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인 자긍심 높인 최고인물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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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인 자긍심 높인 최고인물 '반기문'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9.09.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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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세계대통령, 국내 ‘대권후보 2위’ 등극한 거물
고교 때 美 케네디대통령 만나고 외교관 꿈키운 ‘영어신동’

   
충북이 자랑하는 최고의 인물은 반기문 UN사무총장(65)이다. 충북 음성출신인 반 총장은 국제적으로는 ‘세계대통령’, 국내적으로는 대권후보 2위에 등극했다. 서울 모노리서치는 지난 1일 ARS 설문조사를 통해 정치현안을 조사한 결과 반기문 총장이 대권후보 2위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참고로 대권주자 중 3위 안에 든 사람들은 박근혜(27.4%) 반기문(18.8%) 유시민(11.1%) 씨 등이다. 이번 말고도 반 총장은 지난해 한국언론인연합회와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대권후보 2위로 나타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영어신동’ ‘성실한 사람’
본지는 '세계를 빛내는 충북인들' 취재를 하면서 반기문 총장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반기종 광주반씨종친회장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반 회장에게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지만, UN 사무총장 비서실에서 ‘NO’ 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반 총장의 고향이 충북이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반 총장의 지인과 동문들은 하나같이 그를 ‘영어신동’에 ‘성실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은 “내가 충주중학교 2학년일 때 반 총장은 충주고등학교 2학년 이었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충주중·고등학교 전교생을 운동장에 불러 모았다. 반 총장이 미국 적십자사 초청으로 미국을 견학하고 케네디 대통령까지 만나고 온 이야기를 전교생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 때부터 우리 학교에 훌륭한 선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반 총장은 영어실력은 물론 모범생으로 학교내에서 신화적인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반 총장이 고등학교 때 미국 적십자사가 주최한 영어경시대회에서 1등을 한 데 이어 주한 미대사관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한국 대표로 뽑혀 미국 땅을 밟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 때 그는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다. 꿈이 무엇이냐는 케네디 대통령의 질문에 ‘외교관’이라고 답변했다. 반 총장은 후에 목표대로 외교관이 됐고, 외교관들이 선망하는 UN 사무총장이 됐다. 

충주고에서 물리를 가르쳤던 김영대 전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반 총장을 영어를 잘하던 학생으로 기억했다. 김 전 교수는 "영어경시대회에서 여학생 한 명, 남학생 한 명이 뽑혔는데 여학생은 경기여고생, 남학생은 반 총장이 됐다. 당시 시골이었던 충주에서 뽑히자 난리가 났다. 반 총장은 시골길을 걸어 학교를 오가면서도 영어단어를 외우곤 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 서울대 졸업식
반 총장이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학창시절 영어공부에 매달린 덕이었다. 남보다 일찍 영어에 눈을 뜬 것. 그는 외국인 만나기가 힘들자 미국인 기술자들이 있던 충주 비료공장과 외국인 신부들이 있던 성당 등을 찾아다녔다고 고향사람들은 전했다. 공부외에도 모든 분야에서 앞서갔던 반 총장은 친척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친척들은 늘 자녀들에게 "기문이처럼 해라"는 말을 했다는 게 반기종 종친회장 말이다.

   
▲ 발트하임 오스트리아 대통령 부부와 함께
반 회장은 또 “반 총장은 외아들을 해병대에 보냈다. 그 때 청와대 외교수석이라 말만 하면 편한 곳으로 보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들이 훈련 끝나고 배치 받은 뒤 반 총장이 면회를 가자 부대에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또 딸 둘이 결혼할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하게 치러 공직자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반 총장은 한마디로 깔끔한 선비"라고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과 충주의 아들”
반 총장이 UN 사무총장이 된 뒤 행치마을은 일약 유명해졌다. 반 회장은 “요즘 행치마을에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전주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이 곳을 보고 선학인가형(仙鶴引駕形)이라고 말했다. 선한 학이 백성 등을 태운 수레를 끌고 간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반 총장은 UN 사무총장이 된 뒤 열린 충주시민 환영대회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아들이며 충주의 아들”이라고 말해 충북인의 자긍심을 한 껏 높였다. 태어난 곳은 음성이지만, 충주중·고를 다녀 그는 충주를 정신적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5세 때 충주로 이사했다. 이 때문에 반 총장에 관한 사업이 충주와 음성 두 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반 총장의 모친은 생존해 계시고 부친은 통운회사 소장을 지낸 반명환씨다. 부친은 지난 91년 교통사고로 작고했다. 작은 아버지가 충주시장을 지낸 반필환씨. 반 총장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제3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 외무부에 들어간 뒤 미주국장, 주미공사,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주 오스트리아대사, 대통령 외교보좌관, 외교통상부장관을 거친 뒤 2007년 UN 사무총장이 됐다. 93~94년 제1차 북한 핵위기 때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로 재직하면서 한국과 미국사이의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실무총책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장엽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을 성사시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반 총장이 사무총장이 된 뒤로 ‘반기문’이라는 이름은 전국민의 역할 모델이 됐다. 이후 ‘반기문 총장님처럼 되고싶어요’ ‘조용한 열정 반기문’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반기문처럼 키워라’'워렌버핏처럼 부자되고 반기문처럼 성공하라’ 는 등 수십권의 책이 쏟아졌다. 최근 서구언론으로부터 카리스마가 없다는 식의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반 총장은 한국의 자랑이며 충북의 자랑이다.

반기문 사무총장 프로필
1944년 충북 음성 출생
1963년 충주고 졸업
1970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외무고시 합격
1985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졸업
1990년 외무부 미주국장
1996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1998년 주 오스트리아대사
2000년 외교통상부 차관
2003년 대통령 외교보좌관
2004년 외교통상부장관
2007년 UN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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