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종 전 청주세무서장 무죄선고
상태바
이철종 전 청주세무서장 무죄선고
  • 임철의 기자
  • 승인 2003.10.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판부, "뇌물받았다는 검찰 혐의 근거없다"
이 전 서장 측 향후 대응에 주목...검찰의 수사권 남용 문제 지적

지난 7월 특정업체에게 세금감면 혜택을 준 대가로 1억 2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던 이철종 전 청주세무서장(60)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지방법원 형사 합의 24부는 지난 14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이 전 세무서장이 해당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이같이 판결했다.
이 전 세무서장은 지난 7월 20일 서울지검 외사부에 의해 '진천 소재 (주)해광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이용해 법인세 14여억원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이를 정상거래처럼 처리해 주는 대가로 이 회사 김 모 대표이사(51·당시 구속 중)로부터 1억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었다. 이 전 서장에게는 특정가중처벌법(뇌물수수) 위반혐의가 씌워졌다.

검찰의 기소내용에 따르면 이 전 세무서장은 지난 1999년 10월 세무브로커 최 모씨(60·불구속)의 부탁을 받고 담당공무원인 오 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해광 건을 잘 처리해 주라"고 지시, 허위 세금계산서 21여억원을 정상거래인 것처럼 처리토록 한 뒤 1억 2000만원을 해광으로부터 받은 혐의이다. (주)해광은 진천 소재 기업으로 컴퓨터 부품 제조회사다.
특히 검찰은 이 전 서장을 구속 기소하면서 "이 전 서장이 퇴직 8개월 전에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며 "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의 도덕 불감증이 큰 것으로 드러나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견해까지 이례적으로 밝혀 언론의 대대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서장은 검찰 수사를 받는 단계에서부터 줄기차게 검찰의 혐의내용을 부인했다.(관련기사 충청리뷰 7월 26일자 291호 16면) 이 전 서장 측은 "자신은 해광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봐주는 대가로 1억 2000만원을 받은 적이 결코 없다"며 "더구나 세무서 조직의 특성상 서장이 실무자에게 특정업체에 대한 세무조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는 데다 설령 그런 일이 가능하더라도 실무자보다 많은 액수가 서장에게 건네졌다는 혐의내용은 업계 관행으로 볼 때 어불성설"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검찰에 의해 이 전 서
장과 함께 구속된 오 모 청주세무서 직원은 해광의 세무조사를 잘 봐준 대가로 3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오씨는 이번 선고공판에서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검찰의 기소내용과 이 전 서장 측의 무혐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진행된 이번 재판은 내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선고공판에서 "이 전 서장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주)해광 대표이사 김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는 데다, 뇌물을 주고 받았다는 내용과 같은 액수의 돈이 김씨 소유의 차명계좌에서 빠져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 돈이 뇌물로 건네지지 않고 회사의 경영활동 과정에 쓰여진 점이 계좌추적 결과 드러난다"며 이 전 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서장 측은 1심 재판이 끝난 뒤 "사필귀정의 올바른 판단을 해 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며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명예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은 것에 대해 향후 명예훼손 소송 및 손해배상청구 등 대응책에 나설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 서장의 측근은 "판결문을 받아본 뒤 신중하게 대응하겠다" "재판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조심스러워 했다.

하지만 이 전 서장 사건의 경우 다시 한번 검찰의 무리한 수사관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뇌물을 줬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탈세혐의 피의자의 진술에만 기초, 뇌물수수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는 상대를 증거없이 인신구속하는 행태에 대해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전 서장의 사례가 계속 통용된다면 악감정을 품은 누군가가 증거 없이 특정인을 겨냥해 돈을 주었다고 주장만 하면 어느 누구든 억울한 구속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성립된다"며 "이것은 우리 사회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일로써 검찰은 절대적인 수사권을 부여받은 만큼 막강한 권한에 비례해 인신구속을 동반하는 수사에서는 보다 엄정하고도 증거 우선주의의 과학적인 수사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법원도 검찰이 청구하는 구속영장에 대해 검찰의 사건수사기록을 형식적으로 검토, 큰 문제의식 없이 발부하는 관행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구속적부심 제도의 명실상부한 활성화와 정착을 통해 인권보호와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로서 제 기능을 다해야 한다는 요청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언론의 보도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 높다. 판결이 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하는 우리나라의 현행 형사소송법의 정신에 비춰볼 때 언론이 '검증되지 않은' 검찰의 일방적인 피의사실 발표내용을 일방적으로 베껴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전형적인 발표저널리즘의 폐해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검찰이 1심 판결에 대해 불복, 즉각 항소했는지 여부는 당장 알려지지 않아 확실치 않지만 이 전 서장의 사건이 대법원의 최종판결까지 갈 것이라는 원칙적인 추정을 근거로 한다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위와 같은 논란들은 아직 시기상조로 부적절한 것인 지 모른다. 법리대로라면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대법원에 가서야 최종적으로 판가름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최종판결이 나와야 온전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원칙론은 절대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번 사례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검찰의 수사권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과거 숱한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거듭 확인해 온 문제의식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