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의 공존…日 오타루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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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의 공존…日 오타루의 매력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0.01.2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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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패망 후 산업시설 문화공간으로 변모
영화 ‘러브레터’로 유명세, 관광객 발길 줄이어

재생 공공디자인으로 승부 걸다
때려 부수고 쌓아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옛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는 도시의 마천루 속에서 섬처럼 고립돼 있는 역사유적만으로 ‘관광의 세계화’를 꿈꾸는 것은 그야말로 헛된 꿈이다. 세계는 재생에 초점을 맞춘 공공디자인으로 도시 전체를 관광지로 만들고 있다.

모든 상업시설 그 자체가 관광지가 되는 격이라 과거의 유산을 재활용하면서도 현대의 경제에 기여하며 관광특수까지 이끌어내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798번지의 ‘다산즈(大山子) 798 예술구’는 1950년대에 건설된 군수공장을 중국 최대의 아트마켓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 잡은 영국의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옛 화력발전소의 외형을 그대로 두고 내부를 갤러리로 바꾼 예로, 전시물에 앞서 건물 자체만으로도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술 더 떠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오타루의 도시 외양은 19세기에 멈춰 있다. 내부도 문화와 예술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진정한 속내는 관광과 상업이다.

   
▲ 겨우내 쌓여있는 눈과 함께 100여 년 전의 풍광이 그대로 남아있는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의 거리풍경.

오타루의 시계는 이미 오래 전에 멈춘 듯하다.  24시간 눈이 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겨울 오타루는 눈(眼)으론 따사로운 눈(雪) 속에 덮여 한 세기가 지나도록 변함없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오타루를 우리나라에 대중적으로 알린 것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5년작 ‘러브레터’를 통해서다. 여주인공이 눈 덮인 산을 향해 ‘오겡키데스카(잘 지내시죠)’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는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부터 불법복제한 비디오가 나돌았을 정도였다. 이후 조성모, 이수영의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CF, 드라마, 영화 등 수많은 영상물의 단골 촬영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72년 오타루는 홋카이도에서 최초로 상업목적의 항구를 개설해 홋카이도 개척의 가교역할을 했다. 1880년 삿포로를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삿포로의 외항 및 석탄 선적항으로 급속히 발전했으며, 러시아 연방의 사할린, 블라디보스토크 등과도 활발히 교역했다. 오타루는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 떠올라 ‘홋카이도의 월스트리트’로도 불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도시 풍광이 그때 그 모습이라면 당시의 영화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건축물 보전 조례 통해 옛 모습 지켜
그러나 오타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일본의 헛된 야망이 시드는 것과 함께 오타루의 꿈도 사라졌던 것. 오타루가 다시 꿈꾸게 된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나서다. 1983년에 ‘역사적 건축물 및 경관지구 보전 조례’를 제정해 1914년 이래로 화물을 실어 나르던 작은 운하를 관광 코스로 개발하고 오르골, 전통 과자, 유리 공예품 등을 파는 거리를 만들었다.

   
당시의 기업과 금융기관 건물은 물론이고 운하주변의 창고까지 대부분 원형 그대로 보존돼 현재 박물관, 미술관, 상업시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내부시설은 지나치리만큼 현대적이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석조건물과 가스등이 은은하게 불을 밝히는 이국적인 운하의 풍경,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타루의 겨울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실제로 1933년에 문을 열었다는 제과점 ‘육화정(六花亭·롯카테이)’은 1933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건물 외양은 나이가 제대로 들었으나 내부는 모던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육화정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김원균(42·서울)씨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 오타루의 매력”이라며 “우리나라도 무조건 낡은 것을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현대에 맞게 재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족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공디자인을 통해 거듭난 도심공간은 구질구질한 중고품 진열장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모던한 공간으로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내국인 위주의 관광에 머무르는 한계에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도 유효하다.

“청주도 아직 가능성 남아있다”
미술을 통해 청주 안덕벌의 도심재생 공공디자인을 주도해온 조송주 작가는 “지역성을 바닥에 깔지 않으면 이벤트성 개발에 밀려 문화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며 “유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려는 노력은 창작스튜디오 수준을 넘어서 도시의 특수성이 살아날 수 있는 곳에 단지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조 작가는 또 “청주도 내덕동 연초제조창과 사직동 구 KBS 건물 등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근대유물들이 적지 않다”며 “2월에 유휴공간을 활용해 아트팩토리를 조성하기 위한 공청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경향은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북 군산시는 ‘근대문화 중심도시’를 추진하면서 조선은행, 적산가옥, 사찰 등 170여 채의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고 정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화물 창고를 공연장과 작가들의 작업공간으로 바꿔 인천 구도심을 재생하고 문화 인프라를 확충하는 이중효과를 보고 있다.  

 

   
▲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제과점 육화정은 겉모습(상)은 고풍스럽지만 내부(하)는 모던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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