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와서 공예 배우고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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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와서 공예 배우고 즐겨라”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9.04.21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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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껏 지은 33인 공예인들의 집, 매우 예술적
작업장에서 체험학습 가능···이미 취미교실 운영

충북 진천에는 공예마을이 있다. 이 곳에는 공예인들이 산다. 도자기·원목·한지·금속·천연염색 공예 등 공예 전분야의 예술인 33명이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13만 제곱미터에 둥지를 틀었다. 집이 모두 완성된 것은 아니나 나들이 삼아 구경갈 정도의 모양은 갖추었다. 현재 절반 가량의 작가들은 입주해 작업을 하고 있고, 절반은 짓고 있다. 그런데 작가들의 집이 모두 다르다. 외관부터 내부까지 개성껏 치장한 집들은 매우 예술적이다. 세련된 현대식 건물부터 황토집, 전통기와집,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낸 집, 그리고 옥상에 천문대를 갖춘 집까지 있다. 예술가들은 후세에 남길 집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진천 공예마을에는 작가들이 지은 30여채의 집이 있다. 작업장인 동시에 체험학습장, 작품판매장 역할까지 한다. 사진은 공예마을 전경

 진천 공예마을은 전국 유일의 공예촌이다. 공예인들이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땅을 사고, 집을 지은 사례가 없다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그래서 향후 100년을 바라보는 공예마을로 육성한다는 것. 한 때 반짝하는 영화셋트장이 아니고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있는 공예마을로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 98년 손종목(도자기 공예)·김장의(도자기 공예)·김세진(목공예)·박종덕(목공예) 씨 등은 “중국에서 값싼 공예품들이 들어 올텐데 우리도 모여서 좋은 작품을 만들자”고 얘기를 꺼냈고 이 것이 구체화됐다. 손종목 진천공예사업협동조합장은 “적당한 터를 구하러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진천군이 좋다는 말을 듣고 진천에 정착했다. 초기에는 우리 조합에 진천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때 김경회 군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진천군에서는 국비와 도비를 합친 28억원의 예산으로 토목공사를 해주었고 후에 도로개설과 공예품 전시장 및 체험장 건립을 책임졌다”고 말했다. 그 외 건축비 등의 비용은 모두 개인이 부담했다.

작가의 집은 오래도록 남는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곳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뜻은 같았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중간에 탈퇴한 사람도 여러명 된다고. 한 작가는 “여럿이 하는 일이다보니 얼마나 일이 많았겠는가”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겪은 작가들은 진천에 작가의 방을 탄생시켰다. 손 조합장은 “향후 방문객까지 생각해 집을 크게 지었다. 그러다보니 좀 무리를 해서 지은 사람들도 있다. 혹시 투기가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아니다. 우리가 살려고 지은 집이다. 작가들이 모두 입주하고 도로공사가 끝나면 제대로된 공예마을이 될 것이다. 각자의 작업장에는 체험학습이나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있어  연수와 체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작가들의 집은 모두 다르다. 외관부터 내부까지 개성을 드러낸다. 손부남 씨 작업장 전경, 손종목 씨 작업장 전경, 연방희 씨 작업실, 손종목 씨 작업실, 손부남 씨 작업실 내부(사진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 곳은 작가들의 작업장인 동시에 공예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학습장이며, 작품 판매장 역할도 하고 있다. 조합에서 만든 발전목표에도 민족의 혼이 담긴 공예품을 생산하고 학생·시민의 공예문화체험장, 지역 관광지와 연계한 체험관광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 들어있다. 나아가 국내외 수학여행단과 소풍 체험학습단도 유치한다는 것. 단순한 개인 작업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 현재 김장의 씨는 도자기 교실, 박종덕 씨는 목공예 교실, 연방희 씨는 천연염색 교실, 박덕주씨는 전통연 만들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청주시는 2년에 한 번씩 하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행사를 벌써 4회 째 치렀다. 올해가 5회 째를 맞이한다. 그러나 행사 끝나고 난 뒤 남은 것이 없다. 공예비엔날레를 통해 뭔가 축적된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공예인들이 모여 작업할 수 있는 공예촌 건립을 오래전부터 건의해 왔다. 진천 공예마을은 이런 갈증들이 모여 이뤄진 셈이다.

‘범곡미술공예’ 대표 손부남씨는 “돈이 없어 중단했다 다시 짓기를 4년 동안 반복하다 완성했다. 집을 짓기 위해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도 차근차근 모았다. 작가를 이해하는데 작업실은 매우 중요하고, 작가에게는 자기 체형에 맞는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되면 집은 곧 문화재가 된다”고 말했다.

재활용 잘하기로 이름난 손 씨는 남양주시에서 절을 철거할 때 사 온 목재와 청주 주성중 강당 바닥을 뜯은 나무, 진해시에서 목재박스를 해체한 나무 등으로 실내를 꾸몄다. 손 씨의 집 자재 대부분은 이런 재활용품들이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는 갤러리를 연상케하는 콘크리트집을 멋지게 완성했다. 작업실 옆에는 또 거주할 수 있는 살림집도 아담하게 지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문이 없는 이유···방문객 기다려
그리고 ‘고래실’ 대표 연방희 씨는 집을 웬만큼 짓고 현재는 조경작업을 남겨놓고 있었다. 현재 그의 집은 단층짜리 양옥이나 앞으로 어떤 변신을 할지 알 수 없다. 주인의 성격상 어떻게 변화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그는 이미 염색교실을 하고 있고, 직장인들을 위해 토요일 반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했다. 7년전부터 조합비를 내며 작업장 건립을 준비해 온 연 씨는 마당에 더덕과 대나무를 심을 예정이라며 즐거워 했다.

그는 “나는 집 짓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곳에 들어가는 게 아니고 민간주도형으로 모여서 집 지은 사례는 흔치 않다. 당시 진천군의 행정적 지원도 많은 도움이 됐다”며 전날 염색작업 하느라 어질러놓은 그릇들을 주섬주섬 치웠다.

‘재활용의 대가’인 연 씨 또한 여기저기서 얻어온 물건의 출처들을 밝히느라 정신이 없다. 작업장에 딸린 방 한 칸은 삼나무로 마무리해 나무 냄새가 기분좋게 났다. 연 씨는 부인이 시집올 때 해 온 옷장까지 가져다 놓았다. 족히 30년 가까이 된 가구였다. 또 마당에는 큰 무쇠솥을 걸어 불을 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고, 고기굽는 판도 설치해 놓았다. 아파트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울 따름이다.

손종목 이사장의 집은 유리로 마감해 마치 박물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 이사장은 “여기 집들은 대문이 없다. 공예를 배우고, 작품도 사고, 놀다가라는 의미다. 누구든지 와서 공예를 체험하고 놀다갔으면 좋겠다.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어도 요즘에는 이를 전시해놓고 팔 공간이 없다. 갤러리 같은 데서 전시회를 하지 않으면 판로가 없다. 서울 인사동에도 없고 청주시내에도 없다”며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예마을을 만들었다. 살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외관만 보고 집이 화려하다고 하지만, 속내용은 자구책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이 곳에는 이들 외에 김수진·박난숙·박웅기·김성자(목공예), 이정순(한지공예), 추선희·정영훈·양태석·윤미영·김영화·이무아·김진규(도자기공예), 윤을준·김향숙(금속공예), 김필례·정재만(천연염색), 주민종·선영순(보석가공), 조삼숙(가구 인테리어), 서병화(옹기제작), 김현선(공예디자인), 박복남(알공예), 신병하(전등갓 디자인) 씨 등이 입주해 있다. 그리고 강경숙 전 충북대 박물관장은 ‘강경숙도자연구소’를 열었다.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거의 20년 이상 경력을 갖고 있다.

진천 공예마을에는 전국에서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문의와 방문객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고 조합측은 밝혔다. 조합에서는 공예마을을 건립하고 운영하는 것까지 책임지고 있으며 정관과 규칙에 따라 한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공예마을이 활성화돼서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촌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을 누구든지 즐기도록 내놓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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