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흥이 방죽을 한국의 ‘레지오 에밀리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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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흥이 방죽을 한국의 ‘레지오 에밀리아’로
  • 충청리뷰
  • 승인 200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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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하는 역사기행(15) 원흥이 방죽

이탈리아 북부의 한 작은 도시, 레지오 에밀리아는 유아 교육 전문가들의 발길이 연중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지역의 현장 학습을 통해 양질의 시민을 길러내고자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인데요. 구체적으로 한 예를 들자면, 학교 교과 과정에 교통 법규에 대한 게 나오면 아이들이 직접 거리로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교통에 관한 총체적인 학습을 통해 익히고 배웁니다. 뿐만 아니라 교통 행정의 미비점이나 불편함까지도 발견해내면서 때로는 체험에서 나온 보완점까지도 행정 당국에 제안하기도 합니다. 그게 시정에 적극 반영됨은 물론이고요.

저희 청주역사문화학교에서도 몇 년 전부터 이 ‘레지오 에밀리아’식 접근법으로 현장체험 학습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요. 이를테면, 청주읍성 기행을 하면서 옛 청주읍성 복원도를 그려본다거나, 읍성 문터와 성곽 복원을 해달라는 건의문을 시장님께 보낸다거나 하는 것들이지요. 그 예는 더 있습니다. 정북동 토성과 남석교 등을 통해서도 아이들은 같은 활동을 해왔는데요. 실제로 근래 들어 이들에 대한 복원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것을 보며, 저희 아이들은 나름대로 일조를 한 것 같아 뿌듯해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에 못지 않은 현장체험 학습의 장으로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산남3지구 택지 개발단지, 즉 두꺼비 집단서식처로 유명한 원흥이마을입니다.

흔히 ‘역사 기행’하면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난 역사 유적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요. 하지만 원흥이마을도 국보나 사적지 못지 않게 충분히 역사문화 답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다 연구하고 복원해 놓은 유적지에서 학문적 설명을 듣는 것도 좋지만,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실감하는 것도 재미있는 역사 공부가 될 테니까요.

원흥이마을에서의 현장체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오랜 동안 택지개발지구로 묶여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자연 생태 탐사를 할 수 있는 점이고요. 둘째는 청주의 상징인 ‘직지’보다 72년 먼저 원흥사판 ‘금강경’이 이곳 원흥이마을 어딘가에서 인쇄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청주 인쇄문화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도시 개발과 역사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두 대립각 사이에서, 과연 ‘2003년 우리 청주’는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살아있는 현장체험 학습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청주역사문화학교에서는 지난 여름, ‘두꺼비 기자단’을 조직했는데요. 택지 개발이 되어 도시화가 되든, 역사생태 공원으로 보존되든, 지금 이대로의 모습은 아닐 것이 분명한  ‘2003년 원흥이’의 모습을, 어린이의 눈으로 똑똑히 기억하고 기록하자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원흥이의 생태 관찰, 역사 유적의 시굴 현장과 흥덕사 터를 연결하는 역사 탐구, 도시 개발 주체인 토지 공사 방문과 보존 주체인 원흥이보존대책위원회와의 인터뷰 등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도 씩씩하게 다녔습니다. 원흥이는 두꺼비의 집단 서식처일 뿐만 아니었습니다. 각종 나비와 거미, 잠자리 등 다양한 곤충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자연 도감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풀 한 포기들이 이룬 들판과 나무 한 그루씩이 모인 숲이, 사람을 포함한 모든 자연공동체의 터전임을 깨달은 순간, 그곳은 뛰어난 사회문화 교재였습니다.

그 훌륭한 사회 교과서에서 뛰어 놀며 배운 아이들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토지공사를 견학하는 아이들에게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을 때였습니다.“토지공사는 여러분에게 보다 쾌적한 생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개발을 하는 곳이다. 원흥이도 그렇게 개발할 것이니 걱정 말아라.”
그 때, 어떤 아이가,“그러다가 가경동처럼 아파트숲으로 만들어 놓으려구요?”라고 말하더군요.

저희는 얼마 전, 원흥이 마을의 역사 문화 시굴 현장 조사 보고회에도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역사전문가가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이 자리에 모이신 전문가들은 모두 역사학자이시니, 생태 이야기는 하지말고, 역사적인 것만 이야기하자”라고요.

이 글의 첫 부분에서 저는 ‘레지오 에밀리아’에 관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아니, 꼭 ‘레지오 에밀리아’식 접근법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들 삶에서 과연 그렇게 역사와 생태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있을까요? 역사와 생태, 문화, 교육, 결국은 그 모든 게 한 덩어리가 아닐까요?
(원흥이 방죽의 역사 시굴 현장에 대한 아이들의 활동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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