곳은 서문동 해장국골목에서 서문교 쪽으로 가는 횡단보도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다고,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는 사람들을 위한 신호등이 없다. 이 때문에 보행자들은 어느 신호등을 보고 건너야 할지 헷갈린다. 이 또한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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