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공동체 곱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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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공동체 곱씹기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0.05.1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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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정치문화부 기자

지역예술계에서는 언젠가부터 ‘공동체’가 화두로 떠올랐다. 동네로 들어간 예술가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지역주민과 융화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벌일 때만 해도 한낮 이벤트로 끝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공의 예산이 이곳에 투입되면서 프로그램은 견고해졌고, 소통의 방식도 다원화됐다.

그런데 문제는 지원받은 예산 때문에 일일 정산과 일지 기록 등 수고스러운 절차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 결국 이러한 내용을 작성하는 데 에너지를 뺏기느라 정작 중요한 담론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담론이 부재하다. 그래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지역에서는 토론회를 벌이는 등 다양한 시도도 일어난다.

공동체라는 말은 참으로 그럴싸하다. 예술가들의 함께 모여살기는 다양한 파장을 일으키는 게 분명하다. 그 공간이 처음에는 ‘폐교’였다면 이제는 도시로, 그리고 시장으로까지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예술가들의 이동은 곧 공간을 변화시킨다. 인사동에서 홍대로, 또한 북촌 등으로 옮겨가면서 문화가 있는 공간은 곧 브랜드가 됐다. 공간 자체가 상품이 된 것이다. 유목민적인 기질이 다분한 예술가들의 이동은 문화의 큰 줄기를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예술가들은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됐을까. 사회와 분리돼 철저히 개인화된 삶을 살았던 이들이 사회의 현실에 눈뜬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까. 게다가 지역민을 자처하면서 일상과 결합한 다양한 예술실험을 펼치는 것이 긍정적일지라도 그것이 제도화됐을 때 정작 중요한 것을 잃지 않을 까 하는 우려의 생각도 든다. 바로 진정성이다. 왜 예술가들이 사회를 변혁시켜야 하는지 예술가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프로그램에 끌려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명제 또한 어찌 보면 너무나도 일방적이다. 문화예술이 권력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서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의 시간과 삶속에서 부대끼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사업에 따라 뜨내기처럼 옮겨 다니고, 사업 주최 측은 명제 만들기에 힘쓰는 프로젝트가 더 이상 지역민에게 아무런 감흥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지역에서도 대안공간 톡톡, 가경동 시장 프로젝트 등이 올해 지역민과 소통하는 사업들을 벌인다. 기꺼이 지역민이 되기 위해 사업이 열리는 공간에 터를 잡고 다양한 프로젝트 펼치고 있다. 또 레지던스 사업을 통해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도 전개된다. 미술관에서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체험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러한 사업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무엇일까. 먼저는 지속성이 아닐까 싶다. 예산이 없어져도 또 다른 프로젝트를 벌일 수 있는 끈끈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면 이들에게 실패라는 명함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우리는 사업의 성공유무를 떠나 사업 자체를 벌이는 것만으로 경이롭게 본다. 하지만 이젠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주문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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