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는 시장...경기는 아직 ‘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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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깨는 시장...경기는 아직 ‘쿨쿨’
  • 이승동 기자
  • 승인 2009.07.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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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좋은자리 선점하려고 길가에서 새우잠도 불사
직거래 1번지 불구,노점 하루벌이 3만원 고작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청주에서 가장 먼저 새벽을 여는 곳이 있다. 손수 농사 지은 갖가지 농산물 보따리를 풀어놓기만 하면 그들만의 작은 점포가 열리는 곳.

육거리 시장 초입부터 꽃다리 방향 도로변, ‘새벽길’은 매일 새벽 또 하나의 작은 길거리 시장이 된다. 시간이 멈춘 듯 3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새벽4시면 다들 어느 곳에서 모였들었는지 신선한 농산물의 흙냄새가 절로 느껴진다.

새벽의 활기찬 기운보다 인생의 피곤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대부분 60~70대 어르신들이 모인 ‘새벽길’은 새벽시장의 부지런한 손님을 무작정 기다린다. 쓸쓸해 보이면서 한없이 정겨운 작은 길거리 시장.

오전 8시30분이 되면, 새벽시장이 끝나지만, 이들은 위험천만 도로변을 등 뒤로 보따리바닥이 보일 때 까지 이곳에 하루종일 머물기도 한다. 목 좋은 자리를 잡기위해 길거리 구석구석을 분주히 누비는 곳.
어수선해진 거리에 자리 한 곳을 잡고 앉으면 미소를 머금는 할머니들, 도시락을 펼치고 이른 아침을 해결하는 부부, 등 기댈 곳에 자리를 잡는다 치면 한 없이 행복해 지는 상인들.

이제는 좀 쉬어도 될 텐데 주름이 가득한 어르신들이 오늘도 변함없이 보따리를 풀어놓고 생계를 이어가는 육거리 새벽시장은 하루 종일 흙냄새를 풍기는 청주 소시민들의 삶이 흐르고 있다. 흙에서 나는 모든 농산물을 접할 수 있는 육거리 새벽시장을 찾아 그들의 새벽을 함께 맞았다.

   
▲ 오전7시30분 새벽시장. 손님이 없는 탓에 일찍 장사를 접은 상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육거리 새벽시장을 알리는 ‘새벽회’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며들고, 개운치 않은 어둠이 짙게 깔려 으스스함 마저 느껴지는 26일 새벽4시. 상당구 석교동 육거리 시장 초입은 새벽 장사를 위해 자리 잡기에 여념이 없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여기는 차가 지나가야 됩니다. 저쪽으로 자리 옮겨요. 하루 이틀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꼭 말을 해야 알아듣나. 회비는” 모자에 단속반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두 남자가 자리를 정리하며 회비를 걷는데 한창이다.

   
▲ 새벽회 단속반원이 차도를 막고 감자를 팔고 있는 한 상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상인들은 단속반의 얘기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누구랄 것 없이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매일 새벽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이곳만의 광경이다.

200여명의 상인들이 모여 있는 육거리 새벽시장은 ‘새벽회’라는 단체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윤왕식 육거리 새벽회 회장은 “아무것도 아닌 시장 같아도 대의원50여명이 투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고 있다.

그래도 웬만큼 체계를 갖추고 새벽회를 운영하고 있다”며 “회비는 새벽시장  상인들을 위해 쓰인다. 가로등 설치, 전기세, 단속반운영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새벽4시30분. 어렵게 자리를 잡고 이내 안정을 찾은 상인들이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늘 10접을 펼쳐놓은 김예분(청원군·70)할머니는 “새벽에 4시간정도 잠깐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며 “조금이라도 일찍 나와야 더 많이 팔수 있다. 한 여름이 되면 새벽 한 두시에 나와서 맨바닥에서 잠을 자더라도 자리를 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 발길 끊긴 새벽시장 
새벽5시. 새벽시장의 신선한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러 나온 손님들의 발길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

   
▲ 손님을 기다리는 두 할머니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만 ‘작년과 비교해 새벽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상인들의 근심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곳도 경기불황의 여파가 느껴지고 있었다.

“15년 여기서 장사하고 있는데, 요즘이 가장 힘들어.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겨. 사람들이게을러서 그랴” 새벽부터 꼬박 12시간이상 야채를 팔고 있는 윤모(65)할머니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정해진 가격 없이 만 원짜리 한 두 장손에 쥐면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는 이들에게는 큰 걱정일 수밖에 없다.     

윤 할머니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금쯤이면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발길이 뚝 끊겼다. 지금 이 시간에 사람들이 항상 붐볐는데 이제는 상인들이 더 많다”며 “요즘엔 지난해 이맘때, 반도 팔리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자리를 뜨지 않고 가져온 것들을 모두 팔아 봤자 기껏해야 3~4만원어치. 보통 새벽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직접농사를 짓기 때문에 일을 위해 시장이 끝나는 8시30분이면, 집으로 가지만, 윤 할머니는 저녁까지 자리를 지킨다. 아침은 도시락, 점심은 거르기 일쑤다.

   
▲ 새벽5시30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생선장수의 손놀림이 분주해 지고 있다.

“내가 혼자 키운겨. 마트에서 파는 거 하고는 확실히 틀려. 한번 보고 가봐” 상추 한 봉지를 팔기 위해 부탁하듯 호소하는 한 할머니가 애처로워 보였다. 할머니들은 그나마 오가는 사람들에게 힘없는 말투로 고향의 맛을 자극해 보려 애쓴다.

새벽5시30분이 되서야 사람들이 꽤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북이 쌓인 마늘 여러 접을 홀로 까고 있는 할머니의 손은 더욱 바빠지고 있었다. 새벽시장의 유일한 생선장수도 생선을 다듬는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알뜰주부들 여전히 많이 찾아
“이곳을 찾아 싱싱한 생선, 야채, 과일을 직접 구입하러 새벽잠을 설치며 종종 나온다. 마트보다 저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싱싱한 것으로 치면 최상이다.

또 할머니들의 넉넉한 인심이 전해져 이곳에 중독 됐다. 상추 한 박스를 4천원에 살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다”일주일에 한번은 꼭 새벽시장을 들른다는 유지영(38·우암동)씨의 말이다.

과연 얼마만큼 다양하고 신선한 농산물들이 유씨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이곳에서 거래되는 농산물은 양파, 감자, 상추, 배추, 마늘 각종과일에서 생선까지 신선해야만 하는 것들은 모두 총집합한다.

사람들은 피곤함을 무릅쓰고 신선한 농촌의 흙 맛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10년째 새벽시장을 꾸준히 찾고 있는 유길자(모충동·59)씨는 “남편이 새벽운동을 나갈 때 쯤 운동 삼아 함께 시장을 들르고 있다”며 “새벽부터 고생하는 할머니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시장을 더 보게 된다. 싱싱한 야채도 사고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장을 보는 날에는 마음이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판매되는 농산물들의 가격은 별다른 책정가격 없이 상인들 마음대로 결정된다. 값을 많이 깍는 것도 손님의 재량이다. 이 맛에 육거리 새벽시장을 찾고 있는 알뜰주부들도 많다. 육거리 새벽시장은 마니아들이 꽤 많은 곳이다.

마늘을 파는 이점례(청원군·76)할머니는“용돈벌이로 나오는데 비싸게 팔면 뭐햐. 담배 사피우고 용돈 벌이만 하면 그만이지”라며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는 것만으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아침7시30분. 파장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져온 야채를 반도 못 판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개시도 못한 할머니도 있었다. 어떤 상인들은 장사를 일찌감치 접고 삼삼오오 모여 커피한잔에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낡은 구조물을 오토바이에 싣고 이동 본다방을 운영하는 김화진(71)씨를 만났다. 건강이 나빠 오늘이 ‘마지막장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장을 나온다는 김씨. 이제는 건강보다 장사가 되지 않아 마지막 장사를 예감한다.
“새벽 내내 나와 봤자, 커피 30잔 팔기도 힘들다. 예전의 비하면 3분1도 못판다. 상인들 장사가 잘돼야 커피라도 먹지. 요즘은 시장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고, 힘들다”

20년을 갓 넘긴 육거리 새벽시장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걱정에 휩싸인 육거리 새벽시장이지만 언제나 희망을 품고 또 새벽을 여는 이곳 상인들. 하루빨리 시름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활기차게 청주의 새벽을 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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