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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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9.10.28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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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검 전직 검사장들 거침없는 고집쟁이 삶
건드릴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 두고두고 회자

지역 검찰의 우두머리인 검사장은 대략 1년 안팎의 임기를 한 지역에서 보낸다. 대부분 검사장들은 직무와 직책의 속성상 ‘검(檢)의 장막’ 속에 둥지를 튼다. 검찰(檢察)의 ‘檢’자에 ‘잡도리하다, 단속하다’라는 뜻 외에도 ‘봉함하다, 문갑, 책궤’ 등의 뜻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지역과 소통하고 사교적인 검사장보다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장막 속의 검사장이 재임하는 기간 동안 지역사회는 더 긴장하기 마련이다. 청주지방검찰청은 1948년 1대 박천일 검사장을 필두로 현 60대 김수남 검사장에 이르기까지 60명의 검사장이 재임했다.

그 중에 1990년 대 이후, 유난히 눈에 띄는 고집쟁이 삶을 보였던 일부 검사장들의 행보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현직을 떠나 자유업(변호사)에 뛰어든 일부 인사들의 행보는 이제 거칠 것이 없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1997년, 청주시를 하나님께 봉헌하다 
44대 전용태 (1997년 1월23일~1998년 3월19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밝혀 물의를 빚었지만 이는 우발적 발언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성시화(聖市化)를 추구하는 기관장 기독교인들의 모임인 ‘홀리클럽’이 용의주도하게 이 운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에 홀리클럽이 결성된 것은 이미 12년 전이다. 이를 주도한 것은 선출직 단체장이 아니라 당시 전용태 검사장(현 변호사·성시화운동 대표본부장)이다. 사실 그래서 이 운동은 더 파워풀했다. 전 변호사는 청주시 동장들에게까지 성경을 선물하는 등 막강한 힘(?)을 선교에 활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청주홀리클럽은 지난 97년 5월 무심천변에서 ‘청주 성시화와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2001년 6월2일자 국민일보는 “청주홀리클럽은 지난 97년 창립돼 4년에 걸쳐 구국기도회, 청소년선도, 우리동네 기도회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단체장이나 기관장들에게 활발한 전도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청주시 동장을 지냈던 A씨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검사장이 보내준 성경책을 받고 보니 진짜 교회에 나가야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전 변호사는 1967년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는데, 이는 그의 전도역사와도 궤를 같이 한다. 전 변호사는 부인인 최호자 권사를 통해 CCC(한국대학생선교회) 활동에 몸담은 이후 1972년 춘천성시화운동 등 현재까지 성시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검찰갤러리 만든 기와의 최고 권위자
47대 유창종 (1999년 6월9일~2000년 7월14일)

   
유창종 전 검사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기와 전문가다. 고기와에 대한 식견을 봐도 그렇고 소장하고 있는 물량에 있어서도 단연 으뜸이다. 유금기와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회장, 문화재위원이라는 화려한 직함이 현재 그의 위치를 말해준다. 

대검 초대 마약과장을 맡으면서 이 분야 전문가로 명성을 날린 데다 서울지검장, 대검 중수부장까지 거쳤고 현재는 법무법인 세종의 본부장을 맡고 있지만 최근 언론에서 유 변호사의 이름을 찾아보려면 문화면을 뒤져야 한다.

유 변호사는 지난해 5월 종로구에 유금와당박물관을 열었다. 부인은 복식미학을 전공한 금기숙 홍익대 교수다. 박물관 이름도 두 사람의 ‘성(姓)’을 딴 것이다. 이 박물관은 아시아 각국에서 모은 와당, 전돌 2700여 점과 토기 1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유 변호사는 이미 지난 2002년 기와 1875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이쯤 되면 그의 수집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유 변호사의 수집 이력은 충주지청 검사였던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 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검사가 된 뒤 주말마다 충주 일대를 돌았고 백제·신라·고구려의 특징을 모두 지닌 탑평리 ‘육엽연화문’ 기와를 발견하면서 기와에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던 것.

그러나 청주에 남아있는 유 변호사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1999년 10월 개관한 이른바 ‘검찰갤러리’에 대한 것이다. 청사 정원과 청내 공간에 운보 김기창 등 향토작가들의 각종 작품 150여점을 전시한 것이 2007년 7월 청사 이전 이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99년 당시 작품을 제공했던 재경작가 B씨는 “임대형식을 빌어 작품을 제공했는데 사실 검찰에서 달라고 하니까 군소리 없이 내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직지서예대전 오자 찾아낸 불교전문가
58대 김진태 (2008년 3월11일~2009년 1월18일)

   
올 초까지 청주지검에 근무했던 김진태 검사장은 현역(서울북부지검 검사장)이다. 김 검사장은 지난해 9월 지역사회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검찰수사 발표가 아니라 제5회 직지세계서예대전 대상(大賞) 작품에서 4개의 오자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시회장을 찾았다가 현장에서 이를 집어낸 것이어서 놀라움은 더욱 컸다. 

수상작 이 모씨의 작품 ‘양보지화상대승찬송(梁寶誌和尙大乘讚頌)’ 10수(十首) 가운데 문제가 된 글자는 3째 줄의 ‘少’와 12째줄 ‘疾’, 14째줄 ‘若’, 18째줄 ‘二’ 등으로 직지 원본에 실린 글자와 다르거나 정자가 아닌 약자를 썼다는 것. 김 검사장은 현장에서 “대승찬은 불교 3대 선시 중에 하나로 평소 자주 읽어왔다. 불교의 선시는 6개 글자가 1개의 구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밝혀 불교에 대한 조예가 경지에 이르렀음을 드러냈다.

결국 주최 측은 김 검사장의 지적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오자를 확인하고 수상작 선정을 취소했으며 상금 500만원도 회수했다. 심사가 졸속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은 것은 물론 향후 심사위원에 불교전문가를 포함시키도록 하는 조처가 취해졌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홍보하기 위해 직지서예대전을 개최했던 청주시도 망신살이 뻗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 검사장은 청주지검에 재임 중이던 지난해 5월9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스님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수월스님의 삶과 자비정신’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했다. 수월스님(1855~1928)은 혜월, 만공 스님과 더불어 ‘경허의 세 달’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수행력을 보인 근대불교사의 전설적인 대선지식으로, 김 검사장은 수월스님의 삶의 모습을 ‘물속을 걸어가는 달’이라는 책으로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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