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하라! 성을 함락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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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하라! 성을 함락시켜라!”
  • 충청리뷰
  • 승인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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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 (17) - 정북토성
정북토성보존상태 좋고, 평지에 쌓은 성 중 가장 오래된 곳

그리운 친구야. 잘 지내고 있지?
오늘은 청주에서 유명한 곡창지대인 미호천 변으로 답사를 갔다왔어. 예년보다 이른 추석으로 푸르딩딩한 감을 놓고 차례를 지냈는데 보름 남짓 지났다고 벼들이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고맙던지. 태풍 매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농작물이 피해를 봤니? 아직도 수재민들이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미안했는데 그 분들이 자연의 생명력을 보고 힘내셨으면 좋겠더라. 나는 그곳에서 바위에 부처님을 새겨놓은 정하동 마애불과 정북동 토성을 보고 왔어.

청주 내덕 1동 새동네에서 까치내 쪽으로 가다보면 철길을 건너기 전 오른쪽 암벽에  모자를 쓰고 있는 부처님이 있어. 길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 있어 잘못하면 지나치기 쉬운 곳이라 주의해야겠더라. 부처님을 보니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싸 안은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었어. 안내문에는 통일 신라의 마애불 양식을 잘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높이가 3.23m라고 하더라. 균형 잡힌 신체에 머리 뒷부분에는 원형의 광배가 있고 연꽃 위에 앉아 있었어. 이 마애불은 우리나라에서 하나 밖에 없는 ‘마애 비로자나불‘이래.  비로자나불은 여러 곳에 많이 있지만 바위에 새긴 마애불로는 이 불상이 유일하다고 하더라.

얇은 선각의 옷주름과 세 개의 목주름, 길게 늘어진 귀가 그 당시 유행했던 부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오랜 세월 탓만은 아닌 듯한 코의 마모는 옛날 여인네들의 민간 신앙 탓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부처나 돌장승의 코를 몰래 떼어다 갈아 먹으면 아이를 낳는다는 그 속설 때문에 우리나라 부처님들이 얼마나 많은 수난을 당했니?  코가 성한 부처가 거의 없잖아. 씁쓸하면서도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어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

친구야, 이곳은 지명이 참 재미있어. 정하동, 정상동, 정북동. 지명 앞에 전부 ‘정’자가 있는데 우물 ‘정’이야. 우물과 관련이 있겠지? 정하동에서 정상동 쪽으로 가다 보면 큰 나무 밑에 네모모양의 우물이 있어.’ 네모배기 샘’이라고 하는데 이곳을 기준으로 아래는 정하동, 윗쪽은 정상동, 북쪽은 정북동이라 한대. 안타깝게도 요즘은 지하수가 오염되면서 그 우물에서 물을 먹을 수는 없더라. 

우물에서 나와 정북동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나무 울타리가 네모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곳이 나와. 가는 길에는 아직 추수 전이라 누렇게 익은 벼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흔들며 “이곳을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 같아. 답례를 하고 들어서면 토성의 동문이 보여. 미호천과 무심천이 합류하는 동쪽에 있는 정북동 토성은 현존하는 토성 가운데 보존상태가 좋고 평지에 쌓은 성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하더라. 조선시대 승장 영휴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를 보면 후삼국 시기에 궁예가 이 토성을 축조하여 곡식을 저장하였다가 상당산성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어.

그렇지만 출토 유물과 축성방식 그리고 주변여건으로 보면 약 2세기 경인 원삼국시대라고 하니 1900년 정도 되었다는 거 아니니? 그런데도 그 형태가 거의 그대로 있었어.

토성의 둘레는 약 675m이고 거의 정방형의 형태야. 높이는 4m정도 되는데 동문 위에 올라가 사방을 보면 상당산, 우암산, 부모산 목령산 등이 모두 보여.  둘레를 돌면 4개의 문터가 있는데 특히 남문과 북문은 좌우의 성벽을 어긋나게 만들어 옹성의 초기 형태를 갖고 있었어. 성벽 밖에는 해자도 만들어 적의 침략에 대비한 흔적도 있어.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가 “진격하라!  성을 함락시켜라!!”고 외치며 노는 건 어떠니 ? 옆에서 무수히 자라고 있는 갈대를 꺾어 창도 만들고 칼이라고 하면서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와 나뭇잎을 던지며 하는 전쟁놀이.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어려운 옹성이 뭔지 금방 알게 되고, 더불어 성을 쌓았던 우리 조상의 지혜를 느낄 거야.

이렇게 초기 성곽축성의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곳이라 1999년 기념물에서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어. 앞으로는 공원화 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존재를 알린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지.

친구야, 볕 좋은 가을 .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자. 멀리 가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정북동으로 가서 마애불도 보고, 성에도 가서는 궁예도 되어 보고, 견훤도 되어 보고, 김유신 장군도 되어 보자. 옛날식 전쟁놀이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놀다 오자. 그리고 토성은 판축법으로 만들었다는데 오는 길에 백제유물전시관에 들려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유물과 성의 축조방법도 보고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용어풀이>

광배: 불상 뒤에 있는 광명을 상징하는 장식. 후광
비로자나불: 연꽃세계에 살며 큰 광명을 비춘다는 부처
옹성: 성문 근처에 쳐들어 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문을 옆으로 튀어 나오게 만들거나 성 바깥에 조그만 성을 쌓았던 것.
해자: 주로 평지에 쌓는 성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성 둘레를 파고 물이 흘러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시설
판축법: 가운데에 기둥을 세우고, 바깥쪽에는 널빤지를 대어 흙을 넣고 다져서 만드는 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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