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억원 들여 관아 복원한 ‘제주스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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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억원 들여 관아 복원한 ‘제주스케일’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9.06.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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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법원·검찰, 경찰청, 세무서 헐어내고 11년 공사
30만 제주시민, 기와 5만장 전량 헌와 ‘혼 담은 사업’

   
▲ 제주시가 도청, 법원, 검찰 등 관공서를 이전하고 구도심 한복판에 10년여에 걸쳐 175억원을 들여 복원한 제주목 관아. 박효순 문화해설사가 복원에 밑그림이 된 탐라순력도 영인본을 설명하고 있다.
청주시민들은 과거 탐라국의 수도권 주민이었던 제주시민들에게서 배워야할 게 있다. 탐라국 시대부터 치소에 해당하는 성주청(星主廳)이 있었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방통치의 중심이었던 제주목 관아를 무려 11년에 걸쳐 복원했기 때문이다.

1만9533㎡에 걸쳐 복원된 제주관아에는 건물 8동과 연못 등이 조성됐으며, 국비 100억964만원, 교부세 5억원, 도비 25억4700만원, 시비 34억9500만원 등 모두 175억600만원이 소요됐다. 그러나 이는 1단계이고 앞으로 건물터와 유구가 확인된 전체 유적을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제주관아 복원은 제주시민들의 자부심 그 자체다. 실제로 복원사업에 들어간 기와 5만장 전량이 시민들의 ‘헌와(獻瓦)’로 이뤄졌다. 제주관아 자리는 제주시의 구도심 한복판으로 일제가 관덕정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헐어내고 근대식으로 행정관청을 지은 곳이었다. 따라서 관아 복원 전에 있던 제주도청, 법원, 검찰청, 경찰청, 세무서 등 건물 18개동이 헐렸다.

이처럼 금싸라기 땅에 관아를 복원한 것은 정확한 목적을 갖고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에 걸쳐 발굴작업을 벌인데 따른 것이다. 그 결과 1993년 제주목 관아지 일대가 국가사적 제380호로 지정됐다. 복원에 따른 예산의 60%를 국비로 충당할 수 있게 된 근거가 여기에 있다. 또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라는 화첩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를 소유한 전주이씨 효령대군 문중으로부터 1998년 12월 이를 구입함으로써 대대적인 복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박효순 제주관아 문화재해설사는 “탐라순력도는 284명의 조선시대 제주목사 가운데 숙종대에 부임했던 156대 이형상 목사가 제주지역의 곳곳을 순시하면서 화공 김남길을 시켜 그린 41폭의 그림이 담겨있는 화첩”이라면서 “이 중 ‘제주전최(濟州殿最)’라는 그림에 당시 제주관아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어 완벽한 복원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박 해설사는 또 “관아 마당에 보도블록처럼 깔려있는 돌멩이 하나도 다른데서 가져온 것이 없다. 일제가 관청을 지을 때 과거의 유구 위에 복토를 한 뒤 그대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이렇게 복원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정지성 청주문화사랑모임 대표는 “제주시는 역사속의 제주목을 부각시키기 위해 계획성 있게 준비해 사라진 것을 되살려냈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청주는 객사터를 묻었는데 전주는 살려냈다. 전주는 역사가 있는 도시로 자리매김했는데 청주는 과연 역사문화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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