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가스레인지 지원 사업 의혹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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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가스레인지 지원 사업 의혹 증폭
  • 윤상훈 기자
  • 승인 2003.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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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가로 30만 원 미만 시설이 40만 원으로 둔갑

충북도와 제천시가 독거 노인 등 소외 계층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 시행 중인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이 일선 공무원들의 부당한 간섭과 시공 업자의 농간 속에 부정으로 얼룩지고 있다.

충청북도와 제천시는 지난 3월 제천시 거주 독거 노인 중 주방에 현대식 취사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30세대에 가스레인지를 설치해 주기로 하고 도비와 시비를 각각 50%씩 들여 1200만 원의‘일반보상금 사회보상적 수혜금’을 조성했다. 또한 지난 6월 20일에는 40만 원의 수혜금을 노인들의 통장에 개별 입금함으로써 사실상 사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제천시가 해당 노인이 거주하는 지역의 읍·면·동사무소 사회복지사를 통해 가스레인지 설치를 전적으로 주관하게 하면서 뜻 밖의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가스레인지를 설치한 한 독거 노인의 경우 자치단체의 사려 깊은 배려에 감사하기보다는 “친자식처럼 여겼던 사회복지사에게 속았다는 배신감에 잠조차 이루지 못할 지경”이라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노인이 가스레인지를 설치한 것은 개인 통장으로 수혜금이 입금된 지 사흘이 지난 6월 23일.
이날 사회복지사와 동행한 가스 설비 업자는 가스레인지와 압력조정기, 가스계량기, 가스배관, 호스밸브, 가스용기 등을 설치하고 3일 전 노인 통장에 수혜금 조로 입금된 40만 원 전액을 청구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날 업자가 설치한 가스레인지 관련 시설은 시공 인건비와 자재·물품비를 모두 합쳐도 시중 소매가 기준으로 27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업자가 사회복지사에게 제출한 간이세금계산서에는 가스레인지의 소매가가 8만 2000원인 것으로 적혀있었지만, 제천시내의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형성된 같은 모델의 시중가는 최저 가격대인 6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영수증에 6만 원으로 표시된 절체기 역시 동일 제품의 시중가는 3만 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 노인은 시중에서 거래되는 최저가의 가스레인지를 실제 소비자가보다 48%나 비싼 가격으로 구매한 셈이다.
이 노인은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을 대신해 가스레인지 설치를 도와주기로 했다면 최소한 가격에 맞는 제품을 선택해야 마땅한 일인데 값싼 물건을 설치해놓고 비싼 값을 요구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가뜩이나 질병과 고독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에게 이런 식으로 상심을 주어서야 되겠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다른 노인들의 사정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취재 결과 이들 가정에 설치된 가스레인지도 비슷한 가격의 제품이었으나, 시에 제출된 간이세금계산서에는 모두 40만 원대의 비용이 청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해당 노인들은 시가 가스레인지 설치를 사실상 주관할 바에는 경쟁 입찰 방식으로 업자를 선정해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노인들의 의견을 배제하면서까지 비싼 가격에 싼 제품을 설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제천시 관계자는 “각 읍·면·동사무소 사회복지사들이 개별 업자들을 불러 가스레인지를 설치해주다 보니 시중가보다 비싼 값에 물건을 구입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거동이 불편한 독거 노인을 돕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진 일로서 고의적으로 업자와 유착해 견적을 부풀린 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회복지사가 주관해 설치한 설비 중 계량기나 절체기 등은 현실적으로 일반 가정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장비여서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들 장비는 최적거래제가 이뤄질 때 필요한 시설로 가스통에서 잔류 가스가 소진된 이후에나 LPG를 주문하는 통상적인 관행을 감안할 때 일반 가정에서는 쓸모가 없는 물품이다. 따라서 해당 노인들이 개별적으로 가스레인지를 설치했다면 이 같은 불필요한 장비는 애초에 구매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해서 절감된 비용만큼 더 좋은 제품을 설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독거 노인들은 가스레인지 설치를 공무원에게 맡김으로써 도움을 받기보다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바가지를 써버리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당하고 만 셈이다.

이와 관련해 노인들은 “공무원들이 시중 대리점을 한 번만 방문했더라도 이 같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설비 업자들이 부당 이윤을 챙기는 과정에 흑막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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