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물리학자, 큰 족적 남기고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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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물리학자, 큰 족적 남기고 떠나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0.04.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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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더 빛나는 김영대 전 충북대 교수… 추모회 개최
자비로 운영하던 AE연구소, 어머니회와 제자들이 이어받아

   
오로지 물리학을 위해 살다 돌아가신 분이 있다. 대학교수직을 명퇴했지만, 그는 강의실 밖에서 여전히 제자들과 울고 웃었다. 자비로 연구소를 만들고 인재육성에 모든 열정을 바쳤다.

이 사람은 물리학자인 김영대 전 충북대 교수(AE연구소 소장)다. 6개월여 동안 암 투병 하던 김 전 교수는 지난 2월 26일, 75세를 일기로 끝내 눈을 감았다. 김 전 교수로부터 물리학 교육을 받은 제자들은 지난 11일 생전의 그를 추모하는 강연회와 토론회를 열었다.

‘故 김영대 교수님 추모 AE연구소 창립 11주년 기념강연 및 토론회’가 열린 청주 흥덕문화 집에는 약 100명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 유족 등이 모였다. 평소 AE연구소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배우던 사람들이다. 김 전 교수를 추모하는 동영상과 사진을 보며 이들은 소리내어 울었다. 학문과 제자들을 위해 살아간 김 전 교수를 ‘아인슈타인을 사랑한 아름다운 물리학자’라고 부르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이 날 행사는 ‘공부벌레’였던 교수를 기리는 행사답게 매우 짜임새있게 진행됐다. 김 전 교수를 추억하는 1부 행사와 2부는 학생들의 발표회, 3부는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들의 강연회로 채워졌다. 학생들은 그동안 배운 물리학 이론에 대해 발표하고, 교수들은 학생들을 위해 고급 물리학을 강의했다.

   
▲ 김영대 교수의 제자와 AE연구소 어머니회 회원들은 11일 김 교수 추모회와 창립11주년 기념강연회를 열었다. 연구소는 김 교수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도 계속 운영된다.
충주 출신의 김영대 교수는 충주사범학교·서울대를 졸업하고 충주고·청주교대·충북대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그의 제자다. 반 총장과는 충주고 재직시절 만났다. 그의 인재양성은 퇴직 후 더욱 빛을 발했다. 김 전 교수는 지난 2000년 4월 청주시 사직1동에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첫 글자를 딴 AE연구소를 열었다.

지난 5월 연구소 10주년 기념 토론회 때 기자와 만난 그는 “처음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의 세미나 장소로 쓰려고 연구소를 열었으나, 중·고등학교 교사로 나간 제자들이 그 제자들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지금은 중고생들 차지가 됐다. 평준화교육은 학교에서 하니까 여기서는 고급물리를 가르친다. 수준이 대학 1학년 일반물리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국제화시대에 영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그는 영어로 물리를 강의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연스레 영어로 발표를 한다.

현재 이 연구소를 거쳐간 학생들은 1년에 20명씩 200여명 된다. 김 전 교수 덕에 물리를 좋아하게 된 학생들은 과학고, 카이스트, 포항공대, 일본 오사카대학, 미국 스탠포드대 대학원 등에서 현재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김 전 교수의 제자인 김영철·신인철·신직수·이혜순·김영민·박민규·김나영 교사 등도 교사로 나섰다. 충북대에서 물리를 전공한 미국인 Zidanic 씨는 유일한 영어 원어민 교사다.

연구소에서 하던 물리수업은 매주 일요일 흥덕문화의 집에서 이 교사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스승은 떠났으나 연구소는 계속 운영돼야 한다며 관계자들은 현재 발전 방향에 대해 뜻을 모으고 있다. 김 전 교수는 연구소를 만든 이후 7년 동안 무료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부모들의 성화에 못이겨 연구소 공과금 및 제자들의 수고비 명목으로 월 5만원씩 받는 것도 미안해 했다. 참 스승이라고 존경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도 강의했다. 김 교수는 생전에 ‘유가와의 물리구성’‘마아취의 시인을 위한 물리학 역사’‘럿셀의 상대성이론의 참뜻’‘시어스 및 브렘의 상대성이론’ 등을 번역했다.

   
▲ 유족대표 김백수 원장 / “암 투병 중에도 물리학 공부…학문위해 태어나신 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연구소 걱정하셨다”

故 김영대 교수의 추모 행사에 유족대표로 참석한 김백수 충주 김내과 원장은 아버지 김 교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은 인간사 희로애락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하셨다.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시간이 아까워 대학병원에 가지 않고 내과의사인 나를 주치의로 삼으셨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항암주사대신 먹는 항암제를 드렸다”면서 “통증도 물리학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내셨다. 아버님은 내게 자신의 병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하실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김 교수의 차남이다.

   
▲ 송수정 어머니회 대표 / “열정적으로 지도하시던 모습 감동 그 자체”
김 원장은 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물리학을 생각하고 AE연구소를 걱정하신 아버님은 학문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었다. 밤 9시에 자고 새벽 2시에 기상하는 생활습관을 평생 실천하셨고 블랙커피와 책상, 책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으신 분이었다. 그 분의 육신은 떠났지만, 마음은 제자들 곁에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을 보니 슬픔이 가신다. 아버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학생들이 슬퍼하는 시간도 허락하지 않으실 분이다. 그 시간에 공부하라고 하실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단 1초도 허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김 전 교수에게도 시련이 많았으나 모두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극복했다고 김 원장은 전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해 칸트보다 더 정확히 시간을 지킨 김 전 교수는 가족이 아닌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대물림했다. AE연구소가 그 증거다.

세미나를 준비한 AE연구소 어머니회 대표 송수정 씨는 “큰 스승을 잃은 슬픔이 너무 크다. 날마다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세미나를 준비해보니 사무행정부터 섭외, 연락, 학생지도 등 교수님 혼자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하셨는지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외로운 길을 가시면서 지칠 때도 많으셨을 텐데 죄송스러울 따름이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 날 행사는 어머니회가 주관해 치렀고, 이들은 평소에도 연구소가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적극 동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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