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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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9.05.20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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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좌절 허신영, N리그서 득점선두 ‘펄펄’
가난, 지방대 졸 난관 딛고 한국의 앙리 꿈꿔

청주대 졸, 허신영 ‘꿈 너머 꿈’
박지성, 이을용, 김병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무 생각 없이 ‘축구선수’가 답이라고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는 ‘난이도 하(下)’에 해당된다.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던 대표 선수’라는 답도 중간 난이도를 넘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한때 대학진학이나 프로팀 입단에 실패해 ‘축구를 포기할 위기에 놓였었다’는 것이 고난이도의 정답이다. 고교시절 이들의 실력이 눈에 띄지 않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막후에는 소속 학교의 부진한 성적 등이 배경에 깔려있다.

박지성은 고교시절 감독의 추천으로 ‘명지대’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무명의 선수였다. 이을용은 프로진출에 실패해 철도청에서 뛰다가 1998년 부천 SK에 입단하면서 연습생 신화를 썼다. 김병지는 고교진학에도 실패해 부산소년의 집에서 축구를 했으나 팀 성적이 부진해 잠시 축구계를 떠나야 했다. 군 입대를 통해 천신만고 끝에 상무에 입단한 것은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이들의 스토리에 신화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것은 스포츠에서도 ‘인생역전’이라고 부를만한 반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반증이다. 축구공과 운동복 외에 장비가 필요 없는 축구는 운동선수 입장에서 비교적 저비용 스포츠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교나 대학에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이 월 40~50만원의 회비를 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가난 때문에 지방대학 축구팀을 택해야 했고, 대학팀의 성적 부진으로 끝내 프로의 꿈을 접어야 했던 선수가 있다. 그러나 그에겐 ‘꿈 너머 꿈’이 있었고, 올해 N리그(실업축구)에 입단하자마자 단숨에 득점왕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직은 귀에 설지만 축구팬들이 기억해야 할 이름은 허신영이다.

축구나 야구 같은 팀 스포츠에서 스타의 운명은 소속 학교에서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성적이 전국대회 4강에 들었다면 일단 선수 전원에게 길운(吉運)이 트인 셈이다. 스타급 선수들을 모셔가기 위해서 스카우터가 학교를 방문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지도자는 제자들의 장래를 열어주기 위해 ‘끼워 넣기’에 열을 올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팀이 매번 예선탈락을 거듭했다면 어떤 결과가 따를까? 이 경우 소속 팀의 학생들이 각자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그 길이 학창시절을 ‘올인’한 운동이 아닐 수도 있다.

입단과 함께 N리그에서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인천 코레일 축구단’의 허신영(23) 선수는 청주대 레저스포츠학과를 졸업했다. 05학번인 그가 재학했던 기간 동안 청주대 축구팀은 충북체전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이는 선수들의 장래 개척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성적이다.

청주대 축구팀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유효한 분석이 있는데, 몇 년 전 대학축구를 1,2부 리그로 나누기로 하고 72개 대학팀을 상하 36개 팀으로 순위를 매긴 적이 있는데 청주대는 2부 리그 상위권인 39등에 랭크됐다.

안양이 고향인 허 선수는 사실 충북에 연고가 없기 때문에 굳이 청주대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안양초 시절부터 공을 차기 시작해 역곡중, 안양공고 등 비교적 축구명문을 거쳐 왔고 고교시절 나름대로 이름을 날렸기에 그는 수도권 명문대를 가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다.  

허 선수는 당시 청주대로 온 것에 대해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고교 감독님이 청주대를 추천했다. (청주대)감독님이 회비를 면제받도록 도움을 주셨고, 학자금 대출도 받았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은 자부심도 있다”고 말했다. 허 선수를 지도했던 청주대 이재희 감독도 “아버지가 배를 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이나 경기로 가야했는데 사실 청주대 입장에서는 줍다시피 한 선수였다”고 말했다.

허 선수 스스로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고교시절부터 매달 40~50만원의 운영비를 내야했고 별도의 훈련비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중산층 이하에선 등골이 휘는 뒷바라지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FA컵 활약, 프로서도 눈독
어찌 됐든 K리그 드래프트에서 입질조차 받지 못했던 허신영은 현재 N리그에서 연일 골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입단 이후 7경기에서 5골을 넣어 득점 1위를 달리고 있고 팀도 허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14개 팀 가운데 선두를 지키고 있다. 허 선수는 4월에만 3경기에 출전해 3골로 4월 MVP에 오르기도 했다. 

허 선수의 진가는 프로와 아마가 함께 실력을 겨루는 FA컵 32강전에서 발휘됐다. 13일 인천 코레일과 경기를 치른 최순호 강원FC 감독은 ‘이변은 없다’고 자신했으나 후반전 허 선수의 그림 같은 다이빙 헤딩슛이 그물에 출렁이면서 2대2 진땀 승부를 벌여야 했고, 결국 승부차기로 신승을 챙겼다.

지금은 그 누구도 허신영의 반란을 운이나 ‘반짝 활약’으로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이재희 청주대 감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기량이 발휘될 것이다. 슈팅도 좋은데다 장거리포도 있고, 특히 센스가 있다”고 극찬했다.

이 감독은 또 ‘대학시절엔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청주대의 여건상 고정 포지션을 갖지 못했다. 골키퍼 말고는 다해본 선수다. 팀이 약하다보니 큰 활약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허 선수 스스로도 자신의 활약에 대해서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허 선수는 “솔직히 기대이상이다. 여기에서 경력을 쌓다가 기회가 되면 K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허 선수와 관련한 또 하나의 화제는 머리와 콧수염을 기른 독특한 외모다. 허 선수는 이에 대해 “고교 때까지 운동을 하느라 머리를 길러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길렀다”고 수줍어했다. 허 선수가 닮고 싶은 선수는 FC 바로셀로나의 앙리와 고교 선배인 도르트문트의 이영표 선수다.

K리그로 간 N리그 신화 ‘김영후’

실업리그에서 프로의 별이 된 선수는 코레일 축구단의 전신인 철도청 출신의 이을용 선수가 원조다. 이을용은 SK 연습생으로 출발해 2002 월드컵의 영웅이 된 뒤 터키 프로축구 무대를 밟았다.

N리그에서 올해 창단한 강원FC로 이적한 선수로는 김영후, 유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김영후는 허신영 선수가 역할모델로 삼고 따라잡아야 할 선수다. 김영후는 숭실대를 졸업한 이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울산 현대미포조선에 입단했지만, 3년 동안 N리그의 골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을 갱신했다. 지난해엔 8경기 연속골 기록과, 한 경기 7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경기당 평균 1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김 선수는 2008 시즌이 끝난 뒤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으며, 지난 시즌 까지 울산에서 함께한 최순호 감독을 따라 강원 FC에 우선 지명돼 올 시즌부터 K리그를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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