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좁쌀 한알이라 불렀던 무위당 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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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좁쌀 한알이라 불렀던 무위당 장일순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0.04.2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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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청주생협 20주년 특별전, 무위당 작품 38점 공개
생명평운동 이끈 장일순의 삶 조명하는 강연회도 열려
   
 
  ▲ 한살림 등 대안운동 통해 농업과 생명사상을 펼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생전 모습.  
 
길거리 군고구마 글씨가 제일 아름답고, 소매치기에게 뺏긴 지갑을 찾아준 후 소매치기에게는 본업을 방해했다며 돈을 쥐어 준 사람. 무위당 장일순에 대한 일화는 끝이 없다. 이렇듯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 식당주인, 농부들 등 한 사람 한사람과 보통 두 시간 이상을 얘기를 나눌 만큼 사람과 세상, 뭇 생명들에게 극진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청주를 찾아온다.

무위당 장일순 삶과 수묵전이 5월 1일부터 9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 청명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청주한살림 20주념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생명평화운동의 씨앗을 싹틔운 장일순의 난초그림과 글씨 등 38점이 선보인다. 이외에도 이현주 목사, 이철수 판화가를 비롯한 후학들의 그림, 글씨, 도자기, 조각, 나전칠기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50여 점도 함께 선보인다.

행사기간에는 이철수 판화가와 법륜스님의 초청강연이 각각 5월 1일과 6일에 열려 무위당의 서화와 생명사상에 관해서 들려준다. 지난해 5월 원주에서 발족한 ‘무위당 만인계’행사도 함께 열린다.

사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후일 내 이름으로 하는 어떤 행사도 하지 말라”고 한 생전 당부로 그간 추모행사는 오랫동안 원주 근교 그의 묘소 참배만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지를 거스르면서 추모행사가 열리는 것은 그만큼 무위당의 삶과 사상이 시대정신으로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번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한살림청주생협 이혜선 이사장은 “장일순 선생의 삶을 통해 어려운 시대적 위기를 진단하고 농업과 공동체 그리고 생명평화운동의 일상화를 모색하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무위당과 같은 우리시대 어른들의 정신과 철학을 실사구시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들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광주에서 첫 무위당 장일순 전시가 열렸으며 이번 전시 이후 충주문화회관에서 5월 12일부터 16일까지 이어진다. 한살림청주생협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으며 무위당 장일순 전시 외에도 월례강좌를 벌이고 있다. 6월에는 박원순 희망제작소장의 초청강연이 열린다.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좌표, 장일순은 누구인가?

장일순은 19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좌표다. 장일순은 20대 초반에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계를 하나의 연립 정부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원 월드 운동’에 참여했다. 20대 중반에는 원주에 대성중고등학교를 세웠다.

30대 초반에는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인 부정 선거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특히 삼십 대 중반, 미국이나 소련의 간섭을 받지 않고 통일을 해야 한다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이 빌미가 되어 정치범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출옥한 뒤로는 운신이 편치 않은 속에서도 1960년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자립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인 신용협동조합의 설립과 정착을 도왔다. 1970년대에는 부패한 정치권을 일깨우거나 원주가 때로는 저항하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그 주춧돌 구실을 했다.

80년대에는 정치 투쟁이 아닌 생활운동을 통한 사회운동을 이끌었고,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걸쳐서는 천지만물을 한 생명으로 보는 한살림의 세계관인 생명평화사상을 태동시켰다. 그는 한살림 등 대안운동을 통해 농업과 생명평화운동의 길을 연 뒤 94년 67세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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