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노사 분규사업장 이미지 벗은 충북대 병원 ‘신뢰’가 변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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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노사 분규사업장 이미지 벗은 충북대 병원 ‘신뢰’가 변화를 일으켰다
  • 김명주 기자
  • 승인 2003.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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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무파업 임단협 합의
노사관계 개선 실마리 잡아

지난달 29일 충북대병원 노사 양측은 의미 있는 악수를 교환했다. 2003년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을 분규 없이 타결 짓는 순간이었다. 이 병원 노조는 노사 양측이 합의해 낸 임단협안을 73%의 압도적 찬성률로 추인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날 충북대병원의 노사간 임단협안 최종타결 뉴스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불과 2년 전 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말이다. 사실 충북대병원은 한동안 ‘만성적인 노사분규 사업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떼어버리지 못했다. 툭하면 파업사태가 벌어졌고 병원장의 공금유용, 경영부실 논란은 지겨울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교육인적자원부의 감사를 받는 치욕도 당했다. 시민들의 냉담한 시선이 쏟아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충북대병원이 일대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고질적인 노사쟁의 사업장에서 모범적인 직장으로 탈바꿈하려는 노사 양측의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다. 올해의 평화적인 임단협 타결로 충북대병원은 어느덧 2년 연속 무파업이라는 가볍지 않은 기록을 추가하게 됐다.

무엇이 충북대 병원을 이토록 변화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일까. 김승택(51) 충북대병원장과 금기혁(35) 노조지부장을 만나 변화의 과정을 들어봤다.

“신뢰할 수 있는 관계 만들도록…”
충북대병원의 변화 바람을 몰고 온 사람은 현 김승택 충북대병원장이다. 지난날 잇따른 파업과 내부 직원의 비리로 인해 충북대는 비난의 눈초리를 받았다. 도민들은 도내 유일의 3차 의료기관임에도 불신을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김병원장은 “취임 직후는 노사간의 극한 대립 상태로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취임한지 채 1년이 못됐는데 10년이 흐른 것 같다”고 그동안의 심경을 고백했다. 병원 운영에 대해서는 “우선 응급의료센터가 완공돼 병원 규모를 확대하려 한다. 규모가 커져야 인건비 인상도 쉽고 병원의 발전도 이뤄질 것이다. 지난 4월 임단협을 계기로 구조적으로 안정을 찾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금노조지부장은 김병원장에 대해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리고 노사 관계를 이끄는 방식이 종전과 다르게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노사 관계가 대립에서 화합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내홍을 겪었기 때문에 사측에 대한 신뢰도는 거의 바닥이었다. 사측은 우리를 무조건 경영진에 협조를 해줘햐 하는 대상, 아니면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계기로 인해 신뢰 회복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며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노조지부장은 “역대 좋지 않았던 노사관계를 개선해 발전적으로 모색하려는 모습은 노측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가 요구하는 사항이 부당하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요구하는 바가 다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성의있게 들어주고 고민하는 모습이 곧 신뢰의 바탕이다”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그동안 3가지 합의사항을 이끌어 냈다. 2007년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반직 6급 철폐,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그것이다. “3가지 합의사항은 우리의 요구와 목소리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종전에 우리를 배제하고 경계하던 태도가 지양됐다는 것이 큰 의미다.”

노사가 긴밀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먼 얘기다. 단지 어떤 문제나 사건 앞에서 의견을 조율할 수 있도록 협의하자는 것이 우선의 과제다. 김병원장은 “나는 경영자가 아니라 관리자다. 아직은 멀었지만 입버릇처럼 ‘선량한 관리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직원 개개인은 회사를 위해 뛰고 회사는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노사의 협력 없이는 회사가 지탱해 나가기 힘들다. 노조가 외치는 사항은 대부분 비용이 수반된다. 그렇다 보니 적자경영인 마당에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금노조지부장도 아직은 사측이 믿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온화적, 대화적으로 풀 수 있었던 문제를 갈등과 대립으로 지속시켰다. 그런 감정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진심이 확인됐을 때 해소되는 것이며 노조가 회사측에 지나칠 정도로 융화되거나 무조건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속적인 협의 필요
충북대병원 노조측과 병원측은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서로의 관계가 조심스럽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큰 기대보다는 작은 부분의 배려를 원한다. 김병원장은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책임감을 갖고 머리를 맞대 의견 교환을 하기”를 바라며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는 병원 사정을 헤아려 주기”를 당부했다.

노조측 금노조지부장은 “지금까지나 앞으로나 우리의 바람은 다르지 않다. 직원들이 병원을 신뢰할 수 있도록 중요한 사항에 대해 협의를 바란다. 앞으로도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지속시켰으면 한다.”고 밝혔다.
현재 이들은 정기적인 노사협의회, 대표자들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상생관계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병원장은 “앞으로도 두터웠던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충북대병원을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비롯한 의료진, 직원들이 서로 북돋아 주는 관계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며 “도민들의 애정과 관심 속에서 충북 ‘토종의 병원’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노사관계는 역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경영진에게 달린 것일까. 사측이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노조를 협상파트너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노사관계가 좌우된다는 교훈을 충북대병원 사례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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