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선무공작 ‘언론부터 잡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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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선무공작 ‘언론부터 잡고보자’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0.01.2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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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관계자 신문·방송사 간부 식사모임 잇따라
청와대가 관제탑 “수정안 집중 홍보하라” 지침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하는 지역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정부의 선무공작(宣撫工作)이 융단폭격처럼 쏟아지고 있다. 선무공작이란 전시나 사변으로 군대가 출병해 적국의 영토를 점령했을 때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을 군에 협력하도록 하거나 적어도 적대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하는 선전·원조 등의 활동을 일컫는 것이다.

▲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기 위한 선무공작이 충청권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사진은 수정안 발표 직후 충북지역 언론사 사장단과 오찬을 가진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의 기자간담회./ 사진=육성준 기자
선무공작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지는 곳은 당연히 반발여론이 가장 거센 충청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론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양상이다. 세종시의 위상이 당초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기업·과학·교육도시로 수정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세종시를 품고 있는 충남은 이 같은 선무공작에 서서히 동조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종시와 연접해 있는 충남 연기군과 충북은 세종시의 블랙홀 현상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과연 정부의 공작이 영향을 미치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충북의 반대여론이 거센 가운데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를 비롯해 국정원까지 도내 언론사 간부들을 초청해 식사모임을 가진 것으로 밝혀져 부적절한 언론플레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청와대 박형준 정무수석은 13일 오전 12시 라마다프라자 청주호텔에서 도내 신문방송사 대표들을 초청해 오찬모임을 가졌다. 박 수석은 이어 1시30분에는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세종시 수정안 발표에 따른 지역의 여론동향을 파악하고 이해를 구했다.

박 수석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로 인한 블랙홀 현상을 우려하는 데 충북에 올 기업이 오지 않는 일은 없고 세종시가 과학비즈니스벨트 허브도시가 되면 인근지역으로 파급 효과가 발생한다”며 “기업들이 오는 여건이 조성되는 등 충북과 충청권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이어 “청주공항이 활성화되기 위해 국제적 기능을 하는 도시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과학비즈니스벨트 허브도시로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며 “그런 면에서 정부가 공항 활성화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또 ‘청원군 부용면과 강내면을 세종시에서 제외해 달라’는 주문에 대해 “세종시 발전방안이 확정되면 자연적으로 빠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에 대한 지역의 반응은 냉담하다. 세종시에 정부부처 이전이 백지화 되는 마당에 청원군 일부지역을 편입시키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얘기라는 것이다. 당일 오찬에 참석했던 언론사 대표 A씨는 “옛날 전쟁도 땅 따먹기인데 열악한 도세를 생각하면 뼈에 사무친다. 세종시의 위상이 행복도시가 아니라면 충북이 굳이 청원군 일부를 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장관 총동원 언론 회유 나서
정부의 세종시 선무공작은 수정안 발표 이틀 전부터 시작됐다. 지난 9일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이 언론사 사장단과 조찬모임을 가진데 이어 같은 날 점심에는 충북 괴산 출신인 안병만 교육과학부장관이 편집·보도국장단을 초청해 오찬모임을 가진 것이다.

한겨레신문이 입수한 ‘세종시 수정안 홍보 계획’에 따르면 장관들의 이 같은 언론 밥 사주기는 청와대라는 관제탑의 조정 아래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통일부와 농림수산식품부, 노동부 등 세종시와 직접 연관이 없는 부처의 장관들까지 총출동시켜 수정안 홍보에 나서도록 하는 등 방송과 신문, 인터넷, 대면 접촉을 망라한 전방위적 홍보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국토해양부(대전·충남)와 교육과학기술부(충북), 지식경제부(대구·경북) 등 세종시 유관 부처뿐 아니라 통일부(제주)와 문화체육관광부(강원), 환경부(광주·전남), 노동부(경기), 농식품부(전북) 등 연관성이 없거나 얕은 부처의 장관들까지 열거됐다.

또한 문건에 따르면 “모든 부처의 고위 공직자들이 언론을 접촉할 때 ‘지역차별이 없다’라고 수정안을 집중 홍보하라”는 지침이 각 부처에 내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는 특히 문건에 방송매체를 통한 홍보 계획과 관련해 “KBS ‘뉴스라인’ 20분 특집 편성(세종시 및 과비벨트 정책 설명-총리실장, 민동필 이사장, 강병주 교수 등)”이라고 기술해, 방송 편성에도 개입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KBS ‘뉴스라인’은 월~금요일 밤 11시부터 30분 동안 방송되는 뉴스 프로그램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11일 밤 뉴스라인은 모두 17꼭지로 편성됐는데, 앞부분 10꼭지가 세종시 관련 기사였으며, 대부분 정부 발표 내용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국정원도 편집보도국장 만찬
과거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다가 이제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내세우고 있는 국정원도 세종시 수정안 홍보에 헌신하고 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사고 있다.

실제로 국정원 충북지부는 12일 저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모 식당으로 지역 일간지 및 방송사 편집·보도국장 10여명을 초대해 식사접대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지역여론 동향과 개인적 의견을 나누며 2시간 가량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모 신문사 B국장은 “1년에 한 번 정도 국정원 지부장이 편집·보도국장단과 상견례처럼 자리를 마련해왔다. 이번에는 세종시 수정안 발표 직후라서 주요 화제가 된 것이고, 국정원측에서 수정안을 홍보하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도 “당초 지난해 말에 송년모임을 하려했으나 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편집·보도국장단 간사와 협의해 날짜를 잡은 것이다. 세종시 현안을 염두에 두고 모임을 주선한 것은 절대 아니며 지역 기관장으로서 중견 언론인들과 격의 없는 만남의 자리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선무공작이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행정도시 충북비상대책위측은 우려와 함께 지역의 언론이 꿋꿋이 버텨줄 것을 주문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도민들의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국정원과 청와대 고위간부가 지역 언론사 대표와 국장단을 만난 것은 의도가 뻔한 것 아닌가. 국민의 혈세로 모든 일간신문에 일방적인 세종시 홍보광고를 도배 하는 것도 부족해 언론인들까지 회유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행태가 재현되는 상황이 안타깝고, 우리 충북 언론이 이 같은 국가 권력기관의 무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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